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곤충학습 체험전에서 한 어린이가 애완용 장수풍뎅이를 만져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물고기)
베스 블루길 황소개구리 붉은귀거북…에 이어
외래종 습격사건…다음 차례는 곤충?
애완용 곤충 수입 삐거덕…문 열려
몇몇만 우리를 빠져나가도 빠르게 확산 가능성
개체수 적은 딱정벌레류 일차적 희생자 될 것 장수하늘소라는 이름의 곤충이 있다. 이름에 걸맞게 하늘소과의 곤충 가운데 가장 힘이 세고 몸집도 큰 종이다. 몸길이가 수컷은 최대 10㎝, 암컷은 9㎝에 이른다. 이들은 대형 곤충으로는 이례적으로 한랭한 기후에 자신을 적응시켜 왔지만, 서식환경 파괴로 개체수는 크게 줄어든 상태다.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라는 이중의 법적 보호막을 뒤집어 쓴 채 광릉과 오대산 등지에만 겨우 살아 남아 있다. 불법반입 곤충들 버젓이 거래중
이 장수하늘소가 전혀 새로운 위협을 맞을 처지라고 한다. 경쟁관계에 놓일 수 있는 외래종의 등장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지난해 8월 농림부 국립식물검역소의 ‘생물학적 방제용 해충 등의 위험분석 및 수입검사 방법에 관한 요령’제정이었다. 제1조에서 이 요령이 ‘애완용’으로 수입되는 해충에도 적용된다고 규정한 것이다. 당시 환경단체들로부터도 특별한 주목을 받지 않고 조문에 들어간 이 낱말로 그때까지 금지됐던 애완용 곤충 수입이 허용되게 됐다.
국립식물검역소 자료를 보면 올들어 지난달까지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곤충을 포함한 해충류는 미국산 바퀴벌레 700마리 등 연구용으로 들어온 4종 1만2450마리가 전부다. 애완용 곤충의 공식 수입실적은 아직 없다. 하지만 최근 곤충을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외국에서 불법 반입된 곤충들이 인터넷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애완용 곤충 수입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개인이 사육하는 애완용 곤충은 엄격히 관리되는 연구용 곤충과 달리 의도적이든 실수로든 생태계 속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유입된 곤충류가 생태계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은 배스나 블루길, 붉은귀거북, 황소개구리 등 앞서 들어온 외래종들에 비해 더욱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노태호 환경정책평가연구원 환경영향평가부 책임연구원은 “곤충류와 같은 저차소비자 생물은 물고기 같은 고차소비자 생물에 비해 생태계에 유입될 경우 관리하기가 쉽지 않으며, 곤충류는 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적응력을 지닌 동물이어서 새로 유입된 지역에서 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때 우리나라 중남부 소나무림을 휩쓸고 이젠 금강산을 위협하고 있는 솔잎혹파리나, 외국에서 부친 화물 등에 붙어 들어온 바퀴벌레의 ‘성공사례’가 그 예다.
최근의 애완용 곤충 시장을 관찰해 볼 때 앞으로 애완용으로 많이 수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곤충은 장수풍뎅이, 하늘소, 사슴벌레 등의 딱정벌레류와 투구딱정벌레류 등이다. 노 책임연구원은 “이들이 사육시설을 이탈할 경우 뛰어난 비행능력을 이용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게 될 것이고, 지구온난화를 감안하면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에서부터 북쪽으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면서 “특히 딱정벌레류는 주로 교목의 목질 안에서 월동하는 전략을 통해 겨울철에도 높은 생존력을 보이기 때문에 생활사의 지속적인 유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유사한 생태적 지위의 고유종을 위협하게 되며, 개체수가 적은 희귀종들이 일차적인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장수하늘소가 위협에 놓이게 됐다는 것은 그래서다.
‘바퀴벌레의 성공기’ 주목하라
이에 대해 구충환 국립식물검역소 검역1계장은 “곤충의 수입신청이 들어오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국내 생태계에 끼칠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해, 문제가 없을 경우에만 수입을 허용해 줄 방침”이라며 “애완용 수입 곤충 때문에 생태계가 교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립식물검역소 고시로 시행 중인 곤충 검역을 위한 위험분석 관련 요령을 보면 이런 검역 담당자의 말에 안심하기 어렵다.
이 요령은 애완용 곤충(공식 표현은 ‘해충’)의 수입신청이 들어왔을 경우 모두 6개 항목·15개 평가요소의 위험도를 점수화해, 평균점수가 기준치보다 높거나, 평균점수가 기준치보다 낮더라도 해충화위험 항목의 판정이 불가능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입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위험도 평가의 핵심부분인 ‘해충화 위험’ 항목의 평가가 생태계 전반이 아니라 단지 식물에 대한 피해 가능성만 따지는 반쪽짜리라는 점이다. 또한 6개 항목 가운데 사회·경제적 가치 항목에 다른 항목 보다 3배의 가중치를 두도록 한 점도 위험평가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부분이다.
환경부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식물검역소의 해충화 위험 평가에 이처럼 구멍이 나 있는 것은 ‘식물’검역소라는 기관 자체의 한계로 보인다. 이런 구멍을 메워줘야 하는 것은 국가 생물자원 관리의 전담부처인 환경부다. 하지만 환경부는 아직 동물계를 포함해 생태계 전반을 고려한 해충화위험 평가방법을 강구하는 등의 구체적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경희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자연생태부장은 “블루길, 붉은귀거북 등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래생물이 들어와 적응해 우점종이 되면 토종생물이 사라지게 되고, 특히 곤충은 경우에 따라 인체에까지 위험성이 있을 수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노 책임연구원은 “외래종 곤충의 유입에 따른 영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개체-개체군-군집-생태계의 각 단계별로 모두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내 고유종 정보의 데이타베이스화, 단순한 문헌조사만이 아니라 사육 검증 등의 다양한 평가기법 도입을 서둘러 실질적인 애완용 곤충 수입 적부심 심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외래종 습격사건…다음 차례는 곤충?
애완용 곤충 수입 삐거덕…문 열려
몇몇만 우리를 빠져나가도 빠르게 확산 가능성
개체수 적은 딱정벌레류 일차적 희생자 될 것 장수하늘소라는 이름의 곤충이 있다. 이름에 걸맞게 하늘소과의 곤충 가운데 가장 힘이 세고 몸집도 큰 종이다. 몸길이가 수컷은 최대 10㎝, 암컷은 9㎝에 이른다. 이들은 대형 곤충으로는 이례적으로 한랭한 기후에 자신을 적응시켜 왔지만, 서식환경 파괴로 개체수는 크게 줄어든 상태다.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라는 이중의 법적 보호막을 뒤집어 쓴 채 광릉과 오대산 등지에만 겨우 살아 남아 있다. 불법반입 곤충들 버젓이 거래중
솔잎혹파리 공격으로 고사 위기에 놓인 금강산의 소나무들. ‘평화의숲’ 제공
국내 하천 생태계 교란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블루길.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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