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지구인들과 특히, 덴마크 레고(Lego)사에
나는 아기곰과 함께 얼음을 찾아 10일 동안 400일 이상을 헤엄쳐 이동했습니다. 몸무게가 100파운드(약 45㎏) 이상 빠졌습니다. 나는 북극에 살고 있는 곰입니다. 나는 얼마 전 결국 아기곰을 잃었습니다. 지구의 기후가 변하면서 우리가 살 얼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인간들이 세계적인 석유 기업이라는 로열더치 셸(Royal Dutch Shell)이 2015년 북극 지역에서 석유를 시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석유를 채취하기 위해 곳곳에 구멍을 뚫게 되면 북극의 환경 오염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셸은 어린이들 최고의 장난감 ‘레고(Lego)’와 50년 동안 협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친근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서지요. 셸이 북극을 떠날 수 있도록 여러분이 지혜를 모아주세요. 부탁합니다.
-다시 얼음을 찾아 이동해야 하는 북극곰 올림
기후 변화가 진행되면서 북극곰이 서식할 수 있는 얼음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북극곰은 무단 포획과 기름 유출, 지나친 자원 개발 등으로도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최근 북극곰의 해안 활동이 줄어들면서 주요 먹이가 바다표범에서 흰 기러기로 바뀌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제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Green Peace)를 통해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세계적인 석유 기업인 셸이 2015년 북극에서 석유를 캐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겁니다. 위에 쓴 편지는, 그린피스에서 취재한 내용을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북극곰이 직접 쓰는 편지 형식으로 재가공한 내용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지난 9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레고의 최고경영자(CEO) 요르겐 비크 크누트슈토르프(Jorgen Vig Knudstorp)는 2011년에 맺은 셸과의 계약은 존중하겠지만 “현재 상황을 감안하여 셸과 계약이 끝나면 더 이상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
▷ 관련 기사: Lego ends Shell partnership following Greenpeace campaign)
그렇다면 레고는 과연 셸과 어떤 형태의 협력관계를 50년 동안 유지해왔으며, 그린피스는 레고에 어떤 과정으로 캠페인을 벌여 두 손을 들게 만들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과정을 하나씩 설명해보겠습니다.
레고와 셸의 이익 극대화 협력관계
북극곰의 절규를 접한 그린피스가 북극과 북극곰을 구하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인 건 지난 초여름입니다.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은 우선 덴마크에 본사를 둔 레고사를 찾아가 이렇게 요청했습니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푸른 꿈과 희망을 선물하는 장난감 회사인 레고가 다국적 석유 회사 셸과 협력하는 것은 레고 이미지에도 좋지 않습니다. 셸은 레고의 좋은 이미지를 활용해 북극을 검은 기름으로 뒤덮으려고 합니다. 셸과 협력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보십시오.”
1970년대부터 셸과 여러 사업을 벌여온 레고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손을 놓기엔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25개국 셸 주유소에서 레고 장난감을 팔고 있습니다. 레고사는 1992년까지 셸의 로고가 들어간 레고 세트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부터는 셸이 후원하는 이탈리아 스포츠카 회사인 페라리(Ferrari) 자동차를 레고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프리미엄 휘발유를 구매한 운전자들에게 제공되면서 인기를 끌었지요. 이 페라리 세트를 소장하기 위해 프리미엄 휘발유를 넣는 운전자들까지 생겨났습니다. 전 세계에서 1600만대의 페라리 레고 세트가 판매됐습니다. 레고사 최대의 공동 프로모션이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하네요.
프로모션 기간 동안 셸의 휘발유 판매도 7.5%나 늘었습니다. 셸의 욕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1년 셸은 경주용 자동차 경기 중의 하나인 에프원(F1)의 후원사로 나섰습니다. 레고는 F1 경기에 출전하는 차량의 미니카를 만들어 사은품으로 만들어 셸의 홍보를 돕고, 구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누구 하나 손해 볼 일 없는 이 달콤한 협력은 이렇게 해마다 연장되어 왔습니다.
그린피스와 레고 팬, 북극곰의 협공
그린피스의 요청을 받고 레고사가 고민에 빠진 사이, 그린피스와 레고 팬, 북극곰은 환상적인 협공을 펼쳤습니다. 지난 7월8일, 그린피스는 유튜브에
‘레고, 모든 것이 멋지지만은 않다(LEGO: Everything is NOT awesome)’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1분54초 분량의 영상은 북극에서 원유가 유출된다면 자연이 어떻게 파괴될지를 레고 장난감을 이용해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참혹합니다. 검은 석유로 뒤덮인 북극에서 셸의 깃발만 우뚝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린피스는 “셸은 우리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적었습니다. 이 영상은 6500만명이 볼만큼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영상이 폭발적으로 공유되면서 화면 하단에 있는 서명 요청 배너를 본 사람들은 레고가 셸과 계약을 중단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에 서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100만여명이 서명을 했습니다. 100만명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홍콩 등 10개국에서 레고 미니 인형들의 깜찍한 시위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덴마크 레고랜드에 있는 셸 주유소에 나타난 미니 피규어들은 주유소 한복판에 배너를 걸기도 했습니다. 상상력으로 무장한 레고 미니 피규어의 시위는 SNS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어린이 부대도 나섰습니다. 레고를 사랑하는 어른들은 자녀들과 영국에 있는 셸 본사 앞을 찾아갔습니다. 어린이들은 레고를 들고 북극에 사는 동물들을 만들었습니다. 북극곰과 바다코끼리 등의 모형 장난감을 들고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레고에겐 위협적으로 비치지 않았을까요.
결국 레고 최고 경영자도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이제 셸에 “북극을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해마다 이상 기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동물과 공존하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진 그린피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