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소리, 삵, 담비, 하늘다람쥐, 노루, 족제비, 수달멧토끼
[토요판] 커버스토리
야생동식물 찾아 가리왕산 2박3일
수달에서 담비까지 쫓겨날 동물들
그 흔적을 따라 가리왕산 2박3일
야생동식물 찾아 가리왕산 2박3일
수달에서 담비까지 쫓겨날 동물들
그 흔적을 따라 가리왕산 2박3일
알파인 스키장 건설로 가리왕산에서 쫓겨나고 있는 우리들을 소개합니다. 가리왕산 하봉 인근에 빨간 씨앗이 박힌 배설물을 낙엽 위에 남긴 이는 다름 아닌 오소리입니다. 벌목이 시작되기 직전인 한달 전에 남긴 배설물인데도 오소리가 좋아하는 다래의 씨앗이 여전히 촘촘히 박혀 있네요. 큰 바위 틈에 지린내를 남기며 영역을 표시한 삵은 시끄러운 공사 소리에 놀라 멀리 달아났습니다. 몸집은 작지만 사냥의 달인인 ‘노란목도리’의 담비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가리왕산을 떠났습니다. 가죽날개를 펴고 나무 사이를 ‘나는 게 아니라 멋지게 추락’하던 하늘다람쥐는 하늘길을 잃었습니다. 가리왕산을 뛰어다니던 산토끼는 자주 쉬어 가던 나무그늘을 뺏겼고, 오대천에 사는 수달은 스키장에서 물을 끌어다 쓰면 계곡의 물이 말라 먹이가 없어질까 걱정입니다. 행동반경이 넓고 밤낮으로 움직이는 족제비는 이제 어디 가서 살아야 할까요. 높은 지대에서 뿔질을 하며 나무껍질을 벗기던 노루는 깎인 산봉우리를 허망하게 바라봤습니다. 축하해요. 평창올림픽. 우리는 사라집니다. 총총총.
들꿩의 휘파람과 수달의 똥, 지금이라도 지킬 수 있다
겹겹이 쌓인 시간의 기록이 거꾸러지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12일 오후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장 예정 터인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의 가리왕산 해발 1000m 어름의 고지에는 얼핏 봐도 높이가 20m 넘는 나무들이 연달아 넘어지고 있었다. 이미 이곳은 지난 9월17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벌목 작업으로 숲 사이에 30~50m 폭으로 길이 났다. 이런 큰 폭의 길은 스키장 슬로프 예정 부지로 해발 500m 계곡에서 1380m 높이의 하봉까지 뻗쳐 있었다. 공사부지는 무려 259만㎡에 달한다. 환경단체인 ‘우이령사람들’ 이병천 회장(산림생태학 박사)의 표현으로 “군사작전처럼 진행된” 벌목작업은 겨우 일주일 만에 산을 마치 바리캉을 잡고 머리카락을 한 길로 밀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이날 오후 벌목공 세 사람은 슬로프 예정부지 가장자리에서 남아 있는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스톱워치를 꺼냈다. 전기톱이 나무껍질에 닿는 시점에 단추를 눌러 나무가 쓰러지기까지의 시간을 재봤다. 높이 20미터 넘는 참나무가 37초 만에 넘어졌고, 비슷한 높이의 자작나무도 32초 만에 쓰러졌다. 3~4m 높이의 단풍나무는 3초 만에 아작이 났다. 이미 일정한 길이로 토막난 채 목재감으로 쌓여 있는 지름 70~80㎝ 이상의 신갈나무, 음나무 등의 고목들도 100년 넘은 나이테의 단면을 1~2분 만에 드러냈을 것이다. 그런 목재들이 차곡차곡 트럭에 실려 산길을 내려갔다.
‘바람을 타고 멋지게 추락하는’
하늘다람쥐의 나무 사이 활공
숲이 단절되면 이동 제한되고
지표면에 추락해 천적에 노출
로드킬이 그들을 기다릴지도 활강 스키장 예정부지 앞의
오대천 부근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의 배설물 확인
오대천의 물 끌어다 쓸 경우
이들은 직접적 영향 받을 것 동물들은 왜 설악산보다 가리왕산 좋아하나 <한겨레>는 지난 12일부터 3일 동안 가리왕산 현지에서 <야생동물 흔적 도감>의 공저자이자 야생동물 전문가인 최현명씨와 함께 동물의 흔적을 쫓았다. 14일엔 <한국의 나무> 공저자인 김태영씨가 합류했고, 산림청에서 30년간 근무한 이병천 회장도 동행했다. 이들과 함께 알파인(활강) 스키장 조성 공사가 국내에서 손꼽히는 원시림이자 희귀식물 자생지인 가리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했다.
지금은 별천지박물관이 된 정선군 북평면의 북평초등학교 숙암분교 인근에는 차를 타고 가리왕산에 오를 수 있는 비포장 산길이 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30여분 차를 타고 달리면 산의 7~8부 능선에 설치된 높이 2m의 철제 울타리가 등장한다. 최현명씨는 “가리왕산은 바위가 많은 골산(骨山)이 아니라 주로 흙으로 덮인 육산(肉山)이다. 야생동물은 골산보단 육산을 더 좋아한다. 야생동물 입장에선 설악산보다 살기 좋은 곳이 가리왕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서식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은 역시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다. 대표적인 것이 가리왕산 구석구석 뻗은 산길과 철제 울타리다. 총연장 32㎞에 이르는 철제 울타리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당시 동부지방산림청 정선국유림관리소가 총사업비 40억원을 들여 설치했다. 왜 이 높은 곳에 철제 울타리를 설치한 것일까. 정선국유림관리소 보호관리팀 관계자는 “구획을 나눠 야생동물을 보호, 증식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1990년대에 가리왕산 고지대가 야생동물 증식장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씨는 “이 울타리는 야생동물 입장에서 백해무익하다. 제한된 곳에서 물이나 먹이를 구할 수밖에 없고, 근친교배로 도태할 우려도 있다”고 반박했다. 야생동물을 증식하기 위해 설치한 구조물이 오히려 해악을 미치고 있다는 것일까. 정선국유림관리소 관계자는 “울타리를 설치할 때의 취지와는 달리 야생동물에게 해를 끼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2008년 일부 구간을 철거했다. 그 이후론 사업계획이 잡히지 않고 예산이 없어 방치된 상태”라고 밝혔다. 이런 논란 많은 울타리를 끼고 산길을 달려 알파인 스키장 공사 부지에 도달했다.
슬로프 예정 부지 인근에는 등산로가 없지만, 최씨는 “동물로(路)가 보인다”며 숲 속으로 들어섰다. 최씨의 뒤를 따랐다. 숲에 들어서자 ‘금강제비꽃’ 군락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금강제비꽃은 국내에서만 발견되는 특산식물의 하나로 금강산에서 처음 알려졌다는 식물이다. 산비탈에는 낙엽이 깔려 있었고, 군데군데 도토리가 눈에 띄었다. 최씨는 “먹이 측면만 보면 살기 나쁜 환경이 아닌데도 농촌 뒷산보다 동물의 흔적이 없다. 야생동물이 꽤 있는 숲이라면 사람 발걸음 소리를 감지한 노루가 저 안에서 경계하며 ‘케욱케욱’ 하며 울고, 다람쥐와 청솔모가 지나다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십여분쯤 ‘동물로’를 따라가다 최씨가 하나의 흔적을 발견했다. 멧돼지 집이었다.
“멧돼지는 포유류 중에 드물게 집을 짓고 사는 동물입니다. 구덩이를 파서 나뭇잎, 잔가지를 충분히 깔고, 위에 철쭉 등의 관목을 꺾어 지붕을 만듭니다. 새끼가 워낙 연약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이렇게 집을 짓는대요. 그렇다고 집에 오래 머물진 않습니다. 한 1주일 정도 머물다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죠. 상태를 볼 때, 지난해 머문 집으로 보입니다. 멧돼지가 생긴 것과는 달리 예민해서 소음이 있는 곳에서 절대 새끼를 키우지 않습니다.”
능선을 향해 오르다 나무 위 하늘다람쥐 인공둥지를 발견했다. 천연기념물 제328호인 하늘다람쥐는 딱따구리 등이 파놓은 나무 구멍 등에 사는데, 드물게 사람이 만들어 준 인공둥지에도 기거한다. ‘하늘15’라는 표지가 적힌 인공둥지에는 하늘다람쥐가 없었다. 최씨는 “하늘다람쥐는 야행성으로 낮에는 둥지에서 잠만 잔다. 나무를 두드리면 고개를 내미는데, 이 둥지엔 없는 모양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발간된 ‘중봉 알파인(활강) 경기장 환경영향평가서(초안)’를 보면, “활강경기장 부지 전역에 걸쳐 하늘다람쥐가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됐고, 공사로 인해 서식지가 단절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기술돼 있다. 또 이 보고서에는 스키장 공사가 하늘다람쥐에게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인공둥지 설치’라는 방안이 제시돼 있다. ‘하늘15’라고 적힌 인공둥지 역시 이 방안에 따라 강원도가 설치한 것이다. 하지만 최씨는 “눈에 잘 띄고 바람이 잘 불지 않아 하늘다람쥐가 둥지로 삼기 어려운 위치”라고 평가했다.
하늘다람쥐에게 숲의 단절은 생명의 위협이다. 이들은 일생의 대부분을 나무 위에서 살아가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활공해 이동한다. 네 다리를 사방으로 뻗으면 얇은 가죽이 날개 구실을 한다. 하늘다람쥐의 활공을 최씨는 “엄밀히 말해 나는 게 아니라 바람을 타고 멋지게 추락하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이들의 활공은 이어진 숲에서만 가능하다. 숲이 단절된 곳은 이동이 제한되고, 간혹 지표면에 추락해 천적에게 노출된다. 숲을 가로질러 난 도로에서 하늘다람쥐의 로드킬(길죽음)이 잦은 것도 이들의 독특한 이동 행태 때문이다.
오소리 똥 속에 박힌 빨간 다래 씨앗
최씨는 숲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휘이이~” 하는 금속성 휘파람 소리가 옅게 들리자 그는 “들꿩이 내는 소리”라고 했고, “끼끼” 하는 소리는 “까막딱따구리의 울음”이라고 했다. 낙엽 사이에 작은 배설물이 눈에 띄었다. “오소리 똥이에요. 배설물 안에 틈틈이 박힌 빨간 것이 다래 씨앗입니다. 다래는 오소리 말고도 담비, 족제비 등 산짐승들이 매우 좋아하는 열매인데요. 수분과 영양분이 안 빠져 곰팡이가 살짝 핀 똥의 상태로 볼 때 한 달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추정이 맞는다면, 오소리는 벌목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까지 공사 현장 인근이었던 이 숲에 있었다.
사람 무릎 높이에 나무껍질이 벗겨진 흔적은 노루가 뿔로 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최씨는 “노루는 뿔이 있고, 고라니는 뿔 대신 송곳니가 길게 자라 입 밖으로 삐져나온다. 뿔질의 흔적으로 노루와 산양을 구분하는데, 산양의 뿔질 흔적이 더 매끄럽다”고 설명했다.
일부 언론은 최근까지도 가리왕산에 천연기념물인 산양, 사향노루가 서식한다고 보도해왔다. 하지만 2012년 10월부터 일곱달 동안 현지 조사해 작성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가리왕산에서 산양, 사향노루 등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1998년 실시된 제2차 전국자연환경조사를 바탕으로 발간한 ‘평창·정선의 자연환경’(환경부 1999년 발간) 보고서는 “산양은 최근에도 (가리왕산에) 서식하였지만, 임도(산길)가 통하자 산양의 바위 서식지가 바로 길옆에 위치함으로 즉시 사라져 버렸다”고 적고 있다. 사향노루는 남한에선 1987년 오대산 소금강 일대에서 발견된 이후 출몰했다는 기록이 없다. 다만 휴전선 인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비무장지대에만 극히 적은 개체수가 서식할 뿐이다. 사향노루의 배에 위치한 사향낭이 한약재나 향수 등의 재료로 사용되면서 마구잡이 밀렵을 한 탓이다.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한 조사단이 ‘센서카메라’를 통해 확인한 가리왕산의 포유류는 너구리, 담비, 오소리, 삵, 고라니, 노루, 수달, 멧돼지, 멧토끼, 청설모, 하늘다람쥐 등이다. 이 중 법정보호종은 삵, 담비, 하늘다람쥐, 수달 등이고, 포유류 이외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보호종으로 등재된 꼬리치레도롱뇽,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돌상어, 가는돌고기와 천연기념물 어름치 등이 있다.
답사 이튿날인 13일 오전, 알파인 스키장 예정 부지 앞에 위치한 오대천을 찾았다. 태풍 ‘봉퐁’이 약한 비를 흩뿌렸지만 멸종위기종 1급인 수달의 배설물을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수달은 배설물로 영역을 표시한다. 검은 배설물 사이로 희끄무레한 실이 보였다. 수달이 먹고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생선 뼈였다.
“수달은 수컷과 암컷 모두 배설물로 영역을 표시합니다. 수컷은 하천을 끼고 대략 12㎞ 길이의 구간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는데요. 만약 다른 수컷이 이 구간을 침범하면 격렬한 싸움이 생깁니다. 수컷 한마리가 점유하는 영역 안에는 암컷이 1~3마리 정도 서식합니다. 수컷은 최대한 많은 수의 암컷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암컷 사이에도 서로 자기 영역을 분명히 하고, 침범할 경우 다툼이 생기죠. 수달은 영역을 아주 중요시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배설물도 잘 보이는 돌 위에 위치합니다. 자기들끼린 배설물만 보고도 암컷인지 수컷인지 알고, 발정기 여부도 파악합니다. 지금 보이는 배설물은 몇시간 안 된 것입니다.”
오대천을 따라 걷다 보면 군데군데 물길이 막혀 고인 물이 있었다. 그 인근에서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의 배설물을 찾을 수 있었다. 최씨는 “원앙은 물살이 센 계곡보다 잔잔한, 고인 물을 좋아한다. 이 배설물은 사나흘 정도 지난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오대천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은 스키장 개발로 피해를 입을 우려가 없다고 기술되어 있다. 공사 부지가 오대천에 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스키장 제설(눈 만들기) 작업에 사용되는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오대천의 물을 끌어다 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스키장 운영 시 용수 확보 계획 부분에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계곡수와 오대천 표류수를 사용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오대천에서 취수하는 양을 총 19만1238㎥로 적고 있다. 김휘중 강원대 교수(환경연구소)는 “오대천의 물을 끌어다 쓸 경우 유량이 줄어 하천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계곡 장구목이에서 만난 신비로움
답사 둘째 날엔 대규모 벌목의 영향을 받은 가리왕산과 비교해보기 위해 오대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상원산에 올랐다. 오대천을 건너자마자 땅에 흩뿌려진 하얀 깃털들을 발견했다. 최씨는 “맹금류에 의해 잡힌 멧비둘기의 깃털일 것이다. 만일 살쾡이(삵)에 의해 잡혔으면, 바로 깃털을 뽑지 않고 물고서 숲으로 뛰어들어 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날도 등산로가 아닌 ‘동물로’를 찾아 숲에 들어섰다. 주로 담비의 흔적을 쫓았다. 수달과 마찬가지로 족제비과인 담비는 깊은 숲 속에 산다. 몸무게가 3~6㎏에 불과하지만, 두세 마리씩 짝을 이뤄 제 몸집보다 훨씬 큰 고라니, 노루 등도 사냥한다. 심지어 멧돼지 새끼도 사냥해 남한 내 최상위 포식자 역할을 하고 있다. 최씨는 “담비의 배설물은 주로 능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실제 담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날 산비탈, 절벽 등을 오르내리며 5시간 가까이 다녔지만 담비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최씨는 “낙엽 등이 쌓여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계절적 요인도 있고,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는 일 자체가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고 설명했다. 대신 삵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최씨가 어느 바위틈을 가리켜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코를 들이대자 지린내가 풍겼다. 그는 “살쾡이가 오줌으로 영역을 표시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법정보호종인 담비와 삵이 스키장 예정지역의 낮은 고도에서 주로 흔적이 확인되었으며, 높은 고도로 올라갈수록 흔적의 출현빈도가 낮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삵과 담비는 이동성이 크기 때문에 가리왕산 전역에 서식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또 “우제류 중에서 고라니와 노루의 서식지가 고도에 의해 구분됨을 알 수 있다. 고라니는 주로 저지대, 노루는 고지대에서 자주 출몰했다”고 밝혔다.
가리왕산 답사 셋째 날 오전, 우이령사람들의 이병천 회장은 취재팀을 가리왕산의 계곡인 장구목이로 안내했다. 이날은 야생동물 전문가인 최현명씨뿐만이 아니라, 식물 전문가인 김태영씨도 동행했다.
가리왕산의 식물 식생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쇳말을 세 가지 꼽자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산삼봉표석’, ‘풍혈’이다. 먼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은 ‘산림 내 식물의 유전자와 종 또는 산림생태계 보전을 위해 보호 관리가 필요한 산림’을 의미하며 지정 유형은 원시림, 고산식물 지대, 희귀식물 자생지 등이다. 가리왕산은 희귀식물인 주목, 만병초, 신갈나무, 마가목, 땃두릅, 꼬리겨우살이 등의 자생지로 분류됐다.
애초 산림청은 1996년 5월 주목의 군락지 65만㎡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2008년 그 범위를 2475만㎡로 확대했다. 산림청의 누리집을 보면, 희귀식물 자생지로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전국에 176곳으로 총면적이 4억6237만㎡에 달한다. 176곳 가운데 하나인 가리왕산이 총면적의 5% 이상을 차지하는 셈이다. 가리왕산은 단순히 면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 주목의 어린 개체부터 노목까지 여러 세대가 한데 어우러져 군락을 이루는 국내 유일의 지역이고, 희귀식물의 분포와 밀도 측면에서도 손꼽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3호로 지정된 ‘산삼봉표석’(山蔘封標石)은 조선시대 왕실이 산삼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 구역임을 표시한 것이다. 국내에 산삼봉표석은 가리왕산과 오지로 꼽히는 강원 인제군 맹현봉 산지에서 발견된 두 개만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도 가리왕산은 왕실에서 관리하는 특별한 산이었던 셈이다. 실제 가리왕산에선 2000년대에도 100년 된 산삼이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합뉴스>가 2008년 6월5일 보도한 내용을 보면, 심마니 함아무개씨가 가리왕산 중봉 부근에서 어미삼 1뿌리를 비롯해 6뿌리를 캤다. 뿌리부터 잎까지 길이가 1m가 넘는 어미삼은 감정 결과 100년이 넘었고, 감정가도 1억원으로 추정됐다.
‘풍혈’(風穴, talus)이란 여름철에 찬 공기가 나오고, 겨울이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바람구멍, 바위틈, 자연동굴 등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지역이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경상남도 밀양의 ‘얼음골’이다. 가리왕산 스키장 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중봉과 하봉 인근에 풍혈지대가 다수 발견됐다고 적혀 있다. 취재팀이 장구목이를 찾은 것도 이 풍혈지대를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일정 지점에서 길이 없는 숲 안에 들어섰다. 이 회장은 가슴높이 지름 1미터가 넘는 신갈나무 앞에 멈춰서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 신갈나무는 수령이 백년이 넘습니다. 올 초엔 장구목이에서 직경 130㎝에 달하는 신갈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산림청에서 조사할 땐 설악산에 있는 직경 150㎝ 신갈나무가 국내에서 제일 컸는데, 그게 벼락에 맞아 죽었습니다. 추정컨대 가리왕산의 그 신갈나무가 국내 최고 수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무 옆에 보이는 돌이 층층이 쌓여 있는 이 지형이 풍혈입니다. 여기서 여름엔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겨울엔 상대적으로 따뜻해서 식물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이 형성되죠.”
옆 상원산 5시간 오르내리며
담비의 흔적 찾았지만 실패
대신 삵의 오줌 바위틈서 만나
담비와 삵은 이동성 크기에
가리왕산 전역에도 서식할 듯 주목군락 중 보존가치 가장 높고
희귀식물 밀도가 제일 높으며
2000년대에도 산삼 발견된 곳
지금이라도 공사 멈추면 지킨다
땅 깎고 흙 다지기 시작하면 끝 식물 채집해 자루에 넣던 두 사람을 만나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산다는 주목도 장구목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목은 분비나무, 구상나무 등과 함께 빙하기 때 번창하다가 추운 날씨가 물러간 뒤 높은 산 피난처에서 살아남은 ‘유존종’으로 보전가치가 높다. 소백산 주목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돼 있다. 주목은 아주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100년 가까이 지나도 지름이 20~30㎝에 지나지 않지만, 가리왕산에는 지름 80㎝가량 되는 주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이령사람들이 스키장 예정부지에서 발견한 지름 1미터가 넘는 주목은 거칠게 계산하면 수령 400~500년 된 나무인 셈이다. 주목이 ‘죽어도 천년을 산다’는 말에 대해 김태영씨는 “워낙 천천히 자라 단단한 목질을 가지고 있고, 나무에서 분비되는 특유의 물질이 나무를 보호해 죽어도 쉽게 썩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가리왕산은 주목 군락 중에서도 보전가치가 특히 높은 곳이다. 소백산, 설악산, 태백산, 오대산 등에도 주목 군락이 있지만, 어린 개체부터 중장년, 노거목까지 여러 세대의 주목이 군락을 이루는 곳은 국내에서 가리왕산이 유일하다. 이 회장은 “주목은 국가에서 파악하는 모든 나무에 번호를 붙여 관리할 정도로 특별관리 대상이다. 특히 주목이 없어진다면 기후 자체가 어떤 식으로 변했다는 표징종(어떤 식물군락에 대해 적합도가 높은 식물)의 의미를 가지는데, 가리왕산의 풍혈지역은 온도가 일정해 기후변화에 대비해 식물을 보존할 수 있는 특징도 있다”고 말했다. 가리왕산은 원시림의 면모도 보여준다. 나무 아래에는 고사리과 식물인 관중으로 덮여 있고, 군데군데 바람개비를 닮은 만병초의 잎도 볼 수 있다.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다소 기괴해 보이는 잣나무가 서 있기도 하고, 마가목은 가지에 붉은 열매를 맺은 채 철새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얀색 가지가 높은 상공에서 사방으로 뻗은 (왕)사스래나무, 붉은빛이 감도는 거제수나무 등은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잎자루가 길어 바람이 없는 곳에서도 떠는 사시나무는 떨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다. 김태영씨는 “개버찌나무만을 놓고 보면 가리왕산이 국내 최대 군락인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사흘간의 일정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하봉과 중봉 일대다. 하봉에 오르자 식물을 채집해 자루에 넣고 있던 두 사람이 취재진을 보자마자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취재하러 왔다고 밝히고, 역으로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는지’를 묻자 “시공사 직원이고, 보호수종을 이식하기 위해 채집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채집하고 있는 식물은 장미과에 속하는 인가목이었다. 이들은 “인가목 이식대상은 총 120주”라고 말했다. 하봉에서 능선을 따라 중봉 쪽으로 걷다 보면 봄철 야생화가 만발하는 지역을 지나친다. 산림청은 2012년 11월 중봉 지역을 스키장 예정부지에서 제외했다.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빗발치자 정부가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하지만 하봉에서 중봉에 가는 길 중 상당 부분은 곤돌라와 연습장 공사를 위해 포클레인 등 중장비가 오가며 이미 훼손된 상태였다. 지난해 7월 발표된 환경영향평가서는 여러 논란으로 인해 내용이 보완돼 올해 1월 재발간됐다. 논란이 일었던 부분은 환경영향평가서에 기재된 훼손수목량이 시민단체의 추산 결과와 상이하고, 스키장 사후활용계획이 부재하다는 것 등이었다. 보완돼 발표된 환경영향평가서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 환경영향평가 시 훼손수목량을 5만6786그루로 산정했는데, 시민단체 우이령사람들이 전수조사한 결과는 12만그루다. 강원도는 훼손수목량을 재산정해 5만8516그루로 수정했으나, 시민단체가 제시한 숫자와는 여전히 간극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는 보완한 ‘환경영향평가서’에 “직경 50㎝ 이상의 훼손수목이 처음 270주로 산정했는데, 재산정 결과 202주로 시민단체 조사 결과인 206주와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적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주일 사용을 위해 이렇게 파괴할 것인가 또 환경복원계획과 사후활용계획은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다만 스키장 부지를 ‘자연복원지역’과 ‘사후활용지역’으로 나눴고, 자연복원의 방법으로 ‘자연천이’(그대로 놔두어 식물군락이 자라게 하는 방식)를 제시했다. 이병천 회장은 “무작정 자연천이를 하게 되면 외래식물의 유입으로 생태계 교란이 더 커질 수 있다. 또한 동계올림픽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빚더미에 앉아 손을 쓰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될 가능성도 높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선군의 상당수 주민들은 알파인 스키장을 올림픽 이후 일반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1997년 겨울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덕유산국립공원에 만들어진 무주리조트의 사례를 비춰봐도 선수들이 이용하는 알파인 스키장은 일반인이 이용하기 어려워 활용도가 떨어진다. 결국 가리왕산의 자연을 파괴하고 총 사업비 1095억원을 들여 만드는 알파인 스키장은 2주간의 겨울올림픽 기간 중에 길어도 일주일 동안만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일회용’인 셈이다. 녹색연합, 우이령사람들 등 환경단체들은 지난 2년 동안 대체부지를 제안하고, 국제스키연맹(FIS) 누리집에서 투런규정(개최국의 지형 여건이 한 번에 내려오는 활강경기장을 만들기 어려울 경우 두 번에 내려오고 기록을 합산하는 경기 방식)을 찾아내는 등 가리왕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벌목이 시작된 이후 대다수의 환경단체 인사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우이령사람들의 이병천 회장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은 토질과 지형이 그대로입니다. 지금이라도 공사를 멈추면 가리왕산을 지킬 수 있습니다. 땅을 깎고 흙을 다지는 공사를 시작하면 그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습니다.”
가리왕산/취재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삽화 최현명 <야생동물 흔적 도감> 지은이
평창 겨울올림픽 알파인 스키장이 건설되는 가리왕산 하봉 인근에 전기톱으로 밀어 만든 넓은 길이 생겼다. 지난 12일 오후 하봉 인근에 잘려나간 나무가 쌓여 있다. 나무의 진액이 눈물처럼 번졌다.
하늘다람쥐의 나무 사이 활공
숲이 단절되면 이동 제한되고
지표면에 추락해 천적에 노출
로드킬이 그들을 기다릴지도 활강 스키장 예정부지 앞의
오대천 부근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의 배설물 확인
오대천의 물 끌어다 쓸 경우
이들은 직접적 영향 받을 것 동물들은 왜 설악산보다 가리왕산 좋아하나 <한겨레>는 지난 12일부터 3일 동안 가리왕산 현지에서 <야생동물 흔적 도감>의 공저자이자 야생동물 전문가인 최현명씨와 함께 동물의 흔적을 쫓았다. 14일엔 <한국의 나무> 공저자인 김태영씨가 합류했고, 산림청에서 30년간 근무한 이병천 회장도 동행했다. 이들과 함께 알파인(활강) 스키장 조성 공사가 국내에서 손꼽히는 원시림이자 희귀식물 자생지인 가리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했다.
벌목이 예정된 나무에 노란색 페인트가 묻었다. 단풍 든 잎과 같은 노란색인데도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지난 12일 오후 가리왕산 하봉 인근.
“숲의 역사를 보여주는 나무입니다.” 환경단체 우이령사람들의 이병천 회장이 14일 오전 가리왕산 장구목이 계곡에서 신갈나무 고목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가운데 자라던 줄기가 죽고 옆에 가지들이 자랐다. 뿌리는 하나다. 20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생동물 전문가인 최현명(왼쪽)씨가 지난 12일 오후 하봉 인근에서 멧돼지 집을 바라보며 윤형중 기자(오른쪽)에게 설명하고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흘러 정선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오대천에서 지난 13일 오후에 발견된 쇠살모사. 살모사과에 속하는 뱀 중에 크기가 가장 작지만 맹독을 지니고 있다.
14일 오전 가리왕산 장구목이 등산로 인근에서 발견된 만병초. 높은 산지에 사는 희귀식물이다. ‘모든 병에 효력이 있다’는 설 때문에 만병초란 이름이 붙었지만, 과학적 근거는 불분명하다.
담비의 흔적 찾았지만 실패
대신 삵의 오줌 바위틈서 만나
담비와 삵은 이동성 크기에
가리왕산 전역에도 서식할 듯 주목군락 중 보존가치 가장 높고
희귀식물 밀도가 제일 높으며
2000년대에도 산삼 발견된 곳
지금이라도 공사 멈추면 지킨다
땅 깎고 흙 다지기 시작하면 끝 식물 채집해 자루에 넣던 두 사람을 만나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산다는 주목도 장구목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주목은 분비나무, 구상나무 등과 함께 빙하기 때 번창하다가 추운 날씨가 물러간 뒤 높은 산 피난처에서 살아남은 ‘유존종’으로 보전가치가 높다. 소백산 주목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244호로 지정돼 있다. 주목은 아주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100년 가까이 지나도 지름이 20~30㎝에 지나지 않지만, 가리왕산에는 지름 80㎝가량 되는 주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우이령사람들이 스키장 예정부지에서 발견한 지름 1미터가 넘는 주목은 거칠게 계산하면 수령 400~500년 된 나무인 셈이다. 주목이 ‘죽어도 천년을 산다’는 말에 대해 김태영씨는 “워낙 천천히 자라 단단한 목질을 가지고 있고, 나무에서 분비되는 특유의 물질이 나무를 보호해 죽어도 쉽게 썩지 않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가리왕산은 주목 군락 중에서도 보전가치가 특히 높은 곳이다. 소백산, 설악산, 태백산, 오대산 등에도 주목 군락이 있지만, 어린 개체부터 중장년, 노거목까지 여러 세대의 주목이 군락을 이루는 곳은 국내에서 가리왕산이 유일하다. 이 회장은 “주목은 국가에서 파악하는 모든 나무에 번호를 붙여 관리할 정도로 특별관리 대상이다. 특히 주목이 없어진다면 기후 자체가 어떤 식으로 변했다는 표징종(어떤 식물군락에 대해 적합도가 높은 식물)의 의미를 가지는데, 가리왕산의 풍혈지역은 온도가 일정해 기후변화에 대비해 식물을 보존할 수 있는 특징도 있다”고 말했다. 가리왕산은 원시림의 면모도 보여준다. 나무 아래에는 고사리과 식물인 관중으로 덮여 있고, 군데군데 바람개비를 닮은 만병초의 잎도 볼 수 있다.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린 다소 기괴해 보이는 잣나무가 서 있기도 하고, 마가목은 가지에 붉은 열매를 맺은 채 철새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얀색 가지가 높은 상공에서 사방으로 뻗은 (왕)사스래나무, 붉은빛이 감도는 거제수나무 등은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잎자루가 길어 바람이 없는 곳에서도 떠는 사시나무는 떨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다. 김태영씨는 “개버찌나무만을 놓고 보면 가리왕산이 국내 최대 군락인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사흘간의 일정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하봉과 중봉 일대다. 하봉에 오르자 식물을 채집해 자루에 넣고 있던 두 사람이 취재진을 보자마자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취재하러 왔다고 밝히고, 역으로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는지’를 묻자 “시공사 직원이고, 보호수종을 이식하기 위해 채집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채집하고 있는 식물은 장미과에 속하는 인가목이었다. 이들은 “인가목 이식대상은 총 120주”라고 말했다. 하봉에서 능선을 따라 중봉 쪽으로 걷다 보면 봄철 야생화가 만발하는 지역을 지나친다. 산림청은 2012년 11월 중봉 지역을 스키장 예정부지에서 제외했다.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빗발치자 정부가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하지만 하봉에서 중봉에 가는 길 중 상당 부분은 곤돌라와 연습장 공사를 위해 포클레인 등 중장비가 오가며 이미 훼손된 상태였다. 지난해 7월 발표된 환경영향평가서는 여러 논란으로 인해 내용이 보완돼 올해 1월 재발간됐다. 논란이 일었던 부분은 환경영향평가서에 기재된 훼손수목량이 시민단체의 추산 결과와 상이하고, 스키장 사후활용계획이 부재하다는 것 등이었다. 보완돼 발표된 환경영향평가서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처음 환경영향평가 시 훼손수목량을 5만6786그루로 산정했는데, 시민단체 우이령사람들이 전수조사한 결과는 12만그루다. 강원도는 훼손수목량을 재산정해 5만8516그루로 수정했으나, 시민단체가 제시한 숫자와는 여전히 간극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는 보완한 ‘환경영향평가서’에 “직경 50㎝ 이상의 훼손수목이 처음 270주로 산정했는데, 재산정 결과 202주로 시민단체 조사 결과인 206주와 유사하게 나타났다”고 적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일주일 사용을 위해 이렇게 파괴할 것인가 또 환경복원계획과 사후활용계획은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다만 스키장 부지를 ‘자연복원지역’과 ‘사후활용지역’으로 나눴고, 자연복원의 방법으로 ‘자연천이’(그대로 놔두어 식물군락이 자라게 하는 방식)를 제시했다. 이병천 회장은 “무작정 자연천이를 하게 되면 외래식물의 유입으로 생태계 교란이 더 커질 수 있다. 또한 동계올림픽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빚더미에 앉아 손을 쓰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될 가능성도 높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정선군의 상당수 주민들은 알파인 스키장을 올림픽 이후 일반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1997년 겨울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 덕유산국립공원에 만들어진 무주리조트의 사례를 비춰봐도 선수들이 이용하는 알파인 스키장은 일반인이 이용하기 어려워 활용도가 떨어진다. 결국 가리왕산의 자연을 파괴하고 총 사업비 1095억원을 들여 만드는 알파인 스키장은 2주간의 겨울올림픽 기간 중에 길어도 일주일 동안만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일회용’인 셈이다. 녹색연합, 우이령사람들 등 환경단체들은 지난 2년 동안 대체부지를 제안하고, 국제스키연맹(FIS) 누리집에서 투런규정(개최국의 지형 여건이 한 번에 내려오는 활강경기장을 만들기 어려울 경우 두 번에 내려오고 기록을 합산하는 경기 방식)을 찾아내는 등 가리왕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벌목이 시작된 이후 대다수의 환경단체 인사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우이령사람들의 이병천 회장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은 토질과 지형이 그대로입니다. 지금이라도 공사를 멈추면 가리왕산을 지킬 수 있습니다. 땅을 깎고 흙을 다지는 공사를 시작하면 그땐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습니다.”
가리왕산을 함께 걸은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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