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류 이용한 살포방식
다량 발암물질 배출에도
보건소 64% “연막소독 시행”
식물성 확산제 쓰는 보건소
“규정에 없으니 어쩌나” 혼란
질병본부 소극태도로 악순환
이번 여름에도 전국 곳곳에서 많은 국민들이 유해 물질이 잔뜩 들어 있는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셔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초자치단체들이 10개 가운데 6개 꼴로 올해도 경유나 등유를 가열해 나오는 연기에 살충제 입자를 실어 뿜어내는 연막 소독을 이미 하고 있거나 실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전국 254개 보건소 가운데 36개 보건소의 여름철 방역 실태를 무작위 전화 조사로 확인한 결과, 64%인 23개 보건소가 연막 소독을 시행하고 있거나 시행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류를 살충 성분 확산제로 이용하는 연막 소독의 유해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경유나 등유를 불완전 연소시켜 발생하는 흰 연기 속에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인 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 등 주요 발암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물질들은 호흡하는 사람의 건강을 직접 위협할 뿐 아니라, 토양과 수질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전국의 많은 일선 보건소들은 이미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방역 방식 변경을 시도해 왔다. 다양한 생물학적 방식을 동원해 모기를 유충 단계에서 찾아 없애거나, 불가피한 공중 방제는 물이나 식물성 기름 등을 원료로 한 친환경 확산제를 쓰는 연무 소독으로 전환하는 것 등이 그 예다.
<한겨레> 조사 결과는 이런 움직임이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준 셈이다. 여기에는 보건소를 감독하는 질병관리본부의 소극적 자세가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질병관리본부는 경유나 등유 대신 식물성 확산제를 사용한 소독은 불법으로 보고 있다. 방역용 살충제들 가운데 용법에 식물성 확산제를 사용해도 된다고 표시된 것이 없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전국 보건소에 “천연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는 공문을 보냈다. 질병관리본부는 그러나 일부 보건소들의 식물성 확산제 사용을 적극 제지하지는 않고 있다. 친환경적 방역 방식을 찾는 보건소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는 최근 자신이 보낸 공문으로 판로가 막힌 한 벤처기업이 민원을 제기하기 전까지 규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외면했다. 보건소들이 주민 건강을 좀더 고려하려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태가 지속되도록 방치한 셈이다. 식물성 확산제를 생산하는 늘푸른㈜ 유정민 대표는 “연막은 그 자체로 살충 효과를 지닌 것이 아니라 살충제를 확산시키는 역할만 하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친환경 제품이 충분한 확산 효과가 있는지만 보건소들이 판단해 쓰게 하면 된다”며 “작은 벤처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수십종의 살충제를 대상으로 각각 식물성 확산제의 효과에 대한 전문기관 검증을 받아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용을 막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전국의 보건소들에서는 식물성 확산제를 두고, 일부는 “규정은 없지만 사용해도 괜찮다”고 해석하고, 일부는 “현행법상 불가능하다니 사용할 수 없다”라며 사용하려던 계획을 취소하는 등 혼란마저 벌어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보건소는 올해 식물성 확산제 사용 계획을 세웠다가 질병관리본부의 공문을 받고 등유를 사용한 연막 소독을 계속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보건소 한미례 전염병관리팀장은 “올해부터 친환경 식물성 확산제를 사용하려고 했었는데, 질병관리본부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해서 못쓰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전북 익산시보건소의 박성희 방역담당은 “조달청을 통해 식물성 확산제를 구입해 쓰고 있다”며 “만약 문제가 있다면 조달청에서 통과될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 동구보건소 김중 방역담당도 “질병관리본부의 최종 입장은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연막과 식물성 연무 소독을 일주일 간격으로 번갈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 허창호 사무관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하고 고민중”이라며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식물성 확산제를) 못쓰는 것이 맞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찾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복지부만이 아니라 환경부도 자신의 일로 인식하고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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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방역을 위해 실시하는 연막 소독이 위해성 논란에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지역 한 주택가에서 연막 소독 차량이 방역 작업을 하는 모습.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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