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학계서 인정 받는 과학자들, 예측 실패해 법정에…
판결 뒤 과학계 ‘들썩’…“지진 예측은 아직 ‘신의 영역’”
판결 뒤 과학계 ‘들썩’…“지진 예측은 아직 ‘신의 영역’”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규모 지진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과학자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2009년 4월 이탈리아 중부 라퀼라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해 309명이 숨지고,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에 앞서 1월부터 100여 차례 소규모 진동이 잇따랐다. 3월 말 이탈리아 국립재난위원회 소속 과학자 6명과 공무원 1명이 모여 상황 파악에 나섰다. 과학자 6명은 이탈리아 지진학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진동이 곧바로 강진을 예고하진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위험경보를 발령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인 4월6일 새벽 3시32분께 대형 지진이 무방비 상태로 곤히 잠들어 있던 도시를 덮쳤다.
검찰은 지진 피해자 유족들의 고소에 따라 7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2012년 열린 1심에선 이들에게 금고 6년형과 900만유로(129억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당시 재판부는 4년형을 구형한 검찰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1심 판결 뒤 세계 과학계가 들끓었다. 한국을 포함한 각국 과학자 5200여명이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에게 보내는 무죄 석방 탄원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소규모 지진의 2%만이 대규모 지진으로 이어졌다며, 작은 진동이 반드시 강진의 전조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지진 예측은 현재 과학 수준에선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들을 재난 대처 실패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결국 지난 10일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과학계가 “왜곡을 바로잡았다”며 환영한 반면, 이번엔 유가족들이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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