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투자활성화 명분 법개정 추진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는 암덩어리”라고 선언하는 등 정부 차원의 규제완화 조처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의 취지를 후퇴시키는 내용의 법개정안을 내놨다. 환경영향평가 때 주민 참여와 부실 영향평가를 바로잡을 기회를 줄일 수 있는 내용의 개정안을 두고 환경부는 ‘무역투자 활성화 조처’라고 밝혔다. 규제완화 논리에 밀려 환경부 본연의 구실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부가 13일자로 입법 예고한 환경영향평가법 일부개정안은 현재 주요 개발사업을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작성과 그에 대한 주민의견 수렴을 생략할 수 있게 하는 예외 조항을 담고 있다. 환경부는 사업 초기 단계인 개발계획 수립 때 충분한 주민의견 수렴을 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개발계획 수립 단계에선 구체적인 환경피해를 제대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주민의견 수렴이 형식에 그치게 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녹색연합은 “실질적인 환경피해가 예상되는 실시설계 단계에서 주민들이 환경피해 저감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게 해 사업자가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민의견 수렴의 목적”이라며 “개발계획 단계에서의 사전 의견 수렴으로 실시계획 단계의 의견 수렴을 생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형식적 절차로 방기하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개정안은 또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가 부실한 경우 환경부가 횟수 제한 없이 내릴 수 있게 돼 있는 보완·조정 요구를 최대 2번으로 제한하고 있다. “환경부가 스스로의 권한을 내다버리는 꼴”이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에 대해 정종선 환경부 국토환경정책과장은 “같은 사항의 보완 요구를 이행하지 않아 계속 보완 요구를 하는 경우는 횟수로 계산하지 않고, 보완 요구를 이행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밀양 송전탑 갈등 현장에서처럼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해 보완 요구를 한 뒤 환경단체나 주민에 의해 새로운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논란을 빚은 개발사업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환경평가를 둘러싼 갈등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2008~2012년의 환경영향평가 협의 1282건 가운데 환경부가 평가서를 반려한 경우는 6건으로,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배보람 녹색연합 정책팀장은 “절차 간소화를 내세운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은 투명성과 민주주의 원칙이 어디보다 중요한 환경영향평가에서 평가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만 더 키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투자 활성화 대책을 통해 의료·교육 등 분야에서 규제완화를 추진한 데 이어 최근에는 “암덩어리”, “쳐부술 원수” 등의 격한 표현을 써가며 규제 혁파를 요구하고 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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