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복구비가 치수사업비의 4배 ‘배보다 큰 배꼽’
전문가들 “불가능 상황까지 가정하고 설계하는게 정상”
전문가들 “불가능 상황까지 가정하고 설계하는게 정상”
‘물난리’ 중부가 잠기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최악’의 호우가 닥쳤고 전국은 재난 상황에 빠져들었다. 늘 ‘최악’이란 말로 자연을 탓할 뿐, 재해를 막기 위한 토목공사에서 ‘최악’의 사태에 대비하는 철저함은 여전히 빠져 있다.
연도별 집중호우 발생빈도는 1930년대 이전의 평균 2.2차례에서 40~70년대 5.3차례, 80년대 이후 8.8차례 등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도시화의 영향으로 숲과 같은 완충지대가 적어져 같은 양의 비가 와도 체감 강수량은 훨씬 많다. 그런데도 ‘토목공사 문화’에는 이런 환경 변화에 상응하는 긴장도의 상승이 없다. 긴급히 수술해야 할 문제점들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선제 예방에 집중해야=몇해 전까지만 해도 서울 중랑천변은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피해를 보는 단골 침수지역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번 중부지방 폭우를 끄떡없이 견뎌냈다. 중랑구청은 17일 “지난 2004년 망우동에 3만t 규모의 저류지(일시에 늘어난 물을 담아뒀다가 서서히 흘려보내는 지하 빗물저장소)를 설치했고, 20개 동마다 2명씩 전담인원을 두어 빗물받이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은 노력이 큰 피해를 막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예방에 드는 예산은 적고 막상 피해를 당한 뒤에야 막대한 복구비를 쓰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수해 예방을 위한 치수사업비보다 복구비가 4배쯤 더 들고 있다는 게 건설교통부의 설명이다. 치수사업비 규모는 1980년대 이후 국민총생산의 0.07%로, 일본(국민총생산의 0.45%)의 7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악 상황을 가정해 설계·시공해야=자연재해를 되도록 ‘천재지변’으로 몰아가려는 당국의 태도도 피해를 키우는 요소다. 이번 중부지방 폭우로 영동고속도로 등 곳곳에서 절개지가 무너져내려 큰 피해를 줬는데도, 천재지변 탓으로 돌리는 모습은 올해도 되풀이되고 있다. 반면 전문가들은 “아무리 비가 와도 무조건 무너지지 않는 게 정상”이라며 단박에 ‘인재’로 진단한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는 “절개지 꼭대기까지 물이 다 차는, 자연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까지 가정하고 설계하는 것이 정상”이라며 “이번에 영동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난 원주~강릉 구간은 개통한 지 6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천재지변이라고 변명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꼬집었다.
또 건축법에 건물은 절개지로부터 일정 거리를 두고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더 가까이 지어도 된다는 단서규정을 두는 등 법률 규정마저도 안전을 우선시하지 않고 있다. 권도엽 건설교통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은 “게릴라성 강우가 갈수록 빈발하고 있어 안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슈퍼 제방’ 같은 발상 왜 못하나=한번 무너지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도시지역 제방을 보통 제방과 다를 바 없이 짓고 있는 현실에 전문가들은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일본은 도심 등 주요 지점에는 보통 제방보다 두세 배 두꺼운 ‘슈퍼 제방’을 도입했다. 태풍 피해가 컸던 1940년대 이후 도입된 개념이다.
그러나 이번에 무너진 서울 안양천 둑은 물론 양재천 둑 등 도심 제방 모두가 ‘보통 제방’이다. 또 토목공사에서 다진 지반의 밀도를 나타내는 ‘다짐률’도 도로는 95% 가량이지만 제방은 90%로 낮다. 서일원 서울대 교수(토목공학)는 “예산은 많이 들겠지만 하천 주변의 주택이나 토지를 매입해 슈퍼 제방을 만들고, 넓어진 제방 윗부분을 도로나 공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다짐률도 90% 이상으로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책임 철저히 따져야=부실 토목공사의 반복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책임 시공’을 위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토목 전문가는 “공무원은 감독 책임을 벗으려고 쉽게 ‘천재’로 규정하고 보수 비용도 국가 예산으로 대고 있다”며 “항간에 ‘절개지는 무너지면 오히려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고 말했다. 최계운 인천대 교수(토목공학)는 “지금처럼 국가에서 다 보상해주면 인재성 사고도 묻혀버릴 수 있다”며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시공사가 책임질 것은 책임지게 해야 하는데, 이를 밝혀낼 과학적인 감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천재는 없다’는 기본 인식 아래 공사 기준 등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고서는 연례행사와도 같은 물난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용현 조기원 최현준 허종식 기자 piao@hani.co.kr
그러나 이번에 무너진 서울 안양천 둑은 물론 양재천 둑 등 도심 제방 모두가 ‘보통 제방’이다. 또 토목공사에서 다진 지반의 밀도를 나타내는 ‘다짐률’도 도로는 95% 가량이지만 제방은 90%로 낮다. 서일원 서울대 교수(토목공학)는 “예산은 많이 들겠지만 하천 주변의 주택이나 토지를 매입해 슈퍼 제방을 만들고, 넓어진 제방 윗부분을 도로나 공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다짐률도 90% 이상으로 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책임 철저히 따져야=부실 토목공사의 반복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책임 시공’을 위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 토목 전문가는 “공무원은 감독 책임을 벗으려고 쉽게 ‘천재’로 규정하고 보수 비용도 국가 예산으로 대고 있다”며 “항간에 ‘절개지는 무너지면 오히려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고 말했다. 최계운 인천대 교수(토목공학)는 “지금처럼 국가에서 다 보상해주면 인재성 사고도 묻혀버릴 수 있다”며 “원인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시공사가 책임질 것은 책임지게 해야 하는데, 이를 밝혀낼 과학적인 감사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천재는 없다’는 기본 인식 아래 공사 기준 등을 강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책임을 철저히 묻지 않고서는 연례행사와도 같은 물난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용현 조기원 최현준 허종식 기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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