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조사·공개 현황 없어
기업 반발에 ‘허술한 기준’ 원인
지역 주민들 ‘2차 피해’ 키운
구미시 대피령 해제도 도마에
기업 반발에 ‘허술한 기준’ 원인
지역 주민들 ‘2차 피해’ 키운
구미시 대피령 해제도 도마에
지난달 27일 유독물질인 불산(불화수소산) 유출 사고를 낸 업체인 경북 구미시 휴브글로벌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유독물질을 관리하는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 조사·공개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는 등 환경부의 유독물질 관리에 구멍이 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운영하고 있는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 조사·공개 시스템’ 웹사이트(ncis.nier.go.kr/prtr)를 보면, 국내에는 2010년 현재 주로 화학·금속·전자업체를 중심으로 한 전국 70개 사업장에서 연간 3026.6t의 불산을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이는 환경부가 연간 불산 취급량이 10t 이상인 업체들을 조사 대상으로 삼아 파악한 것이다. 휴브글로벌은 이번에 누출 사고를 낸 불산 수송 차량에 실려 있던 불산의 양만 20t이어서 취급량 기준으로만 보면 배출·이동량 조사·공개 대상이지만, 환경부 조사·공개 시스템의 그물을 빠져나갔다.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 조사·공개는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에 따라 2000년부터 부분 시행에 들어가 2012년 현재 불산 등 유독물질을 포함한 화학물질 415종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1984년 인도 보팔의 유니언카바이드 유독가스 유출 참사를 계기로 회원국들에 유독물질 배출·이동 등록제(PRTR) 도입을 권고해왔다. 사업장들의 화학물질 취급 현황을 공중에게 공개함으로써 사업체들에 안전관리 강화를 압박하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환경부는 기업들의 반발에 밀려 제도 도입의 근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사업장별 취급량 정보의 전면 공개를 계속 미루다 2010년 하반기부터야 시작하는 등 형식적으로 운영해왔다. 불산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독물질을 연평균 10t 이상 취급하는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한 환경부의 현행 제도는 ‘비상 계획 및 지역사회 알권리에 관한 법’(EPCRA)에 따라 불산의 경우 연간 100파운드(약 45㎏) 이상 취급하는 모든 사업장 정보를 공개해, 주민들의 누출 사고 대비와 감시 노력을 유도하는 미국의 사례와 대비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배출량 조사·공개는 현재 종업원이 30인 이상인 업체에만 적용하고 있어서 휴브글로벌이 빠졌다”며 “종업원 수가 적더라도 취급량이 많은 업체들이 포함될 수 있도록 기준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구미국가산업단지 불산 가스 누출사고 직후 사고 현장에서 작업장 기준치를 갑절이나 초과한 농도의 불산이 검출됐는데도, 구미시가 주민 대피령을 풀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 3시45분께 구미산업단지 4단지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국립환경과학원은 사고 다음날 오전 9시30분께 공장 주변을 조사한 뒤 사고 현장 반경 50m 안 대기 중 불산 오염도가 인체에 해로운 수준인 30ppm에 못 미치는 1ppm이라고 밝혔다. 구미시는 이를 근거로 다른 곳에 대피해 있던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임천리 주민들을 귀가하도록 했다.
그러나 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올해 고시한 ‘화학물질 노출 기준’(2012-31호)을 보면, 불산의 작업장 기준치는 0.5ppm이다. 구미시와 환경과학원이 ‘인체에 해로운 수준’이라고 거론한 30ppm은, 미국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기준에 소방관이 방독면을 써야 하고 일반인은 즉시 벗어나야 한다고 규정된 수치다.
박정임 순천향대 교수(환경보건학)는 “건강한 성인이 하루 8시간 일하는 작업장 기준이 0.5ppm인데, 노약자나 어린이 등이 24시간 거주하는 농촌마을의 피해는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사고 다음날 오전 대기 중 불산이 1ppm 검출된 곳은 사고 반경 50m 안이었고, 주민들이 사는 외곽지역에선 이날 새벽 이후 검출되지 않았다”며 “주민 등의 건강 피해는 사고 당시 초기 노출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 이아무개(75·여)씨는 4일 “피신했다가 다음날 다시 돌아온 것이 화를 키웠다. 지금도 머리가 아프고 코가 따갑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구미/구대선 김일우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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