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환경의 무덤
제13대 대통령 선거일을 엿새 앞둔 1987년 12월10일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군산과 부안 사이 바다를 막는 세계 최대 간척사업 추진을 선거공약으로 전격 발표했다.
이 새만금 간척사업은 당시 정부 내부 검토 과정에서 “경제성이 적다”는 지적이 나와 2000년 이후 재론하기로 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날 호남권 득표용으로 긴급 차출된 뒤, 노 후보의 당선과 함께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이렇게 새만금 간척사업에 둘러진 ‘봉황무늬 완장’은 정부 안 반대론을 잠재우고, 시민·환경단체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사업이 계속 굴러가게 한 중요한 동력원이 됐다.
최근 환경단체로부터 ‘제2의 새만금’으로 불리며 전국적 환경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충남 서천의 장항산업단지 조성을 둘러싼 논란도 대통령 공약에서 출발했다.
금강 하구 북쪽 개펄을 메워야 하는 이 사업은 1989년 건설교통부 고시로 확정됐으나, 그 뒤 조성할 땅의 분양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그 사이 지역 주민은 개펄의 가치에 눈을 떠 사업중단을 요구하는 쪽과 정부에 사업을 빨리 시행해 줄 것을 요구하는 쪽으로 갈라졌다. 이 갈등의 근원도 거슬러 올라가면 노태우 후보의 ‘군장산업기지 건설’ 공약에 이르게 된다.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경인운하 건설 논란의 배경도 닮은꼴이다. 경인운하 건설은 13대 대선 때 처음 선거공약으로 등장한 뒤로 선거철마다 건설 후보지 주민들의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단골 공약이 되고 있다. 사그라질 듯하다가도 선거 때마다 새로운 에너지를 보급받아 생명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전국적 관심사까지는 되지 못한 크고 작은 개발사업이나 사업계획들로 탐색 범위를 넓히면, 이렇듯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나 환경파괴, 예산낭비 논란을 빚는 것들 가운데 대통령 공약에 뿌리를 댄 사례를 찾기 어렵지 않다. 국제선 비행기가 찾지 않는 지방의 국제공항들, 잡초만 무성한 산업단지 등이 모두 그 산물들이다. ‘대선은 환경과 예산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정수 기자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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