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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멸종 위기 곤충들, 불법 송전탑 공사에 시름

등록 2014-01-21 19:49수정 2014-01-22 12:13

강원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둔내변전소 옆에 불법으로 세워진 송전탑들. 왼쪽의 원통형 송전탑이 둔내~횡성 구간 154㎸ 송전선로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이어진 다섯개의 송전탑은 모두 산업통상자원부의 실시계획 승인도 없이 설치된 불법 시설물이다. 송전탑들 주변의 수목과 생태계는 환경영향에 대한 사전 검토도 없이 파헤쳐졌다. 횡성/김정수 선임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강원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둔내변전소 옆에 불법으로 세워진 송전탑들. 왼쪽의 원통형 송전탑이 둔내~횡성 구간 154㎸ 송전선로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이어진 다섯개의 송전탑은 모두 산업통상자원부의 실시계획 승인도 없이 설치된 불법 시설물이다. 송전탑들 주변의 수목과 생태계는 환경영향에 대한 사전 검토도 없이 파헤쳐졌다. 횡성/김정수 선임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지구와 환경] 먹구름 낀 ‘곤충들의 천국’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 산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의 이강운 소장(농학박사·안동대 식물의학과 겸임교수)은 연구소 주변 산등성이에 세워진 송전 철탑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연구소에서 바라다보이는 송전 철탑들은 한국전력의 횡성~둔내 구간 154㎸ 송전선로 18.5㎞의 일부다.

이 송전선로는 연구소 주변의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을 포함해 생태적으로 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 3.3㎞를 지나간다. 통과지 주변에는 깊은산부전나비,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왕은점표범나비 등 곤충류 멸종위기종만 다섯종이 서식한다. 삵, 하늘다람쥐, 황조롱이, 수달, 담비, 독미나리 등 다른 멸종위기종 동식물을 포함하면 송전선로 통과 지역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은 11종에 이른다.

“멸종위기종들은 특히 환경 변화에 민감합니다. 멸종위기종 곤충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멸종위기종들을 지정한 것은 이들이 매우 사소한 이유로도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특별한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송전탑 건설에 따른 서식지 파괴가 미소서식지(Micro Habitat)를 요구하는 멸종위기 곤충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줄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 15일 연구소를 찾은 방문객에게 이 소장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송전선로 통과 구간을 포함한 연구소 주변은 ‘살아있는 곤충 표본실’이라고 할 만한 곤충들의 천국이다. 19년 전 좋아하는 곤충 연구에 전념하려고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둔 이 소장이 가족과 함께 이 산골짜기로 내려온 것도 이 지역의 이런 가능성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이 소장이 1997년부터 최근까지 연구소 주변에서 채집해 표본으로 만든 곤충만 4000종이 넘는다. 우리나라 전체 곤충종 1만7000여종의 20%가 넘는 곤충들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반경 1.6㎞의 좁은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셈이다. 인근 치악산 국립공원의 곤충 종수가 2300여종에 불과한 점과 비교하면 이 지역이 얼마나 큰 곤충의 보고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소장은 “곤충들은 70% 이상이 여러 가지 먹이를 먹지 않고 특정한 먹이만 먹는 스페셜리스트이기 때문에 다양한 곤충이 서식하려면 식생이 다양해야 하는데, 이곳에 초본류에서부터 최상층의 서어나무까지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혼재하고, 섬강 상류여서 1년 내내 물이 좋은 점 등이 곤충들에게 최상의 서식 조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횡성 산골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반경 1.6㎞ 곤충 4000여종 서식
환경평가 무시한 송전탑 공사
물장군·애기뿔소똥구리 등 위태
이강운 소장 “원상회복 투쟁할 것”

지난해 사실상 마무리된 한국전력의 횡성~둔내 구간 154㎸ 송전선로 공사는 이 지역의 이런 생태적 가치에 눈을 감아버린 채 진행됐다. 공사는 시작부터 불법이었다. 한국전력은 2012년 8월 당시 지식경제부로부터 이 구간에 49개의 송전탑을 세우는 내용의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받고는 실제로 54개의 송전탑을 세웠다. 둔내변전소에서 출발하는 1번 송전탑에서 5번 송전탑까지 5개 송전탑은 공사에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실시계획 승인도 없이 세워진 불법 시설물인 셈이다.

지난 15일 횡성 둔내변전소에서 만난 김진환 한국전력 송변전건설처장은 “송전선로가 시작되는 변전소 위치를 실시계획 승인을 받은 위치에서 옮기는 바람에 선로 거리가 2㎞가량 늘어나게 되면서 송전탑 5개가 더 들어가게 됐는데, 현장 사업부서에서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일단 공사를 진행하면서 실시계획 변경 절차를 밟으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불법 공사 사실을 인정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공사중지 명령을 내리고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송전탑과 송전선로 공사는 이미 마무리돼 송전 시험까지 마친 상태다. 불법 송전탑 주변 지역의 환경과 생태계는 송전탑 공사와 공사를 위한 진입로 개설 과정에서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훼손돼 버린 것이다.

애초 실시계획 승인을 받았던 49개의 송전탑 공사도 환경영향에 대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송전선로는 멸종위기종인 깊은산부전나비와 왕은점표범나비 서식지를 관통한다.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 붉은점모시나비 서식지와의 거리는 100~300m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전력이 작성한 사전환경성 검토서에는 송전선로 주변의 이런 멸종위기종 서식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돼 있지 않다.

이 소장은 “멸종위기종 곤충들은 각기 특별한 생존 조건을 요구하는데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송전탑 공사 과정에서 이뤄진 환경 훼손에 의한 서식지 교란, 송전탑에서 발생하는 소음, 전자파 등이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며 송전탑 통과 지역 주변의 멸종위기종 가운데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종으로 물장군과 애기뿔소똥구리를 꼽았다. 이들 두 종은 붉은점모시나비와 함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가 멸종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여러 해 전부터 집중적인 노력을 쏟아온 종이기도 하다.

2~6 송전탑 설치 지역 주변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곤충들(번호순으로 붉은점모시나비, 깊은 산부전나비, 왕은점표범나비, 물장군, 애기뿔소똥구리) 횡성/김정수 선임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클릭하면 이미지가 크게 보입니다.)

이 소장은 2012년 8월 물장군 암수 40쌍을 연구소에서 동남쪽으로 2㎞가량 떨어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강원도축산기술연구센터 방목지 옆 습지에 풀어놓았다. 2007년 8월 횡성과 철원 지역에서 물장군 암수 6마리를 잡아와 5년 동안 실패를 거듭하며 얻어낸 성과였다. 현천리 습지의 물장군 방사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모니터링에서 현천리 습지의 물장군 개체수는 1천여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현천리 습지 물장군 서식지는 멸종위기종인 독미나리 자생지와 붙어 있고, 또다른 멸종위기종 애기뿔소똥구리 서식지인 축산기술연구센터 방목지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연구소가 물장군 서식지로 현천리 습지를 선택하는 데는 이처럼 다른 멸종위기종 서식지와 인접해 이들과 함께 더 철저한 보호가 가능할 뿐 아니라 습지 주변이 밤에 물장군들을 유혹할 수 있는 인공 불빛이 전혀 없는 안전지대라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됐다.

하지만 지난해 현천리 습지에서 직선거리로 100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물장군들에게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 없게 됐다. 이 소장은 “물장군은 몸체에 비해 뒷날개가 굉장히 작아 멀리 날지 못하는데, 인공 광원이 전혀 없는 서식지 주변에서 유일한 인공조명인 송전탑 경고등에 이끌려 날아갔다가 서식지로 되돌아오지 못하고 죽는 일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부설 한국곤충연구소 윤태중 교수팀이 2010년 곤충학 저널 <아쿠아틱 인섹트>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가로등과 테니스장 불빛 등과 같은 인공조명은 물장군을 멸종위기로 몰아가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송전탑에서 반짝이는 항공기 경고용 불빛이 그리 밝지는 않지만 다른 불빛이 전혀 없어 곤충들에게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장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불법 공사로 환경을 파괴되는 것이 더 일어나지 않도록 한전이 불법 공사 부분을 원상복구한 뒤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영향을 제대로 검토해 사업을 수정하도록 끝까지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횡성/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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