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사고 매뉴얼’ 사고땐 속수무책
원자력발전소 21기가 가동중인 부산 기장군, 경북 경주시·울진군, 전남 영광군 등 자치단체 4곳의 원전 사고 대비 매뉴얼과 실제 매뉴얼 운영 상황을 살펴본 결과는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원전 강국’이란 화려한 수식어와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 방사능 감시 허술 원전 사고 때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얼마나 누출됐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측정소는 4개 자치단체 원전 주변에 10~20곳씩 있다. 대부분 원전으로부터 반경 8~10㎞ 이내인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에 몰려 있고, 그 밖 지역에는 측정소가 매우 드물다.
기장군의 고리 원전 주변엔 방사능 측정소가 12곳이 있는데, 10㎞ 밖엔 1곳뿐이다. 경주시의 측정소 10곳 가운데, 월성 원전 10㎞ 바깥에는 2곳만 설치돼 있다. 영광군 측정소 13곳 가운데는 4곳이 14~25㎞ 지점에 분산돼 있다. 원전 바로 인근에는 방사능 누출 감시망이 그나마 촘촘한 편이지만, 8~10㎞ 밖은 방사능 감시망이 매우 허술한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원전 지역 밖의 방사능을 두루 감시하기 위해 전국 주요 지점 70곳에 측정소를 두고 있지만, 전국 기초자치단체가 228곳인 점을 고려하면 시·군·구 3곳 가운데 1곳에 측정소 1곳씩만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이 기류를 타고 며칠 새 반경 20~30㎞까지 확산했듯이 방사성 물질이 풍향에 따라 불특정 지역으로 날아가면, 측정소 없는 지역의 주민들은 방사능 감염 여부조차도 알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 방독면·방호복 태부족 원전이 있는 자치단체들은 새 원전이 들어설 때 1000억~2000억원의 지원금을 받는 것과 별도로, 해마다 국가와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100억~200억원씩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들 자치단체가 원전 사고 때 꼭 필요한 안전장비를 갖추는 데는 인색하다. 지난해 원전 지원금으로 각각 96억원, 165억원을 받았던 경주시와 울진군은 원전과 관련한 장비 구입 등엔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지난해 267억원의 원전 지원금을 받았던 영광군은 원전 사고 대비 장비 구입에 5000만원만을 썼다.
비상계획구역 안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호장비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원전 6기가 가동중인 울진에선 비상계획구역 안에 1만6000여명이 살지만 방호복은 겨우 500벌, 방독면은 2700개가 있을 뿐이다. 방호복은 확보율이 20%도 안 된다. 방독면은 경북 경주시만 비상계획구역 안 주민 수보다 많은 1만1000여개를 갖췄을 뿐, 나머지 3개 자치단체의 확보율이 16.7~25.6%에 그친다.
기장군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원전 지원금은 주민 숙원 사업에 쓰고 있다”며 “주민을 보호하는 장비는 원전 사업자나 국가가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자치단체들이 원전 지원금에서 개인 보호장비를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 대피소가 더 위험? 원전 사고가 나면 비상계획구역 안 주민들은 중간 집결지에서 만나 차량으로 20분~1시간 떨어진 대피소로 가야 한다. 하지만 대피소로 지정된 초·중·고교의 건물 대부분은 지진에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다. 영광 원전 인근 대피소 19곳 가운데 내진 설계가 된 곳은 한 곳도 없다. 나머지 3개 자치단체 실무 부서는 대피소가 내진 설계돼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규모 5에 가까운 강진 두차례를 비롯해 광주·전남지역에서는 58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관측됐고 지진의 빈도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결코 영광 원전도 지진 같은 요인에 의한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방재 훈련도 미흡 원전이 있는 자치단체에선 원전 사업자와 함께 4년마다 1차례 ‘합동훈련’을 해야 하고, 교과부는 5년마다 자치단체와 함께 ‘연합훈련’을 벌여야 한다. 영광군은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24년 동안 합동훈련은 9차례 벌였고 연합훈련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기장군은 2000년 이후 합동훈련만 4차례 했을 뿐이다. 매우 드물게 하는 훈련조차 평일 낮 시간대에 벌여, 노인과 학생을 중심으로 100~200명씩 참여하는 실정이다. 울진군은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7차례 합동훈련을 했으나, 평균 참여 인원은 181명에 그쳤다. 경주시 양남면 월성 원전 근처 주민은 “20여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으나 원전 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 광주 대구/김광수 정대하 박주희 기자 kskim@hani.co.kr
기장군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원전 지원금은 주민 숙원 사업에 쓰고 있다”며 “주민을 보호하는 장비는 원전 사업자나 국가가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자치단체들이 원전 지원금에서 개인 보호장비를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 대피소가 더 위험? 원전 사고가 나면 비상계획구역 안 주민들은 중간 집결지에서 만나 차량으로 20분~1시간 떨어진 대피소로 가야 한다. 하지만 대피소로 지정된 초·중·고교의 건물 대부분은 지진에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다. 영광 원전 인근 대피소 19곳 가운데 내진 설계가 된 곳은 한 곳도 없다. 나머지 3개 자치단체 실무 부서는 대피소가 내진 설계돼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규모 5에 가까운 강진 두차례를 비롯해 광주·전남지역에서는 58차례의 크고 작은 지진이 관측됐고 지진의 빈도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결코 영광 원전도 지진 같은 요인에 의한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방재 훈련도 미흡 원전이 있는 자치단체에선 원전 사업자와 함께 4년마다 1차례 ‘합동훈련’을 해야 하고, 교과부는 5년마다 자치단체와 함께 ‘연합훈련’을 벌여야 한다. 영광군은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24년 동안 합동훈련은 9차례 벌였고 연합훈련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기장군은 2000년 이후 합동훈련만 4차례 했을 뿐이다. 매우 드물게 하는 훈련조차 평일 낮 시간대에 벌여, 노인과 학생을 중심으로 100~200명씩 참여하는 실정이다. 울진군은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7차례 합동훈련을 했으나, 평균 참여 인원은 181명에 그쳤다. 경주시 양남면 월성 원전 근처 주민은 “20여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으나 원전 사고에 대비한 훈련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부산 광주 대구/김광수 정대하 박주희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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