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중부가 잠기다
큰아들 잃은 곳서 막내도 잃어
“20년전 첫 아들을 잃은 마을 하천에서 이번에는 막내아들을 잃다니….”
전국에 내린 집중폭우로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6일 밤 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양악천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장애인 이상길(24·정신지체 3급)씨가 17일 오전 9시30분께 사고지점에서 4㎞ 떨어진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 하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이날 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다리를 건너다 변을 당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씨 어머니 김아무개(51)씨는 20여년 전 폭우로 마을 하천에서 첫째아들(당시 7살)을 잃어버린 뒤, 이번에 막내아들까지 수마에 뺏겨 망연자실했다.
주민들은 “생활보호대상자인 두 모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나, 숨진 이씨가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하천에는 폭 4~, 길이 40여m의 다리가 있지만, 난간이 없는데다 비만 오면 잠기는 잠수교여서 사고가 상존했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특히 이 하천은 무주군과 장수군 경계지역으로 행정 사각지대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마을에서는 지난해에도 70대 노인 양아무개씨가 산사태로 숨진 바 있다. 서홍식 이장은 “사고가 난 마을은 가구수가 적은 데다 외진 곳이어서 수해복구사업에서 항상 누락됐다”고 말했다.
부모·형 있던 집 눈앞서 와르르
강원도 인제에서는 산사태로 노부모와 형을 잃은 심영홍(60·서울 거주)씨가 17일 인제장례식장 빈소를 지키며 넋을 놓았다.
지난 15일 강원도 인제군 남면 남전리에 내린 장대비로 야산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부모님과 형이 매몰되는 현장을 지켜본 심씨는 이틀이 지났지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씨는 이날 낮 12시께 노환으로 누워계신 아버지 심덕흠(89)씨와 어머니 조경난(88)씨의 대소변 요강을 깨끗이 치워 방안에 들여놓은 뒤, 폭우로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는 집 앞 하천의 수위를 살피려고 마루를 내려왔다.
마당에서 두세 걸음을 막 옮겼을 때 집 뒤로 30~40m 떨어진 야산에서 쏟아진 흙더미가 요란한 굉음과 함께 집을 무너뜨리며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심씨는 반사적으로 몸을 피해 화를 면했으나 부모님과 고향집을 지키며 노부모를 봉양하던 형 영운(66)씨는 흙더미에 매몰돼 숨지는 참변을 당했다.
심씨는 “노환으로 고생하는 부모님을 돌봐드리고 형을 위로하려고 나흘전에 고향집을 찾았다가 이런 참혹한 일을 당했다”며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특히 숨진 형 영운씨는 부모님을 좋은 집으로 모시려고 집에서 10여분 거리에 있는 남전약수터 옛집 개축공사를 시작해 거의 마무리되고 있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주 인제/박임근 김종화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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