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판] “나, 오늘 뚝섬갈비 뜯었어.” 최래옥 교수(한양대 국어교육학과)는 뚝섬을 떠올리면 1960년대 유행했던 이 말이 생각난다고 한다. 최 교수가 먹은 것은 진짜 갈비가 아니다. ‘뚝섬갈비’란 뚝섬에서 나는 채소를 말한다. 살기 힘들었던 시절 사람들은 가장 먹고 싶었던 갈비를 흔히 먹을 수 있었던 배추에 빗대었던 것이다. 당시 뚝섬은 서울시민들이 소비하는 배추, 무의 주요 공급처였고, ‘뚝섬 배추’는 배추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조선 후기엔 이곳에서 재배된 채소가 궁중에 공급되기도 했다. 버드나무 넘실 비내리면 섬으로 변신하던 곳
조선 왕들 사냥놀이…1960년대 피서객 ‘와글’
경마장 골프장 거쳐 5월엔 다시 ‘서울숲’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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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할아버지 때부터 5대 180년 동안 뚝섬에 살아온 안광택(55)씨도 “예전에 뚝섬은 대부분 밭이었다”고 했다. “해마다 홍수 때면 지금 건국대 근처까지 물이 올라왔으니 어떻게 논농사를 지을 수 있었겠어요. 이곳에 배추며 무 등을 심어서 4대문 안 사람들에게 팔았어요. 그래서 봄이면 거름으로 뿌린 똥냄새가 사방에 진동했지요.” 보통 뚝섬은 서울 동북쪽의 큰 하천인 중랑천이 한강과 만나는 사이에 자리잡은 살곶이벌(전관평)을 중심으로 한 102만여평의 땅을 말한다. 이곳은 조선시대엔 전관평, 동교 등으로 불렸다. 그러나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만든 고양군 독도면에는 현재의 성수1~2동뿐 아니라, 구의동, 자양동 지역의 14개 마을(리)이 포함돼 중랑천 동쪽 전체를 ‘뚝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뚝섬은 섬이면서도 섬이 아니었다. 최래옥 교수는 “장마 때 큰비가 오면 육지와 떨어져 섬이 됐고, 건기에 비가 적으면 육지와 연결되곤 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 명예회장은 “뚝섬은 한강과 중랑천에서 흘러내린 모래와 진흙이 쌓여 형성된 곳”이라며 “예전 기록에는 임금의 사냥터이고 군사훈련장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뚝섬은 근대 들어 한국 최초의 정수장이 들어서 수돗물을 만들어낸 곳이기도 하다.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대한제국 정부에서 상수도 시설 허가를 받아 1908년 8월에 준공한 ‘뚝도수원지’ 제1정수장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이곳은 하루 1만2500㎥의 정수시설을 갖춰 서울시민 12만5천여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했다. 50~60년대 뚝섬은 서울시민들의 대표적 피서지였다. 지금은 바다로 휴가를 떠나지만, 이때만 해도 서울시민들은 한강변에서 여름을 지냈다. 6대를 이곳에서 살았던 한광덕(67)씨는 “한강에 모래톱이 많았지만, 서울 사람들은 뚝섬을 즐겨 찾았다”고 했다. 뚝섬엔 물가를 따라 늘어선 푸른 미루나무가 있어서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대 170년 동안 뚝섬에서 살고 있는 신상학(70)씨는 “서울시민의 더위를 식혀주던 뚝섬 미루나무 숲은 전두환 때 한강 개발을 하면서 모두 베어버렸어. 주민들이 엄청 반대를 했는데도 말이야. 그 많던 모래도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60~70년대 경제 개발에 따라 성수동 일대에는 공장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주택단지와 상가도 형성돼 도시화가 가속됐다. 임금의 사냥터일 정도로 나무가 많았던 뚝섬은 산업화 과정에서 과거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서울의 대표적 공장지대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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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뚝섬은 과거의 숲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한때 뚝섬을 대표했던 경마장도 골프장도 모두 문을 닫았고, 올해 5월 서울숲이 문을 열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뚝섬 일대를 대규모 도시공원으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추진중이다. 전체 35만평인 서울숲이 완공되면 서울 서남부의 보라매공원(13만평), 동남부의 올림픽공원(44만평), 서북부의 월드컵공원(81만평)에 버금가는 녹지 공간이 마련된다. 서울의 중앙에 71만평의 용산공원까지 들어서면 서울의 각 지역에 대규모 공원이 들어서는 셈이 된다. 그러나 레미콘 공장과 승마장 이전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약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뚝섬 토박이 안광택씨는 뚝섬이 다시 숲이 되는 것을 자연의 섭리라고 했다. “임금님의 사냥터였던 뚝섬이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경마장이니 골프장이니 공장이니 인간의 손때를 많이 탔잖아. 하지만 결국 다시 숲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나봐.”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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