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수백마리가 지난 28일 아침 8시께 경북 구미시 해평습지 주변 모래벌판에 날아와 쉬고 있다. 습지 건너편의 해평면 문량리 낙동강 둔치에서는 4대강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곳곳에 준설토가 쌓여 있다. 구미시청 제공
환경단체 “겨울철 동안이라도 공사 멈춰야”
“흑두루미가 앉을 곳을 찾지 못해 한참 떠돌더군요. 그러다가 공사장 인근 숲 안의 풀밭에 겨우 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4대강 공사’ 탓에 올겨울 철새들이 큰 수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올봄 이후 4대강 준설공사가 본격화하면서 주요 서식지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공사판으로 변한 삶터를 찾아온 겨울철새들은 뒤늦게 먹이터나 이동통로를 바꿔야 한다.
환경단체가 철새들의 상황을 조사하려고 찾은 경북 구미시 해평습지도 예전의 평화로운 삶터가 아니었다. 너른 습지와 금빛 모래밭, 낟알이 넘쳐난 농경지는 황톳빛 공사장으로 변해 포클레인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위장막을 치고 1박2일 동안 모니터링을 한 김경철 ‘습지와 새들의 친구’ 사무국장은 29일 “이미 겨울철새들이 교란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베리아에서 여름을 난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흑두루미는 매년 이맘때 일본의 철새 도래지 이즈미를 향해 장거리 비행을 한다. 이때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들르는 곳이 해평습지다.
김 국장은 “흑두루미는 보통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상승기류가 생기는 이튿날 오전 10~11시께 일본을 향해 날아간다”며 “그런데 올해는 이른 아침 서둘러 자리를 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쪽에서 떠들썩한 공사가 진행되니까, 낮에도 흑두루미가 떴다가 앉기를 반복하는 등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쇠기러기도 공사장비와 파헤친 흙무더기 속에서 헤매는 등 철새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는 해평습지에 발달한 모래밭이 준설작업으로 대부분 소실되고, 인근 마을과 공사장의 완충장치 구실을 하던 수림지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 국장은 “철새들의 먹이터인 주변 농경지는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 때문에 준설토 적치장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해평습지 말고도 낙동강 구담습지, 남지, 하구 등에서도 겨울철새가 교란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들은 겨울철 공사만이라도 중단해야 내년에도 철새가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즈미로 향하는 흑두루미는 10월 중순에서 11월 초에 해평습지에 찾아든다. 지난 18일 처음 찾아온 흑두루미는 28일까지 1083마리가 들렀다. 김 국장은 “2000마리 정도는 와야 하는데, 개체수도 일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해평습지로 찾아온 흑두루미는 10월28일 기준으로 지난해 2500마리, 2008년에는 1800마리였다.
4대강 살리기 본부는 주변에 대체서식지를 조성한다고 했지만, 아직 첫삽도 뜨지 않은 상태다. 남광희 대구지방환경청장은 “예상한 것과 달리 철새들이 준설 예정지 등에 몰려 있다”며 “내년 2월 이후로 준설을 미루는 방안을 포함해 준설 장소와 계획을 바꾸는 등 대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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