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와 스모그 등 중국발 대기오염이 문제될 때마다 정부는 “중국과 환경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혀왔다. 미세먼지의 30~50%는 중국에서 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환경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과 중국이 중국발 대기오염을 주제로 논의를 시작한 지는 20년이 가까워 온다. 1995년 9월 두 나라는 일본과 함께 ‘동북아시아 월경성 대기오염물질에 관한 회의’를 열어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LTP) 공동연구 진행에 합의했다.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공무원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자 그룹을 발족하기로 하고, 임시 사무국을 한국의 국립환경연구원(현 국립환경과학원)에 설치했다. 1995년은 한-중 수교 3년 뒤이니 그리 늦은 출발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얻은 성과물은 19년이라는 긴 시간을 고려하면 초라하다. 구체적 성과를 꼽자면 주요 대기오염물질의 하나인 황산화물과 질산염의 나라별 기여율을 확인한 것 정도다. 세 나라 사이에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인 미세먼지의 이동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초미세먼지(PM2.5) 연구에 들어가 2015년에야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공동연구 합의에서 황산화물 이동 시뮬레이션 연구에 들어가기까지 10년, 질산염에 대한 시뮬레이션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또 7년이 걸렸다.
시뮬레이션 연구는 오염물질 측정 자료와 배출량 자료를 기상 자료와 함께 컴퓨터 모델에 넣어 돌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확한 자료만 확보되면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진전이 늦은 이유가 과학적 난점이나 연구 역량의 한계는 아닌 것이다. 중국은 오염물질 측정 자료로 국가간 영향을 따져보기에는 부족한 연평균과 월평균 자료만 공동연구에 내놓고 있다. 인터넷에 대기오염 실시간 측정 자료를 올리고는 있으나, 이 자료는 확정이 안 된 자료여서 공동연구에는 참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배출량도 중국은 배출원별 자료가 아니라 성 단위의 지역별 배출 총량 형태로 공동연구에 제공하고 있다.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국립환경과학원 대기환경연구과 장임석 연구관은 “국가간 영향을 보고 예측까지 하려면 오염물질 측정 자료는 날짜별 자료까지 필요하고 배출량은 발전소·자동차 등 배출원별로 알 수 있어야 하는데 중국이 공개를 꺼려왔다.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비공식적으로 나온 자료로 연구를 하고 있지만, 세 나라 공동연구를 비공식 자료로 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진도가 느리다”고 말했다.
황을 대상으로 가장 먼저 이뤄진 시뮬레이션 결과, 우리나라에 떨어지는 황의 28.7%가 중국에서, 3.2%가 일본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으로 날려보낸 것도 각각 2.8%, 8.5%로 확인됐다. 동북아 대기오염은 엄격히 따지면 ‘서로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이지만, 그래도 중국이 주된 가해자임이 공식 입증된 셈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뒤 중국은 연구 결과를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
동북아 대기오염 문제에서 가해자 입장에 선 중국이 방어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환경부의 공식 입장은 “모른다”이다. 그래도 질문을 계속하면 “지금까지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30~50% 범위에 있다”고 설명한 뒤, “이 수치는 정부의 공식 견해가 아니라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정복영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과장은 그 이유에 대해 “세 나라의 공동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면 중국에서 근거 설명을 요구할 수 있고, 그러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일본은 따로 대기오염물질 조사를 해서 중국발이냐 일본산이냐를 구분해서 중국을 압박하는 것에 비춰보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중·일 공동 연구는 태생적으로도 한계가 있다. 세 나라 정부가 아니라 세 나라 국립환경연구기관 대표들이 참석한 실무자 그룹 회의의 ‘의장 요약문’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차원의 연구사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각 나라 정부 차원의 공식 사업도 아닌 셈이다.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정부 차원의 공식 대화도 진행되고는 있다. 1999년 처음 한·중·일 환경장관이 만난 것을 시작으로 매년 한·중·일 장관 회의가 열린다. 하지만 세 나라 국립환경연구기관들이 진행하고 있는 공동연구를 더 잘 뒷받침하자는 이야기 외에 새로운 차원의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가지 성과라면 지난 5월 우리 쪽 제안으로 ‘대기오염에 대한 3국 정책대화’ 창설에 합의한 정도다. 국립연구기관들이 중심이 된 공동연구가 정부 차원의 정치외교적 논의로 발전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 진전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정책대화’ 창설을 위한 후속 회의는 아직 한번도 열지 못했다. 정복영 과장은 “중국에서 내부적으로 정리가 된 뒤에 만나자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세 나라가 유럽·북미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월경성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에 관한 협약’(CLRTAP) 같은 대기오염 방지 협약을 맺고, 구속력 있는 대기오염물질 감축 노력을 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세 나라 국립연구기관들이 진행하는 공동연구는 이런 방향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부에 대기오염 방지 협약은 아직 먼 이야기다. 환경부 관계자는 “한-중 환경협력의 궁극적 목표나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에 공식적으로 정해진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한-중 환경협력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이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종국적으로는 세 나라 사이에 협약을 맺어서 배출 기준을 통일하고, 그것을 담보하기 위한 부과금적 성격의 강제수단까지 나와야 된다”고 말했다. 갈 길이 너무 멀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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