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의 아파트에 사는 한 주부는 지난해 말부터 아침마다 안방 화장실에서 나는 담배 냄새 때문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화장실 환풍기를 타고 다른 집에서 스며드는 게 분명한데 어느 층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특정할 수 없어 따지기도 어렵다. 애연가인 이 아무개(45)씨는 그동안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다, 윗집에서 불만을 제기하자 얼마전부터 화장실 환풍기를 틀고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옥상으로 빠져나갈테니 피해도 적고 연기의 발원지를 찾기도 어려우리란 짐작에서다. 그것도 잠시, 어떻게 알았는지 오래지 않아 윗집의 항의가 다시 거세졌다.
이유가 있었다. 아파트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면 환기구를 통해 위·아랫집으로 빠르게 연기와 오염물질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8일 발표한 ‘실내 흡연과 미세입자 거동 특성 연구’ 결과를 보면 화장실에서 환풍기를 켜고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5분 안에 윗집과 아랫집으로 퍼져나간다. 화장실에서 환풍기를 켜고 담배 2개비를 피우는 실험을 했더니, 아랫층과 바로 윗층은 물론 더 윗층 화장실의 미세먼지(PM10) 농도까지 15~20㎍/㎥ 증가하고, 그 영향이 1시간 넘게 지속됐다. 다만 이때 윗집과 아랫집 화장실에도 환풍기가 켜져 있으면 담배 연기가 유입되지 않았다.
아파트의 작은 방(24㎡가량)에서 문을 닫고 담배 2개비를 피우면 실내의 미세먼지 농도가 지하역사·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 기준치(150㎍/㎥)의 8배가 넘는 1300㎍/㎥까지 치솟았다. 모두 가라앉는 데는 20시간가량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발생하는 연기 속의 비소·크롬·카드뮴 등 중금속 농도를 2012년도 다중이용시설 실내공기질 조사 때 실내주차장과 버스터미널 대합실에서 측정된 결과와 비교해보니 흡연에 따른 중금속 농도가 평균 2~3배가량 높았다.
아파트 입주자들의 온라인 카페 등을 살펴보면 이웃에서 날아오는 담배 연기 피해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층간소음과 달리 담배연기 피해는 환경분쟁조정법상 조정 대상이 아니다.
서울시 지방환경분쟁조정위원회 오진기 심사관은 “아파트 입주민한테서 가끔 담배연기 피해 분쟁 조정에 대한 문의전화가 오는데, 담배연기 피해는 환경분쟁조정법상 조정 대상이 아니어서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하라고 안내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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