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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갇힌 물 흐르게하자…구마강이 살아나고 은어가 돌아왔다

등록 2013-10-08 20:20수정 2013-10-08 22:29

지난해 9월1일 철거공사가 시작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미즈카미무라의 아라세댐. 2500개에 이르는 일본의 댐 가운데 사용 도중 처음으로 철거되는 댐이다. 1955년 이 댐이 준공된 이후 물고기가 사라지고 홍수가 빈발하자 구마모토현은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댐 철거를 결정했다.
지난해 9월1일 철거공사가 시작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미즈카미무라의 아라세댐. 2500개에 이르는 일본의 댐 가운데 사용 도중 처음으로 철거되는 댐이다. 1955년 이 댐이 준공된 이후 물고기가 사라지고 홍수가 빈발하자 구마모토현은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댐 철거를 결정했다.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의 미즈카미무라에서 발원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듯 115㎞를 흘러 서쪽 바다로 흘러드는 구마강은 중류의 강폭이 150m 안팎에 이르는 큰 강이다. 이 강에 댐 건설이 시작된 때는 1953년이었다. 강어귀에서 7㎞ 지점에 수력발전용 아라세댐이 1955년 가장 먼저 준공됐다. 1958년 아라세댐에서 상류 쪽 6㎞ 지점에 보조댐으로 세토이시댐이 건설됐고, 이듬해 강의 상류에 이치후사댐이 지어졌다.

일본의 댐 수명은 약 100년을 친다. 관리와 보수만 잘하면 몇백년을 쓸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그런데 가바시마 이쿠오 구마모토현 지사는 2010년 2월 현이 운영해온 아라세댐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총저수량 1014만㎥, 발전 최대 출력 1만8200㎾짜리 수력발전용 댐은 그해 3월부터 발전을 중단하고 수문을 전면 개방했다. 이어 2012년 9월1일 철거 공사가 시작됐다. 아라세댐은 2500개에 이르는 일본의 댐 가운데, 사용 도중 철거되는 첫 사례다.

댐의 철거 결정은 오래전부터 주민들이 강력히 요구해온 일을 현이 마침내 받아들인 것이다. 현은 2002년에 앞으로 10년만 더 댐을 이용하겠다고 약속했다가 철거 비용을 이유로 존속 방침으로 한때 돌아섰다. 그러자 주민들의 반대가 더욱 거세졌고 결국 현은 손을 들었다.

“댐을 지으면 견학 등을 이유로 관광객이 늘어나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홍수 조절이 이뤄지고, 전기료가 공짜가 될 것이라고 했지요.”

‘아라세댐의 철거를 요구하는 모임’의 대표로 댐 철거 운동에 앞장선 혼다 스스무(79)는 댐 건설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하지만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정반대로 강이 오염돼 그 많던 물고기가 사라지고, 홍수는 수해로 변했다. 반딧불 명소이던 구마강엔 반딧불이 사라졌고, 관광객이 끊겨 지역의 여관들이 모두 문을 닫았다.

약사인 쓰루 쇼코(64)는 1975년 미야자키현에서 구마강 하구 삼각주에 자리잡은 야쓰시로시로 이사 왔다. 사람들이 아토피 피부염 등 전에는 잘 걸리지 않던 질환을 앓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지역 환경 조사를 시작한 게 30여년 전부터다. 지난달 8일, 그가 아라세댐 상류 쪽 구마강으로 흘러드는 한 지류로 기자를 안내했다. 조류가 번성해 푸른색을 띠는 구마강의 물과는 달리, 지류의 물은 맑고 투명했다. 물속의 자갈에선 미끄러운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댐이 수문을 개방하기 전엔 이곳의 수위가 지금보다 2m가량 높았고, 썩은 물 같았어요. 지금은 은어가 헤엄치는 게 보이지요. 더운 날이면 아이들이 와서 물놀이도 해요. 전에는 출입금지였어요. 너무 더러워서.”

댐의 수문 개방으로 고여 있던 물이 흐르게 되자 3년여 만에 지류의 물이 아주 맑아졌다고 쓰루는 말했다.

아라세댐 주변 주민이 2010년 3월 수문 개방 이후 썩은 물 같았던 수질이 크게 개선된 댐 지류 현장을 안내하고 있다.
아라세댐 주변 주민이 2010년 3월 수문 개방 이후 썩은 물 같았던 수질이 크게 개선된 댐 지류 현장을 안내하고 있다.

댐 생긴 뒤 수해에 수질 나빠져
구마모토현 주민들 환경조사
생태복원 모임 꾸리고 활동

발전가동중인 댐 첫 철거 결정
“수문 열기 전엔 썩은 물 같았는데
지금은 은어 살고 물놀이 할수있어…
상류댐도 허물어야 원래모습 70% 회복”

양쪽 모두 콘크리트로 벽을 단단히 친 구마강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자, 세토이시댐이 가로막고 있다. 댐 위쪽의 물은 조류가 번성해 마치 녹찻물처럼 보인다. 수문을 연 아라세댐 주변보다 훨씬 탁해 보였다. 댐 위쪽에 쳐놓은 밧줄에 상류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들이 잔뜩 걸려 있다.

다시 강을 따라 내려가는데, 집의 담장이 조금 이상하다. 담장은 길 위에서 시작되는데, 집 마당은 담장 2m가량 높은 곳에 있었다. 1965년과 1966년에 물난리가 났고, 특히 1982년에 수해를 입은 뒤엔 4~5m 제방을 더 높여 쌓은 뒤 그 위에 새로 지은 까닭이다.

“댐을 짓기 전에는 큰물이나 홍수라는 말은 있었어도 수해라는 말은 없었다고 합니다.”

댐은 홍수가 나지 않게 물을 조절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물난리를 키웠다.

아라세댐에 막힌 물은 산 쪽으로 우회해 파놓은 터널을 따라 흐르다가 댐 아래쪽 700m 지점에서 좀더 큰 낙차로 떨어져 발전기를 돌린다. 발전소의 강 건너편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후쿠시마 세이지(82)는 한때 댐 건설과 운영을 주관한 현 기업국의 공무원이었으나, 댐 소재지인 야쓰시로시 사카모토무라의 지방의원을 12년간 맡아 댐 철거 운동을 적극 벌였다.

“목마르면 마시고 때 되면 쌀 씻던 물이었는데, 댐을 짓고 15년이 지나니까 은어가 안 잡히는 게 확연했습니다.”

기자에게 보여주려고 어릴 적 은어·뱀장어·게를 잡는 데 쓰던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온 후쿠시마는 “강을 건너려고 배를 타면 뱀장어가 얼마나 많은지 배로 곧잘 튀어오르곤 했다. 그걸 가져다가 먹었다”고 말했다. 은어·뱀장어잡이는 아이들의 손쉬운 용돈벌이였고, 대부분의 집이 고기잡이 배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댐이 만들어진 뒤, 은어의 치어는 댐에 막혀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산란기의 성어는 하류로 제대로 내려오지 못하게 됐다. 현은 해마다 사람들을 동원해 하구에서 은어 치어 300만마리 이상을 잡아 트럭으로 상류로 실어다가 방류하고 있지만, ‘한자짜리 야쓰시로 은어’의 명성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강물이 더러워져 구마강 하구의 연안에서 한때 800명에 이르던 김 양식업자는 3명으로 줄었다. 혼다 대표는 “물은 흐르지 못하게 막으면 반드시 썩는다. 댐이 있으면 지역경제가 절대 발전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댐이 있는 사카모토무라의 인구는 댐 건설 당시 1만6000명에서 지금은 4000여명으로 줄어 있다.

한때 지역 전력 수요의 30%를 감당하다가 그 비중이 0.7%(2010년)로 줄었다고는 해도 멀쩡하게 발전을 하고 있는 댐을 철거하는 결정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90억엔(한화 약 1000억원)에 이르는 철거 비용도 큰 문제였다.

쓰루는 “현이 운영하던 댐이었으니까 선거 때 주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어 철거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토건족을 비판한 민주당 정부 시기였으니까 철거 결정이 상대적으로 쉬웠다”고 말했다.

짓는 데 1년 반쯤 걸린 댐은 철거공사를 하는 데는 5년이 걸린다. 현장은 이제 겨우 수문의 일부 지지대를 철거하고 댐의 콘크리트벽 한 곳에 구멍을 뚫어 물이 흐르게 한 정도다. 그래도 수위가 낮아진 댐 위쪽에 벌써 모래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는 “강물에서 이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올해는 큰비가 왔지만 홍수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라세댐 철수만으로는 원래 환경의 30~40%밖에 회복하지 못한다. 세토이시댐을 추가로 철거해야 70%가량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라세댐을 운영하던 현 정부와 달리, 세토이시댐을 운영중인 전력회사인 전원개발은 주민들의 댐 철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어민들이 나서면 댐 운영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 구마강어업협동조합은 어업 피해가 크다며, 내년 3월로 끝나는 세토이시댐의 수리권을 갱신해주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강가엔 댐 철거 결정을 환영하는 펼침막이 아직 붙어 있다. 쓰루가 강 하구의 갯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썰물 때면 4㎞가량 바다 쪽으로 뻗어나가는 갯벌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굴갯가재를 잡고 있었다. 지금도 ‘자연관찰모임 구마모토 연락회’ 회장을 맡으며 매년 환경조사를 계속하고 있는 쓰루가 말했다.

“휴일이면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전에는 무릎 아래까지 푹푹 빠지는 갯벌이라 바다 쪽으로 멀리 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모래가 꽤 쌓여서 발이 깊이 빠지지 않고 멀리까지 갈 수 있게 됐지요. 갯벌식물인 아마모가 자라는 면적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게 종류를 조사해봤는데, 모래흙을 좋아하는 게 종류가 늘고 있어요.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이지요.”

야쓰시로(구마모토현)/글·사진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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