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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폐지값 미끄럼에 고물상 손수레 ‘시름’ 가득

등록 2007-04-01 20:51

정순덕 할머니가 지난달 21일 오전 거리에서 수집한 폐 신문지를 서울 사당동의 한 고물상에 가져와 저울 위에 내려 놓고 있다. 김정수 기자 <A href="mailto:jsk21@hani.co.kr">jsk21@hani.co.kr</A>
정순덕 할머니가 지난달 21일 오전 거리에서 수집한 폐 신문지를 서울 사당동의 한 고물상에 가져와 저울 위에 내려 놓고 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거꾸로 가는 재활용품 정책

몇년째 하락세 하루종일 모아 날라도 고작 5500원
공공기관 ‘친환경상품 우선구매’ 강제성 없어 부진
환경부도 ‘감독’ 의지 부족…빈곤계층 생계 악영향

서울 사당4동 산동네에 사는 정순덕(79) 할머니는 매일 아침 거리로 출근을 한다. 낡은 손수레를 끌고 사당동과 방배동 일대를 도는 것이 그의 일과다.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종이상자와 신문지 등을 주워 담는다. 손수레에 폐지가 가득 차면 고물상으로 끌고 가 판다. 그렇게 번 돈으로 쌀도 사고 찬거리도 산다.

“폐지 값은 10년 전 그대로”=지난 21일 낮 1시께 정씨의 손수레가 사당4거리 부근 고물상 사당상사로 들어왔다. 손수레에는 눌러 편 종이상자와 신문지가 차곡차곡 실려 있었다. 정씨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손수레에서 폐지를 내려 고물상 구석에 쌓았다. 일을 끝낸 그의 손에는 5000원짜리 지폐 한 장과 500원짜리 동전 한 닢이 놓여졌다. 가져온 종이상자 100㎏ 값이 1㎏에 40원씩 쳐서 4000원, 신문지 20㎏ 값이 1㎏에 65원씩 쳐서 1300원이었다. 200원은 고물상에서 거슬러 받지 않고 얹어준 것이다.

사당상사 대표 최정화(43)씨는 “다른 재활용품 값은 오르는데 폐지만 몇 년째 계속 내려가고 있다”며 “요즘 가격은 10년 전과 거의 같다”고 말했다. 정씨 할머니는 “몇 년 전에 아주 좋을 때는 지금의 두 배까지도 받았다”고 말했다.

정씨의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한국환경자원공사가 2003년 1월부터 작성하고 있는 재활용품목별 가격동향 자료를 보면, 수도권 재활용시장의 폐 신문지 값은 2003년 1월부터 11월까지 1㎏에 95~130원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그러다 11월 이후 상승세를 타 2004년 6~7월에는 150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그 뒤 미끄러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2년반 넘게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골판지도 비슷하다.(그림 참조)

수도권 폐지 가격 동향
수도권 폐지 가격 동향

갈길 먼 친환경상품 우선구매=폐지와 같은 재활용 자재 가격은 정부의 재활용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설명이다. 폐지값 상승세가 시작된 2003년 11월은 환경부가 공공기관들에게 재활용 제품을 비롯한 친환경 상품 우선구매 의무를 지우는 내용의 친환경상품 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힌 시기다.

재활용품 수거전문업체인 서울 방배3동 서울자원의 김광신(63) 대표는 “재활용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컸다”며 “그것이 폐지값을 올린 요인의 하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환경부의 법률안에 공공기관들에게 친환경 상품 구매를 실질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폐지값은 8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친환경 상품 구매를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것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친환경상품진흥원 자료를 보면, 현재 집계 중인 지난해 공공기관 친환경상품 구매 총액은 적용 대상 금액의 57.2%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환경부가 2004년 10월 법률안 확정 당시 예상했던 80%에 크게 못 미친다.


류연기 환경부 환경경제과장은 “공공기관을 상대로 순회교육까지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일선 기관들 사이에 (우선구매제도에 대한 인식에) 온도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선 공공기관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제구실을 하지 못한 환경부 책임이 무겁다.

환경부는 2005년 6월 친환경상품 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만들면서 공공기관들이 물자를 조달하면서 친환경 상품을 구매하지 않을 경우 그 사유를 기록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었다. 이는 공공기관 구매담당자에게 친환경 상품 구매를 강제하는 압력 수단으로도 쓸 수 있는 규정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환경부가 이 조항에 따라 공공기관들에 사유 기록을 요구하거나 확인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처장은 “환경부가 법은 열심히 만들어 놓고는 그 뒤에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생용지 사용과 빈곤층 돕기=환경마크와 우수재활용(GR) 인증을 받은 종이는 공공기관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표적 친환경 상품이다. 이런 종이 소비를 늘리는 것은 환경을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정씨 할머니처럼 폐지를 수집해 파는 빈곤 계층을 돕는 일도 될 수 있다. 폐지 수요를 증가시켜 가격을 올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복사지의 경우 친환경 상품 인증을 받으려면 폐지가 40% 이상 섞여야 하고, 특히 지아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그것도 모두 국내산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빈 수레를 끌고 고물상을 나서면서 “물가는 올라가는데 폐지값은 자꾸 내려가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살기가 점점 힘들다”고 말했다. 정씨가 말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공식 통계는 없다. 다만 몇 가지 짐작해 볼 만한 단서는 있다. 사당상사 대표 최씨는 “우리 가게에 고정적으로 재활용품을 모아 오는 분들이 쉰명쯤 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3월 지역별 표본조사를 근거로 사당상사와 같은 재활용품수집상이 수도권에만 2200곳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글·사진/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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