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인권위는 반의 반걸음이라도 앞서가야”

등록 2010-02-07 19:33수정 2010-02-08 08:46

법안 스님
법안 스님
임기 끝난 정재근 전 인권위 비상임위원 인터뷰
인권에 ‘보수’ ‘진보’ 구분없어
다수결 의존·독선 모두 위험

스님은 지난 3년 동안 ‘법안’이라는 법명 대신 ‘정재근’이라는 속명으로 살았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일하면서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진정을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해왔다.

 법안 스님은 6일, 3년의 임기를 마쳤다. 스님은 이날 오후 자신이 주지로 있는 서울 구기동의 금선사에서 <한겨레> 기자를 만나 “지난 3년 동안 행복했다”고 말했다. “불가에서는 고통 받는 중생이 흘리는 눈물을 나눌 수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지난 3년간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침해받은 인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던 것은 큰 복이었습니다.”

 법안 스님은 수행자이면서도 세상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불교계의 대표적 실천적 단체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의 대표를 맡고 있다.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 위원 등 ‘위원’으로서 세상에 목소리를 냈다. 이제 모든 ‘위원’ 직을 내려놓고 수행자로 돌아가는 법안 스님은 다만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할 인권위가 최근 ‘우향우 논란’ 등 인권 관련 시민사회단체 등으로부터 우려의 시선을 받고 있어 나가는 마음이 무겁다”고 걱정했다.

 정 위원 후임으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검증위원회 위원을 지낸 한태식(59·법명 보광) 동국대 교수가 임명됐다. 한태식 위원은 인권 관련 활동이 없어 ‘자격의 적절성’ 논란을 낳고 있다. ‘우려’를 뒤로하고 떠나는 법안 스님으로부터 지난 3년간의 인권위 활동에 대해 들었다.

 - 지난 3년간 내린 결정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결정은 무엇입니까?

 “인천에 사는 한 여고생이 임신을 했어요. 이 여고생에게 학교가 ‘임신한 상태로 학교에 등교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며 자퇴를 강요했습니다. 이 학교는 ‘임신을 한 것만으로도 풍기문란’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라고 임신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어요. 인권위가 그 고등학교를 찾아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학교를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피해자를 재입학시키도록 권고했습니다.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미혼 임신 여성에 대한 지원책을 만들어야지, 미혼 임신을 계기로 ‘차별’하는 것은 생명권을 포함한 기본적 인권의 침해입니다.

 ‘기독교 신자’를 교수 임용의 조건으로 내건 한 기독교계 학교에 대해 이는 평등권 침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권위는 이와 같은 결정을 통해 인권침해적 고정관념을 없애는 데 노력해 왔습니다.”


 - 올해 초, ‘용산참사’와 관련해 재판부에 의견표명을 하는 과정에서 현병철 인권위 위원장의 태도가 논란을 낳았습니다. 위원장의 적절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용산문제에 대해 해를 넘기기 전에 의견표명을 해야 한다고 매우 강하게 주장했어요. 그러나 현 위원장은 판단을 주저했습니다. 또한 위원들 의견을 충분히 듣지 않고 회의를 중단했어요. ‘왜 그런 식으로 독재를 하느냐’라고 말하자, 위원장은 ‘독재라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회의장을 나갔습니다. 위원장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체 위원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조정하고, 합의를 유도해야 합니다. ‘다수결의 원칙’만을 따를 게 아니라 서로 이견을 좁혀 ‘진정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향으로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충분한 소통과 토론을 통해 다수결에 따른 ‘우향우’ 논란이 없도록 하는 게 지금 인권위에 필요한 일입니다.”

 - 후임인 보광 스님이 지난 2007년 대선 경선에서 한나라당 후보검증위원회를 맡는 등 보수적 인사라는 논란이 있습니다.

 “보광 스님이 그간 인권과 관련한 활동이나 발언을 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성향에 대해서는 나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대통령 추천이라고 해서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추천한 경우지만, 노 대통령 눈치 본 적 없습니다. 국민 입장에서 판단하면 됩니다.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무심’의 차원이에요. 무심이란 사물을 아무런 선입관 없이 있는 실상 그대로 볼 때 가능하고, 거기서 자비심이 생깁니다. 이 자비심, 관용을 근거로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과 관련한 판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 인권위에 필요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인권위는 사법부보다 ‘반의 반걸음’이라도 앞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사법부가 사회 보편의 원칙과 국가 체제 등을 고려한다면 인권위는 진정인의 고통과 눈물을 우선해야 합니다. 인권위가 ‘중립’의 기관을 자임하면 자기 역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이야기하면 `중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중도란 가운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인권위에게 중도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받고 차별받는 이들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 인권 아닌가요? 사람의 권리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없어야 합니다.

 사바세계에는 고통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인권위는 고통받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상담), 눈물을 닦아주고(권고 등 결정), 궁극적으로는 그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어지도록 노력(관련 정책 권고 등)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권위가 국민의 기대와 신뢰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 인권위는 주로 진정을 해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권위가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두 가지는 꼭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인권위 활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통이 너무 심각함을 알게 됐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이나 복리후생에 있어 차별이 너무 심합니다. 고용 안정성도 없습니다. 이런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인권위가 적극적으로 정책 권고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검찰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진정인들도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검찰 수사과정을 모두 녹취해 기록으로 남기는 등의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인권위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