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전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들녘에서 불산 가스 누출사고에 오염된 벼 등 농작물을 본격적으로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구미/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정부 ‘유해물질 관리 개선책’ 미흡
원인물질 따라 주관부처 달라져
신속대응 어렵고 책임·권한 모호
환경부내 전담조직 신설 등은 성과
원인물질 따라 주관부처 달라져
신속대응 어렵고 책임·권한 모호
환경부내 전담조직 신설 등은 성과
1984년 12월 어느 날 새벽 인도 보팔의 한 화학공장에서 살충제 원료인 유독가스가 새어나와, 인근 주민 3700여명이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이 공장에서 어떤 유독물질을 취급하는지도 모르던 상태였다. 이 불행한 사고는 세계 여러 나라가 유독물 취급 시설에 대한 정보 공개와 지역 주민의 알권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9월 경북 구미에서 일어난 국내 최대 규모의 화학물질 사고인 불산 누출 사고는 어떨까?
국무총리실은 12월 말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 대책’을 확정해 발표했다. 구미 불산 사고 뒤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국토해양부, 소방방재청 등이 참여해 지난 10월15~19일 부처별 자체 점검을 시작으로, 정부 합동 점검, 전문가 및 관계부처 회의 등을 거치며 2개월 이상 작업해 나온 결과다. 정부가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시작한 만큼, 우리 사회를 화학물질 사고로부터 안전한 사회로 이끄는 획기적인 내용이 담길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발표된 내용을 살펴보면 △환경부 내 사고 전담조직 신설 추진 △위험물 운송추적 시스템 도입 △공정안전관리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 등 평가할 만한 내용도 있지만, 구미 불산 사고에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점에 대한 개선 방안이 부실해 “용두사미”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구미 불산 사고 뒤 정부 내부는 물론 국회와 언론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것은 부처별 떠넘기기였다. 불화수소는 환경부가 관리하는 유해화학물질이자 지식경제부가 관리하는 독성가스이고, 누출은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는 중대 산업사고였다. 이에 따라 관련 부처들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바람에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이 늦어져, 정부에 대한 피해 주민들과 국민들의 불신이 가중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는 이번 개선 대책에서 앞으로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물질을 관리하는 부처가 사고의 대응·수습의 주관부처 역할을 수행하고, 부처간 관할이 중첩돼 있거나 불분명한 경우만 환경부로 대응·수습 체계를 일원화하기로 했다. 관리 대상 물질과 역할에 따라 사고 대응 주관부처를 구분해, 초기 대응에서 혼란의 원인이 된 현 시스템의 기본 틀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개선 대책은 부처간 이견이 있을 경우는 중앙재난대책본부(행정안전부)가 조정·결정하도록 해, 부처들 사이에 소관부처를 둘러싼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런 혼란은 다른 자연재난과 달리 신속한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화학물질 사고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긴박한 사고 상황에서 사고 원인 물질을 정확히 규명해 소관부처를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리부처가 불분명하거나 중첩돼 있는 화학물질 사고를 총괄하게 된 환경부도 이번 대책에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평소 관리할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사고가 날 경우 비난과 책임만 뒤집어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사고 물질의 소관부처를 가리기 위한 확인 작업을 어디서 어느 정도까지 할 것인지, 소관부처를 확정하기 위해 지체하는 사이에 사고가 커질 경우 책임 문제 등 애매한 부분이 많아 앞으로도 혼란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책임 소재를 떠나서 환경부가 적극 대응해야겠지만, 그러려면 책임과 권한을 더욱 확실히 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변 화학공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에 대한 주민들의 알권리도 크게 확대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유독물에 대한 주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 사업장들에 안전 관리를 압박하는 방안은 20여년 전 인도 보팔 사고 이후 계속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번 정부 대책에서도 대규모 사업장들을 제외하고 소규모 사업장들이 작성하는 자체방제계획에 대해서만 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수준에서 멈췄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의원(민주통합당)은 “관계부처들의 밥그릇 싸움에 개선 대책에서 가장 핵심이 돼야 할 사고대응 체계의 일원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주민의 안전과 참여를 외면한 채 정부 부처의 이해관계만 반영된 국무총리실의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대책으로 제2의 구미 불산 사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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