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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설악산 지하수 유출 걱정하면서…터널공사 기준 ‘완화’ 요구한 까닭은?

등록 2023-10-26 08:00수정 2023-10-26 08:29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관통 동서고속철 백담3터널을 뚫기 위한 경사갱 공사 현장.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관통 동서고속철 백담3터널을 뚫기 위한 경사갱 공사 현장.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국가철도공단은 설악산국립공원을 통과하는 동서고속철 백담3터널 구간 환경영향평가서에서 터널 굴착으로 1m에 ‘분당 0.5리터’ 이상 지하수가 유출되면 이를 막기 위해 전면 그라우팅 시공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라우팅은 굴착면의 틈새 등에 충전재를 주입해 지하수 유출을 막는 차수공법이다.

백담3터널 공사는 2021년 12월 환경부가 철도공단의 이 환경영향평가에 동의해 시작될 수 있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켜주면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평가서에 제시한 지하수 유출 처리대책 및 모니터링 계획에 따라 지하수 유출 확인시 즉각 차수공법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협의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터널환경학회는 환경부의 이런 협의 의견 제시 5개월 전, 환경부에 공문을 보냈다. 지하수 유출을 막기 위해 지하수가 1m당 ‘하루 1톤’ 이상 ‘7일 넘게’ 유출될 경우 즉각 차수공법을 적용할 것을 협의 의견으로 제시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터널환경학회가 건의한 차수공법 적용 기준 유출량 ‘하루 1톤’을 환경영향평가서와 같은 분 단위로 환산하면 ‘분당 0.69리터’가 된다. 철도공단이 제시하고 환경부가 동의해준 차수공법 적용기준 최소 유출량보다 38%나 많다.

학회의 요청대로 거기에 7일 이상 유출될 경우라는 조건까지 덧붙이면 차수공법 적용의 문턱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학회가 앞에선 지하수 유출을 걱정한다면서 뒤로는 공사비와 공기 증가로 이어지는 차수공법 적용을 까다롭게 해 철도공단과 시공사를 도우려했던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을 법하다.

사실은 정 반대다. 이찬우 터널환경학회장은 “소백산국립공원 죽령터널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차수공법 적용 기준 등을 협의 내용으로 명료하게 제시해 시공사와 시행사가 반드시 지키게 하라는 요청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학회장이 말하는 ‘죽령터널 사례’는 현행 환경영향평가제도의 한계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죽령터널은 단양과 영주 사이 소백산을 관통하는 길이 11㎞의 중앙선 철로 터널로, 통과 구간 상부에 죽령폭포가 있는 죽령천 등 하천이 있어 지하수 유출 우려가 높았다.

철도시설공단은 2014년 환경영향평가서에 이 터널 굴착 중 지하수가 1m에 분당 0.3리터 이상 유출되는 경우를 차수공법 적용 기준으로 제시하고, 지하수 유출이 많을 것으로 우려되는 죽령천 일부(1545m)를 포함한 1785m 구간에 차수공법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당시 “죽령터널은 환경적으로 민감한 국립공원을 통과하므로 죽령천 주변 전 구간은 차수 그라우팅 공법을 적용(하라)”는 협의 의견을 제시하며 환경영향평가를 통과시켜줬다.

이렇게 시작된 죽령터널 공사는 거대한 지하수 저장고에 큰 구멍을 낸 셈이 됐다. 굴착 공사 2년째인 2016년 10월께부터 지하수 유출량이 급증하기 시작해 2017년 12월 굴착이 종료된 뒤에도 터널에서는 하루 평균 9000여톤의 지하수가 쏟아져 나왔다. 환경영향평가서에서 제시된 굴착 종료시점 유출량 예측치(약 2850㎥)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지하수 유출은 굴착이 종료된 지 6년이 지나 기차가 지나다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지하수 유출량 예측부터 차수공법 이행까지 모두 구멍이 나 있었던 결과다.

문제가 드러났지만, 사후 처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학회장은 “차수공법 적용 구간을 실제보다 턱없이 부풀려 보고한 철도공단에 대해 부실·거짓 책임도 묻지 않았고, 철도공단이 시공사가 제안한 차수공사 변경안을 국토교통부 승인 없이 수용해 준 것만 문제가 돼 과태료 1000만원 낸 것이 전부”라고 전했다.

공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기관들의 문제는 사라진 가운데, 환경영향평가 협의 내용대로 차수공사를 하지 않은 시공사는 이득을 보고, 세금을 낸 국민과 엉뚱한 곳으로 지하수를 흘려 보내게 된 환경이 손해를 본 셈이다.

이 학회장은 “철도공단이 국토부 승인을 받지 않고 시공사의 차수공사 변경안을 받아주는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과태료 처분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환경부가 차수공법 적용 기준을 명료하게 제시한 뒤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협의 의견에 명시하고, 협의 의견 이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환경영향평가법을 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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