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도의 저어새들. 모두 가슴 깃에 노란 번식색을 띠고 있다.
멸종위기 저어새를 찾아서
‘6개국 공동조사단’서해 무인도 탐방 동행취재 동아시아의 조류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현재 전 세계에 1400여 마리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어새 보호를 위한 ‘국제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지금까지의 저어새 보호활동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활동을 고민하기 위해 한국에서 연 ‘저어새 국제심포지엄’ 참석자들은 지난달 31일 서해 무인도에서 저어새 번식실태를 함께 조사했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등에서 온 조류학자와 생물종보전 담당 공무원, 환경운동가 등 20여명으로 구성된 ‘저어새 국제공동조사단’을 따라가봤다. 강화도 서쪽 20여㎞ 어로한계선 북쪽 해상에 떠 있는 바위섬인 석도의 주인은 가마우지, 괭이갈매기 등 새들이었다. “끼룩, 끼룩, 꽤액, 꽤액” 조사단을 태운 강화군청의 관공선인 인천 507호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낯선 배의 접근을 경계하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높아졌고, 날갯짓도 덩달아 바빠졌다. 섬에 40~50m까지 접근하자 갈매기 무리 사이에 특이한 모습의 흰 새 10여 마리가 섞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어새였다. 주걱처럼 생긴 검은색 긴 부리는 멀리서도 이들을 뚜렷이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저어새들 가운데는 부리가 연한 회색을 띠고, 길이도 좀 짧은 놈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섬에서 태어난 새끼들이었다. 조사단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랫동안 저어새 보호 활동을 해온 이들이지만 새끼를 직접 보는 것은 대부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990002%% 새끼 직접 보기는 처음 저어새가 새끼를 까는 것으로 공식 확인된 지역은 공개되지 않는 북한 지역을 빼면 석도와 그 옆의 비도, 석도 북쪽의 역도, 한강 하구의 유도 정도가 전부다. 모두 남북한 사이에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인 셈이다. 서식지 파괴 등 인간의 간섭으로 멸종위기에 내몰린 이들의 본능이 남북한 군사당국의 양해 없이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완충지대를 택한 것이다. 60마리 배위로 편대비행 “저기 가락지를 찬 녀석이 있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 쪽으로 일제히 망원경이 돌아갔다. 목 주위에 노란 번식깃을 띤 저어새 한 마리가 주황색 가락지를 찬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2003년 3월 대만에서 독소인 보튤리즘이 중독된 채 발견돼 치료를 받은 ‘T-31’이었다. 대만에서 온 왕지앙핑 청궁대 교수는 “우리가 구해서 날려준 ‘T-31’을 이번에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섬 반대편을 보기 위해 배가 막 움직일 즈음 그때까지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던 새들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한 옥타브 높아졌다. 김수일 교원대 교수 등 가락지 부착팀 4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섬에 상륙한 것이다. 괭이갈매기들은 침입자들을 쪼기라도 할 듯 낮게 날면서, 배설물을 갈겨 댔다. 침입자에 대한 공격인 셈이었다. 저 가락지 내가 채웠어 가락지 부착팀을 석도에 남겨두고 1㎞ 가량 떨어진 비도를 향했다. 비도에 접근하던 배에서는 다시 탄성이 울렸다. 섬 한가운데 100여 마리 가까운 저어새들이 무리지어 있었던 것이다. 배가 섬 가까이로 좀더 다가가자 60여 마리의 저어새가 편대를 이뤄 조사단을 반기기라도 하듯이 배 위를 선회했다. 비도에서는 가락지를 찬 저어새가 3마리나 발견됐다. ‘K-36’, ‘K-38’, ‘A-26’이었다. ‘K-36’과 ‘K-38’은 김수일 교수팀이 3년 전 저어새 보전을 위한 정보수집을 위해 석·비도에서 가락지를 달았던 새끼 8마리 가운데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어서 한국 조사팀을 더욱 기쁘게 했다. 저어새 멸종의 위험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은 지난 2002년 대만에서 실시한 저어새 유전자 분석 결과다. 당시 보튤리즘에 중독된 70여 마리의 저어새를 조사한 결과, 이들이 모두 단일한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의 감소는 어떤 종을 일순간에 멸종으로 내몰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설명이다. 저어새를 지키기 위해 월동지와 번식지 등 저어새가 거쳐가는 각 나라들의 정보교환과 협조가 더욱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둥지수는 작년대로 18개 이번 조사에 동행한 국제자연보존연맹의 저어새·두루미·따오기분과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말콤 코울터 박사는 “저어새를 지키려면 무엇보다 남북한 접경지역 번식지를 잘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한 남북한 사이의 협력이 더욱 확대됐으면 한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번에 석도와 비도에서는 전례 없이 많은 저어새가 발견됐지만 이것이 저어새 개체수의 증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조사단의 판단이다. 번식을 위한 둥지 개수는 지난해와 같이 18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수일 교수는 “저어새는 논과 같이 민물 먹이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섭식장소 제한 등의 영향으로 여전히 멸종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저어새 보호를 위해서는 환경부나 문화재청뿐 아니라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화도/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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