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이동경로 탐사 르포
애월읍서 대정읍까지 추적
3~4마리 유영, 어느새 떼로
배 띄우자 사라져 애간장
등지느러미로 114마리 추정
왜 돌지? “먹이 찾아 그럴것”
애월읍서 대정읍까지 추적
3~4마리 유영, 어느새 떼로
배 띄우자 사라져 애간장
등지느러미로 114마리 추정
왜 돌지? “먹이 찾아 그럴것”
우리를 생중계해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면, ‘고래 추적자’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것이다. 지난달 22일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조사팀과 함께 제주시 애월읍에서 서귀포시 대정읍까지 고래를 따라다녔다. 고래는 나타났다가 사라졌고 또다시 나타났다.
온종일 쫓아다닌 고래는 남방큰돌고래였다. 한반도에선 유일하게 제주도에 단 114마리밖에 남지 않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국내 학계에서는 2009년에야 공식 기록됐지만, 해녀들은 수백년 전부터 바다 밑에서 만나왔고, 불법 밀렵꾼은 1990년부터 잡아 수족관에 전시·공연용으로 넘겼던 돌고래다.
오전 10시, 운좋게도 애월읍 신엄리의 해안절벽에서 이 매력적인 돌고래 네 마리와 조우했다. 고래연구소의 김현우 연구원이 망원경을 꺼내들며 말했다. “이놈들은 제주도를 돌고 돌아요. 육지 1㎞ 안쪽 바다에서 계속 해안가를 따라 움직이죠.”
모처럼 만난 행운을 놓칠 순 없었다. 돌고래 네 마리는 남쪽 서귀포를 향해 갔고, 조사팀도 돌고래의 속도에 맞춰 남행했다. 바다를 보이는 지점이 나오면 차를 세우고 돌고래의 위치를 확인했다. 결정적인 순간엔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야 했다. 돌고래에 가까이 접근해 사진을 찍은 뒤 ‘신원’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지느러미 사진을 찍어보면,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개체를 식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조사팀은 2007년부터 2381장을 찍고 데이터를 축적해 89마리를 식별했다. 통계 모델을 돌린 결과 제주 연안의 개체 수는 2008년 128마리, 2009년 114마리로 추정됐다. “그래도 안 찍은 고래나 새로 태어난 새끼가 있을 수 있으니, 이렇게 일년에 네 번씩 조사를 하는 거죠.”
애월항에서 허겁지겁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 안타깝게도 단 20분 사이 고래는 사라졌다.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아까부터 “돌고래의 수영속도가 최대 5마일인데…”라고 중얼거리던 김 연구원이 액셀을 깊숙이 밀어넣었다. 결국 다시 이 네 마리를 따라잡았지만 우물쭈물하는 사이 또 놓치고 말았다. 허탈해하는 순간 남쪽에서 돌고래 떼가 다가오고 있었다. 첨벙첨벙.
20마리는 족히 될 법한 이 무리는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약속이나 한 듯 방향을 틀어 남쪽을 향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고래연구소의 조사에서도 남방큰돌고래의 전형적인 특성인 ‘이합집산’이 확인되고 있다. 114마리는 한 집단이지만, 3~4마리의 작은 무리로 흩어졌다가 60~70마리의 큰 무리로 늘어나기도 한다. 소규모 무리로 흩어져 먹이 활동을 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돌고래들은 쉴 새 없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차귀도 앞바다에서는 배를 빌려 가까이 다가가 사진 식별조사를 마쳤다. 지난해 김 연구원은 제주의 한 수족관에 갔다가 놀란 적이 있다. 낯익은 야생 돌고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어 연구소에 가서 카탈로그와 대조해봤어요. 그놈들이 맞았지요.” 1990년부터 제주의 남방큰돌고래들은 이런 식으로 불법 혼획(그물에 우연히 걸려 잡힘)돼 돌고래 쇼에 공급됐다. 제주도를 돌던 돌고래들이 어느 순간 관중들 앞에서 점프를 하고 ‘끼룩끼룩’ 인사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돌고래를 추적하다 지친 내가 대뜸 물었다. “그런데 이 돌고래들은 왜 도는 거죠?” “먹이 자원을 찾아서요? 뭐, 그렇게밖에 볼 수 없죠.” 지금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이다. 고래연구소는 돌고래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부착해 정확한 이동경로를 알고 싶지만, 부착 과정에서 사고가 날까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멸종에 이르는 ‘위험선’에 있기 때문이다. 오후 5시20분 해는 뉘엿뉘엿 지고 사위엔 어둠이 깔렸다.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항구로 다시 고래들이 경주를 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서귀포 앞바다를 지나고 성산일출봉을 돌아갈까. 잘 가라, 고래들아. 부디 그물에 걸리지 말고, 열심히 살렴. 열심히 돌렴. 제주/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의 육지 가까운 바닷가에 산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오른 멸종위기종으로, 제주도는 물론 대만과 인도네시아 연안에서 수족관 전시·공연용으로 잡히고 있어 최근 논란을 부르고 있다. 제주도 개체군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무리여서 보존 가치가 높다. 고래연구소 제공
돌고래들은 쉴 새 없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차귀도 앞바다에서는 배를 빌려 가까이 다가가 사진 식별조사를 마쳤다. 지난해 김 연구원은 제주의 한 수족관에 갔다가 놀란 적이 있다. 낯익은 야생 돌고래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어 연구소에 가서 카탈로그와 대조해봤어요. 그놈들이 맞았지요.” 1990년부터 제주의 남방큰돌고래들은 이런 식으로 불법 혼획(그물에 우연히 걸려 잡힘)돼 돌고래 쇼에 공급됐다. 제주도를 돌던 돌고래들이 어느 순간 관중들 앞에서 점프를 하고 ‘끼룩끼룩’ 인사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돌고래를 추적하다 지친 내가 대뜸 물었다. “그런데 이 돌고래들은 왜 도는 거죠?” “먹이 자원을 찾아서요? 뭐, 그렇게밖에 볼 수 없죠.” 지금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이다. 고래연구소는 돌고래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부착해 정확한 이동경로를 알고 싶지만, 부착 과정에서 사고가 날까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멸종에 이르는 ‘위험선’에 있기 때문이다. 오후 5시20분 해는 뉘엿뉘엿 지고 사위엔 어둠이 깔렸다.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항구로 다시 고래들이 경주를 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내일이면 서귀포 앞바다를 지나고 성산일출봉을 돌아갈까. 잘 가라, 고래들아. 부디 그물에 걸리지 말고, 열심히 살렴. 열심히 돌렴. 제주/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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