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개되기 전 청계천은 도시민의 삶의 물줄기이자 터전이었죠. 하수구 역할도 했지만 건천이어서 마를 때면 놀이터이자 삶의 휴식터고 빨래터였습니다.
" 1일 청계천 복원 공사 현장의 통수식에 참가한 임기완(65) 서울토박이회 부회장은 복개 전 청계천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임 부회장이 전한 복개 전 청계천은 빨래터로 유명한 곳. 6.25 전쟁 이전까지만해도 물이 맑았지만 전쟁 이후 서울의 인구가 급팽창하면서 청계천변에 판자촌이 형성됐고 수질도 함께 악화됐다.
"피난민들이 들어오고 월남민들이 유입되는 등 인구가 늘면서 청계5가에서 7가까지 천변을 따라 판자촌이 늘어섰죠. 길 건너서 바라보면 마치 태국의 수상도시 같았습니다" 판자촌 주민들의 생활 오.폐수가 그대로 청계천에 방류되면서 청계천이 오염돼갔다.
장마가 지면 홍수가 나서 물이 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 수표교 앞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빨래를 하는 빨래터였다.
청계천 복개는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1955년에는 지금의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광교까지 약 200m 구간만 복개가 됐고 다시 광교에서 동대문까지 순차적으로복개 공사가 진행됐다.
교통량이 늘면서 1968년에는 고가도로까지 들어섰다.
해방 바로 직전까지도 광교 옆에는 술 파는 카페가 하나 있었고 특히 뱀탕집이많았다. 수표교 아래는 당시 거지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임 부회장은 "의료적으로 열악한 때인데 결핵이 창궐하다 보니 보양을 하려고단백질이 많은 뱀을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복개하면서 모두 사라졌지만 청계천변은 고관이 아닌 중민들이 살던 곳으로 이른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였다"며 "역사와 생태계를 다시 복원한 청계천을 오늘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임 부회장은 300년째 대를 이어 서울을 지키고 있는 서울 토박이다. (서울/연합뉴스)
해방 바로 직전까지도 광교 옆에는 술 파는 카페가 하나 있었고 특히 뱀탕집이많았다. 수표교 아래는 당시 거지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임 부회장은 "의료적으로 열악한 때인데 결핵이 창궐하다 보니 보양을 하려고단백질이 많은 뱀을 많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복개하면서 모두 사라졌지만 청계천변은 고관이 아닌 중민들이 살던 곳으로 이른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였다"며 "역사와 생태계를 다시 복원한 청계천을 오늘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임 부회장은 300년째 대를 이어 서울을 지키고 있는 서울 토박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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