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를 뿜어내고 있는 국내의 한 화력발전소 모습. 우리나라에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2015년부터 이들 발전소를 포함해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가 실시된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시행령 공포로 2015년부터 도입
3년간 무상 공급 뒤 유상 할당
남는 무상 할당량 이월 허용
배출량 검증기관 감독 허술 등
산업계 거센 반발로 제도 왜곡
제구실 할까 우려 목소리 커
3년간 무상 공급 뒤 유상 할당
남는 무상 할당량 이월 허용
배출량 검증기관 감독 허술 등
산업계 거센 반발로 제도 왜곡
제구실 할까 우려 목소리 커
기후변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효율적으로 감축하기 위한 한국형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기본 설계 작업이 지난 15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공포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제도 도입 근거를 담은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2009년 말 국회를 통과한 지 3년 만이다.
이에 따라 제철, 발전, 시멘트, 제지 등 온실가스 대량 배출 사업장을 가진 업체들과 에너지 다소비 업체들은 2015년부터 일정 기간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량의 한도를 배출권으로 할당받는다. 배출권은 거래제 시행 초기 3년 분량은 무상 공급되며, 2018년부터 부분적으로 경매 등을 통한 유상할당이 도입된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배출권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양보다는 적게 할당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할당받은 배출권 한도 안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펼치거나, 시장에서 배출권을 추가로 확보해야만 한다. 할당이나 구매로 확보한 배출권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배출권 평균 가격의 3배(톤당 최대 10만원)를 과징금으로 내는 제재를 받게 된다.
정부는 배출권 거래제법 시행령을 공포하면서 “비용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저탄소·고효율 산업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배출권 거래제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법과 시행령 규정을 뜯어보면, 배출권 거래제가 제구실을 할 수 있을지 우려할 만한 대목도 적지 않다. 제도 시행에 따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더 피해보려는 산업계와, 새로운 차원의 산업 규제인 거래제 운용에 최대한 개입할 여지를 만들어두려는 경제부처들에 의해 왜곡된 결과다.
대표적 왜곡 사례는 산업체 생산 시설의 변동에 따른 배출권 할당량의 사후 조정 규정을 만들면서, 할당량 추가는 시설의 신설은 물론 증설과 사업계획 변경, 생산품목 변경 때에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할당량 취소는 전체 시설이 폐쇄되거나 1년 이상 가동이 정지된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비대칭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시험 시행기간의 성격을 지니는 1차 계획기간의 배출권 전량을 무상할당하고 이를 다음 계획기간으로 제한 없이 이월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다.
배출권 거래제 설계 작업에 참여한 한 연구기관의 전문가는 “1차 계획기간은 시행 초기인 만큼 배출권이 과다 공급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기간에 남는 배출권을 차기로 이월할 수 있게 한 것은 이후의 배출권 거래제 운용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배출권 거래제 시행 초기 배출권 전량 무상할당의 부작용은 유럽연합이 한국보다 앞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면서 비싸게 얻은 교훈이다. 유럽이 전해준 이 교훈은 한국형 배출권 거래제 설계에 반영되지 못했다.
배출권 거래제 ‘주무관청’인 환경부나 정부연구기관에서 배출권 거래제 설계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배출권 거래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할당”이라고 말한다. “전량 무상할당을 하더라도 할당을 잘해서 관리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주무관청이 제대로 된 할당과 엄격한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검증기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거래제 관련 법률 제정 실무를 맡았던 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대응국 서진희 과장은 “배출권 거래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무관청도 중요하지만 기업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보고·검증하는 기관이 제대로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배출권 거래제에서 검증기관의 중요성은 앞서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의 전문가들도 강조하는 대목이다. 독일 환경, 자연보전 및 원자력안전부의 배출권 거래 총괄 디르크 바인라이히 국장은 “배출권 거래제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배출량 데이터의 확보이며, 할당뿐 아니라 모니터링과 검증 시스템을 잘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레그 바커 영국 에너지기후변화부 장관도 한국 배출권 거래제 성공을 위한 조언에서 “정확한 데이터와 강력한 검증”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배출권 거래제 설계도에는 신뢰할 만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검증기관을 지도·감독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돼 있다. 검증기관에 대한 제재수단으로 경고나 업무정지 등은 허용하지 않고 취소만 허용해, 지정을 취소할 만한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경우 사실상 아무 조처도 할 수 없도록 주무관청의 손발을 묶어 놓은 것이다.
주무관청이 배출량 검증기관의 선정과 감독에서부터 배출권거래소를 지정할 때 검토해야 하는 서류에 이르는 세세한 사항을 결정하고 변경하는 것까지 경제부처들과 협의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나, 시행령 입법예고 때는 주무관청이 독립적으로 위촉하도록 했던 할당결정심의위원회와 배출량인증위원회의 전문가 위원들을 관련 부처들이 추천한 사람들로 위촉하도록 바꾼 것 등도 문제다. 이에 따라 고시 제정을 위한 후속 협의와 실제 시행 과정에서 배출권 거래제가 더욱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녹색성장위원회 관계자는 “제도 시행일이 앞으로 2년 남은 만큼 시행에 들어가기 전에 일부 규정에 대한 보완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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