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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산업폐기물로 기업은 돈 벌고 피해는 주민이…더는 안 돼”

등록 2023-11-15 18:15수정 2023-11-15 18:38

전국 산업폐기물 매립장 지역 주민 국회서 호소
‘황금알 거위’되자 대기업·사모펀드까지 몰려
취약층 많은 농촌에 집중 ‘환경정의’ 문제 야기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익법률센터 농본과 이은주 국회의원 주관으로 ‘전국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강 피해 실태와 대안 모색 국회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익법률센터 농본과 이은주 국회의원 주관으로 ‘전국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강 피해 실태와 대안 모색 국회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일반폐기물은 공공에서 처리하면서 정작 위험한 산업폐기물 처리는 민간 수익사업에 넘긴 게 맞는 정책인가. 언제까지 처리시설 인근 힘없는 주민들이 그 피해를 안고 살아야 하나.”

산업·의료 폐기물 처리시설이 운영 중이거나 설치가 추진되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15일 국회에서 열린 관련 토론회에서 자신들이 겪는 피해와 시설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증언하며 정부에 폐기물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이 토론회는 ‘전국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장 피해 실태와 대안 모색 국회 토론회’로, 공익법률센터 농본과 정의당 이은주 국회의원이 공동 주관했다.

그간 민간에 산업폐기물 처리를 맡겨 농촌 지역에 폐기물처리 시설을 지어 해당 지역 주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데 대해 환경·시민단체 등은 ‘환경부정의’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소수 기업에 막대한 이윤을 보장하는 ‘경제부정의’라고 지적해왔다.

첫 증언자로 나선 고일래 ‘경북 포항시 오천의 환경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는 “지난해까지 지상 25m 높이까지의 산업폐기물 매립허가를 받은 포항시 오천읍 에코비트 그린포항 산업폐기물 매립장에 정부가 최근 10m를 추가 매립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줘, 주민들은 어떤 유해물질이 묻혀 있는지도 모르는 지상 35m 높이 폐기물 산을 안고 살아가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이곳은 특히 강풍이 심해 매립장 먼지가 주변 지역에 날아올 수 밖에 없다”며 “어떻게 이런 폐기물 산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환경부에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에코비트 매립장 약 1㎞ 북쪽의 또다른 산업 폐기물 매립장에서는 이미 매립돼 있는 폐기물 490여만톤을 파내 옆으로 옮긴 뒤 780여만톤을 추가 매립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두 매립장은 가장 가까운 아파트 단지나 초등학교와 약 1.2㎞ 떨어져 있다.

경북 고령군 다산면에서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운영 중인 ㈜아림환경의 의료폐기물 불법 방치를 밝혀내 공론화했던 정석원 ‘아림환경 반대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에 대한 정부 기관의 관리감독체계 부실과 유착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정 위원장은 “이 업체가 감염 위험이 있는 의료폐기물 1500톤을 국가전산망에는 소각 처리했다고 입력하고는 전국 16개 창고에 불법 보관하며 방치해온 것을 주민들이 찾아내 고발했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은 고작 영업정지 10개월이었다”며 “이것은 지방환경청이 보관 장소와 보관 기간이 다른 것까지도 몇 개씩 묶어 1회 위반으로 처리했기 때문으로, 업체 봐주기 위한 법 적용이 아니냐는게 주민들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주민들이 이렇게 애를 써도 관리감독기관·지자체·업체는 주민을 무시하고, 폐기물 관리 잘못으로 피해를 받은 주민들의 의견이나 참여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충북 청주시 산업폐기물 소각장을 끼고 있는 청주시 북이면 추학1리의 유민채 마을발전위원장은 소각장으로 지역에서 암 발병이 증가하는 등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소개하며, 산업 폐기물 처리시설을 정부 주도로 운영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환경부는 소각장 오염물질과 주민들 질병 사이 인과성을 부정하지만, 대조군 지역보다 (혈액 중)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은 두 배,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는 세 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정부는 내 집 앞 눈은 내가 치우는 것처럼 폐기물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지 말고 발생한 지역 내에서 처리하게 하고, 산업폐기물도 직접 처리해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밖에 경기 화성과 평택, 경북 경주, 전북 완주, 강원도 강릉, 충남 예산 등 산업·의료 폐기물 매립·소각장이 운영 중이거나 설치가 추진 중인 또다른 지역 주민들도 발언에 나서 같은 목소리를 냈다.

토론자로 나선 공익연구센터 블루닷의 심수은 연구원은 “우리나라 폐기물 처리 시설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보면 80%가 경기·경남·경북·충북·충남 등의 비도시 지역에 집중돼 있고, 특히 읍면동별로 시설이 많은 상위 20개 지역을 찾아보면 90%가 농촌지역에 몰려 있는 것이 확인된다”며 “특정 지역에 쏠림이 있는 것과 더불어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취약 계층에 노출이 쏠리는 것은 문제”라며 ‘환경정의’ 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관한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변호사는 “산업 폐기물 매립·의료폐기물 소각 같은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수익률이 높아 대기업과 사모펀드까지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업체는 돈을 벌지만 매립이 끝난 뒤 사후관리가 안 되거나 주민 피해가 생기면 결국 정부가 돈을 들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기막힌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이미 인허가가 나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신규로 하는 것은 공공이 하도록 하고, 권역별로 발생지 책임의 원칙을 적용해 산업 폐기물의 이동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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