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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이사람] “다음번 한국행은 여행길이 되었으면”

등록 2011-07-29 19:50

전직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55)
전직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55)
고엽제 매립의 진실…스티브 하우스의 끝나지 않은 여정
엿새간 한국방문 마치고 귀국
“내 병의 근원, 죄의식의 원천
진실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땅을 파는 작업을 할 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상사가 시켜서 하긴 했는데 무엇이 묻힐진 몰랐다. 그런데 수송병 동료 트래비스가 트럭에 드럼통을 싣고 와 말했다. “이 드럼통 안에는 고엽제가 들어 있어.” 동료 프레드가 트럭 화물칸에서 드럼통을 내렸다. 트래비스가 화가 난 듯 말했다. “이거 보라고. 베트남전쟁에서 쓰인 고엽제야. 우리가 250통을 옮겨서 묻어야 돼.” 그 뒤, 셋 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격해진 감정을 간신히 누르고 ‘이건 명령이야’라고 되뇌었을 뿐이다.

이 사건은 전직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55·사진)의 인생에서 ‘원죄’처럼 따라붙었다. 죄의식의 원천이자 만병의 근원이었고, 악몽의 소재이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의 고엽제 매립 의혹을 제기한 스티브 하우스가 엿새 동안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29일 미국 디트로이트로 돌아갔다. 출국 직전인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개인적인 감회를 풀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한국에서는 그의 폭로가 ‘미군기지 환경 문제’로 비쳐졌지만, 그에게는 진실을 찾는 고독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고엽제 매립 이듬해인 1979년 2월 그는 캠프 캐럴을 떠났고 겨울에 제대했다. 그 뒤 그의 건강은 이내 악화됐다. 피부 발진이 생겼고 간비대증, 당뇨병 그리고 말초신경증, 수면장애 등 각종 합병증이 보태졌다. 이상했다. 고엽제가 생각났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건강 문제 등으로 세 번이나 직장을 그만둬야 했어요. 그때마다 의료보험 혜택이 줄어들어 생활이 힘들었죠.”

그가 오른쪽 배를 누르니 퉁퉁 부은 간 때문에 불룩해졌다. 간비대증이었다. 주치의는 넉달 전 “이제 수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담낭(쓸개) 세포도 죽어가고 있어 하루빨리 떼어내야 한단다. 보통 사람들에겐 손쉬운 수술이지만, 간 기능이 정상이 아닌 하우스에겐 위험하다. “수술 도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어요. 만약의 일이 터지면 제가 경험한 일이 묻힐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국행을 결심했습니다.”

미국 정부와 지루한 다툼을 시작한 건 6년 전이다. 그는 “1970년대에도 한국에 고엽제가 살포됐다는 글을 읽고, 미국 정부한테 보상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내가 근무했던 78년에는 고엽제가 한국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68~69년 비무장지대 안에만 고엽제가 살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70년대 후방에서도 고엽제가 운반·저장됐고 미군 부대 밖의 민간인 지역에서도 살포됐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내 주장을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순간 수많은 병사들에게 보상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걸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우스는 편안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다. 한국에 있을 때도 수면장애로 인한 악몽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언제나 그렇듯 고엽제로 인해 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나타난다. 그의 아내는 병약한 그가 한국에 가는 걸 말렸다. 하지만 그는 “고엽제를 한국 땅에 묻은 만큼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하우스는 “미국 정부도 어서 빨리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다음번에 한국에 올 때는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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