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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바다 낀 아름다운 철길’ 꼭 상업시설에 내줘야 하나요?’

등록 2014-04-06 20:55수정 2014-04-07 11:24

지난 2일 어린이집 원생들이 기차가 다니지 않는 동해남부선 부산 해운대 미포~송정역(4.8㎞) 구간을 인솔교사와 함께 걷고 있다. 뒤쪽에 해운대해수욕장과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렸던 동백섬 등이 보인다.
지난 2일 어린이집 원생들이 기차가 다니지 않는 동해남부선 부산 해운대 미포~송정역(4.8㎞) 구간을 인솔교사와 함께 걷고 있다. 뒤쪽에 해운대해수욕장과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렸던 동백섬 등이 보인다.
[지역 쏙] 개발? 보존? 갈림길에 놓인 동해남부선 폐선

올해 여든 살을 먹은 동해남부선의 부산 해운대역이 도심 밖으로 이전하면서 옛 철길의 상업개발과 원형 보존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호텔 등을 짓고 개발해 돈을 벌자는 주장과 원형을 살려 시민공원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맞선다. 동해남부선 옛 기찻길이 어떤 모습으로 주민 품으로 다시 돌아올까?
“와~ 바다다!”

지난 2일 동해남부선 옛 철길인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수욕장 동쪽 맨 끝의 유람선선착장 근처 미포~송정역 4.8㎞ 구간을 아장아장 걷던 어린이집 원생 10여명이 바다가 보이자 소리를 내질렀다. 일부는 깔깔거리며 철길을 내달렸다. 인솔교사 이지연(35)씨는 “이렇게 아름다운 철길은 처음 본다. 철길이 위험하지 않아 아이들이 자주 와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등산복이나 간편한 옷을 입고 옛 철길을 찾은 60~70대들은 손자·손녀뻘 되는 아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물으며 말을 건네거나 함박웃음을 지었다. 80여년 동안 사람과 화물을 실어나르던 철길은 자연을 벗삼아 남녀노소가 함께 떠들고 즐기는 열린 공간으로 변모했다.

앞서 가던 60~70대 여성 세 명은 철길을 걸으며 티격태격했다. 유아무개(65·부산 해운대구 좌동)씨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미포~옛 송정역 구간에 레일바이크(궤도자전거)가 운행된다는 얘기를 듣고선 흥분했다. 유씨는 “왜 자연을 훼손하려고 하느냐. 후손을 위해 철길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같은 마을에 사는 박아무개(71)씨는 “레일바이크 옆에 산책로가 조성되면 되지 않겠나”라고 되받았다.

미포~옛 송정역 구간은 시민들한테 임시로 개방된 지난달 1일부터 토·일요일이면 양쪽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마주칠 때는 서로 비켜서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넘쳐난다. 왜 시민들은 미포~옛 송정역 구간에 열광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빼어난 풍광이 탄성을 자아낸다. 시작 지점인 미포에서 10분 남짓 걸으면 오른쪽에 동해가 펼쳐진다. 뒤를 돌아보면 해운대해수욕장과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렸던 동백섬, 광안대교, 용호만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철길 왼쪽엔 소나무와 편백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미포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바다 냄새를 음미하며 40여분 가니 청사포가 나왔다. 등대를 바라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니 송정해수욕장이 보이는 구덕포에 도착했다. 철길 옆 언덕에 올라가 송정해수욕장 근처의 울창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옛 송정역에 도착했다. 미포를 출발한 지 1시간40분 만이다.

1930년대 개통된 ‘부산시민의 발’
복선전철화로 신노선 뚫리면서
80여년만에 11.3㎞ 역사 속으로

철도시설공단은 폐선 구간 개발
레일바이크 등 상업화 계획 추진
시민단체·시장 후보들은 반대
“원형 보존…시민 품에 돌려줘야”

■ 상업시설에 위협받는 옛 철길 동해남부선은 부산 동구 수정동 부산진역~경북 포항을 잇는 143.2㎞의 철길이다. 일제강점기 동해안의 해산물과 자원을 부산에서 강원도 원산까지 운반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1918년 10월 경북 경주~포항 노선에 이어 1935년 12월 부산~경주 구간이 개통됐다.

동해남부선은 도시들을 잇는 광역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부산·울산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교통수단이었다. 보따리를 들고 오일장을 따라 이동했던 할머니들한테는 동해남부선이 생계를 잇는 동아줄과도 같았다.

동해남부선은 80여년의 나이를 먹으면서 변화를 겪었다. 부산진역 두 정거장 앞의 부전역이 출발지가 됐다. 또 2017년 12월까지 부전역~태화강역(옛 울산역) 65.4㎞ 구간의 철로가 한 짝(단선)에서 두 짝(복선)으로 늘어난다. 앞서 내년 12월 부전역~일광역 복선 구간이 먼저 개통한다. 맞은쪽에서 열차가 오면 기다렸다가 운행하는 단선에서 쌍방향 동시 운행이 가능한 복선으로 바뀌면 운행 횟수가 현재보다 적게는 2배 이상 늘어나고 부전역~태화강역 운행시간도 현재 70여분에서 50~60여분으로 줄어든다.

부전역~태화강역 구간의 복선전철화는 일부 노선의 변경도 가져왔다. 부산 옛 해운대시가지를 관통하던 해운대역이 신시가지 외곽으로 이전하고 옛 송정역이 북쪽으로 살짝 이동하면서 부산도시철도 2호선 시립미술관역 올림픽교차로(벡스코 앞)~동부산관광단지 11.3㎞ 구간은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부산시는 현역에서 은퇴한 철길을 활용하기 위해 628억원을 들여 올림픽교차로~동부산관광단지 구간 11.3㎞ 가운데 9.8㎞와 부전역~올림픽교차로 고가차도 아래 옛 철길 11.2㎞에 산책로와 자전거길 등을 2020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해 12월2일 폐쇄된 옛 해운대역(2만6836㎡)과 미포~옛 송정역 구간 4.8㎞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민간사업자를 상대로 공모를 했다. 지난달 28일 끝난 공모에선 부산의 언론사 3곳이 포함된 컨소시엄 3곳과 기업체 3곳 등 6곳이 사업제안서를 냈다.

부산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난해 11월 동해남부선 폐선을 활용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부산시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상업개발계획 구간을 뺀 나머지 구간을 활용하는 대가로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상업화 추진 계획을 적극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현재 주거지역 등으로 묶여 있는 옛 해운대·송정역사 근처를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민간사업자가 제안한 사업 가운데 수익성이 가장 뛰어난 사업을 10일 선정하고 올해 8월 민간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어 민간사업자와 함께 특수목적법인을 만들어 30년 동안 운영할 계획이다.

■ 차기 부산시장 후보들도 상업화 반대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부산녹색연합·부산생명의숲·해운대시민포럼 등은 7일 해운대 기찻길 친구들을 발족해 옛 철길의 상업화 반대운동을 시작한다. 또 시민단체들은 옛 철길을 시민공원으로 만든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광주광역시 푸른길’과 ‘서울 경의선 공원’ 등을 조사해 전국의 옛 철길을 주민들한테 돌려주기 위한 운동도 벌일 태세다.

광주광역시의 시민단체들은 2000년 8월 광주 도심을 지나던 광주역~효천역 8.2㎞ 구간의 운행이 중단되자 철길을 걷어내고 공원을 조성하는 운동을 펼쳤다. 옛 철길에 경전철을 만들려던 광주광역시도 10년 동안 278억원을 들여 나무심기 등을 벌였다. 광주시민 1만여명은 1만~100만원씩 모두 5억원을 내 나무를 심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3월 광주 도심에는 12만227.6㎡의 공원이 새로 생겼다.

서울시는 2005년 지상에 있던 철로가 땅밑으로 들어간 경의선 서울 용산문화센터~마포구 가좌역 6.3㎞ 구간을 공원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4월 경의선 공덕역~서강역 760m 구간 1만7400㎡가 먼저 공원으로 바뀌었다.

6월4일 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들도 상업개발에 비판적이다. 오거돈 무소속 예비후보는 3일 부산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을 방문해 옛 철길 개발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전달하고 공식 답변을 요구했다. 김영춘 새정치민주연합 예비후보도 옛 철길의 원형 보전을 촉구했다. 서병수·박민식 새누리당 후보는 시민 의견을 더 수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운대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활용을 위한 시민모임’의 조용우 대표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옛 해운대역엔 중저가 호텔을 만들고 미포~옛 송정역 구간은 레일바이크 등을 계획하고 있다. 옛 철길의 침목과 철로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상업시설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철길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레일바이크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 더 좋은 상업화 모델을 찾기 위해 민간사업자의 제안을 공모한 것이다. 주민설명회를 열어 가장 좋은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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