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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청와대 실세가 유기견이면 좋을 텐데

등록 2014-12-12 20:33수정 2014-12-14 11:16

청와대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가 지난해 봄 청와대 안뜰에서 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후보 당시 ‘유기동물을 청와대에 입양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청와대 입성 때 주민들에게 선물로 받은 이 두 마리가 퍼스트도그 구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 진돗개 ‘새롬이’와 ‘희망이’가 지난해 봄 청와대 안뜰에서 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후보 당시 ‘유기동물을 청와대에 입양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청와대 입성 때 주민들에게 선물로 받은 이 두 마리가 퍼스트도그 구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토요판] 생명
청와대 진돗개와 대선공약
▶ 청와대 숨은 실세로 거론된 ‘정윤회 문건’ 파문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고 농담을 던졌지요. 박 대통령이 2013년 2월 청와대 입성 때 동네 주민들에게 ‘선물’로 받은 ‘새롬이’와 ‘희망이’입니다. 태어난 지 한달이 안 된 두 마리가 조명을 받는 사이 ‘유기동물을 입양하겠다’는 약속이 잊혀졌습니다. 대선공약대로 유기견이 퍼스트도그의 영예를 얻길 바랍니다. 새롬이, 희망이와 즐겁게 어울리게 해주세요.

“대통령에 당선되면 동물복지 현장도 가보고 유기동물을 직접 입양도 해서 동물복지와 동물보호를 실천하겠습니다.”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 벌어지던 때, 동물·환경단체가 보낸 질의서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청와대에 유기동물을 입양하도록 하겠느냐’는 항목에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듬해 2월 서울 삼성동 자택을 떠나는 박 대통령의 품안에 있었던 동물은 유기견이 아니었다. 청와대에서 가서 키우라고 주민들이 선물한 진돗개 새끼 두 마리였다.

유기동물 입양 공약은 어디로?

사실 동물보호정책은 진보, 보수 등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당시 각 대선후보에게 동물보호정책 질의서를 작성해 보낸 동물·환경단체들은 청와대가 앞장서 유기동물을 입양한다면, 이를 양산하는 소비적인 반려동물 문화에 경종을 울릴 수 있으리라고 봤다. 박창길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는 불과 몇개월 만에 박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의외였다”고 지난 9일 말했다. “다른 후보들은 선거에서 으레 말을 뒤집지만, 박근혜 후보만큼은 말하면 지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새누리당의 담당자도 기자에게 유기동물 입양이 박근혜 후보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문위원들이 기초 자료를 작성해 후보실로 보냈습니다. (유기동물을 입양하겠다는) 이번 답변서는 (검토를 마친) 박근혜 후보의 입장으로 보면 됩니다.”

진돗개 두 마리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고 이번 정부의 ‘퍼스트독’이 되었다. ‘새로운 희망’이라는 말을 따서, 각각 ‘새롬이’(암컷)와 ‘희망이’(수컷)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14일 트위터에 두 강아지의 사진을 올렸다. “삼성동 주민들께서 제가 청와대로 떠날 때 선물로 주신 새롬이와 희망이는 출퇴근할 때마다 나와서 반겨줍니다. 기회가 되면 새롬이, 희망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퍼스트독 ‘청돌이’를 트위터에 자주 올린 것과 대조적으로 새롬이와 희망이는 그 뒤 등장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트위터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가장 최근 글이 지난해 7월치다.) 다만 청와대 블로그는 지난해 6월 새롬이와 희망이 몸속에 마이크로칩을 심었다고 소개했다. 유기견 방지를 위해 도입된 동물등록제의 홍보 모델이 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1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에서 두 개를 언급했다. 퇴근 뒤 관저 생활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두 마리가 나갈 때 들어올 때 꼭 나와서 반겨준다, 꼬리를 흔들면서. 날씨가 지금은 춥지만 따뜻한 봄이 되면 희망이 새롬이와 같이 나와서 기자 여러분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청와대가 공개한 퍼스트독의 일상이다. 이밖에 박 대통령 관저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에게는 새롬이와 희망이가 짖지 않는다며, 두 진돗개야말로 ‘청와대 실세를 알아본다’는 내용의 기사가 한 종합편성채널 뉴스에서 가십성 기사로 소개됐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지도자 중에서 동물과 친근한 편에 속한다. 1960~70년대 신문을 살펴보면 개와 함께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가족의 동정보도가 자주 눈에 띈다.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 가족은 ‘백구’라는 진돗개와 스피츠 ‘방울이’ 등을 키웠다. 특히 ‘방울이’와 가까웠다. 박정희 대통령은 아침 일찍 아들 지만씨와 방울이를 데리고 북악산을 산책하곤 했다. 아버지가 1979년 10월26일 숨진 뒤, 큰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11월21일 가족들과 함께 서울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온다. 한 신문은 이렇게 전한다. “근혜양은 검은색 양장 차림이어서인지 더욱 얼굴이 창백해 보였고 조금 수척해져 있었는데 청와대에서 신당동 집까지 오며 방울군을 안고 온 탓인지 검은 옷에 흰 개털이 많이 묻어 있었으나 이를 미처 털 생각도 하지 않았다.”(동아일보 1979년 11월21일)

대선 때 유기견 입양 약속했지만
동네 주민들이 준 진돗개 ‘선물’
새롬이, 희망이는 퍼스트독이 됐다
벌써 만 두살, 덩치 커지고
끌고 다니기 힘들다고 한다

권력은 동물을 이용해왔다
과시하기 위해, 좋은 이미지 위해
‘권력의 액세서리’로만 사용하면
퍼스트독은 ‘진상’되기 십상
그들도 진심어린 가족 돼야 한다

북한에서 준 풍산개는 어떻게 되었나

퍼스트독 새롬이와 희망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12년 연말에 태어난 두 퍼스트독은 이제 만 두살이 되었다. 박 대통령이 사는 관저 마당의 각각의 견사에서 산다. 한집에 두면 곧잘 싸우기 때문이다. 11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말했다. “지금은 많이 커서 대통령이 끌고 다니면서 산책시키기는 힘들고요. (대통령이 관저에) 들어가면 깡깡거리고 짖으면서 좋아서 난리 칩니다. 관리인이 견사 청소하고 사료 주고 목욕시키고 그러지요.”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청와대에서 혼자 사는 박 대통령에게 어쩌면 새롬이, 희망이야말로 함께 사는 가족인 것이다.

권력은 동물을 사랑한다. 근대 동물원의 기원이 된 유럽의 ‘메나주리’(menagerie)는 왕과 귀족들의 과시욕의 공간이었다. 사자, 코끼리 등 진귀한 동물을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공수하거나 탐험가로부터 선물받아 자신의 호화정원에 전시해 귀족 호사가들을 맞아들였다. ‘동물 선물’의 전통은 현대 정치까지 이어진다. 동네 주민들이 선물한 새롬이, 희망이나 최근 박원순 시장에게 보내져 방호견이 된 진돗개도 그런 사례다.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해 풍산개 두 마리를 보냈고, 남한 정부도 진돗개를 답례로 보냈다. 중국은 지금도 판다 곰을 대여하면서 외교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받는 사람의 적극적인 사육 의지 없이 혹은 사육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채 선물을 받게 될 경우, 동물은 불행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동물은 주고받는 소유물이기 전에 스스로 지각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반려인이 자주 바뀌거나 가족처럼 보살피지 않을 경우 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성격이 비뚤어진다.

운전기사가 개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올 경우 십중팔구 ‘고관대작들의 개’라고 수의사들은 말한다. 이 개들의 상당수는 다른 사람이 ‘진상’한 ‘진상 개’이고, ‘진상 짓’을 잘 부려 골치 아픈 ‘진상 개’이기도 하다. 박정윤 올리브동물병원 원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받은 개를 관리인이 직업적으로 다루다 보면 개에게도 좋지 않다. 개를 다른 곳에 쉽게 넘기기도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풍산개 등 청와대의 많은 퍼스트독들이 대통령 퇴임 이후 서울대공원에 넘겨졌다. 사람과 감정을 교류하며 살도록 진화되어온 개가 사람들에게 쉽게 버림받아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 정치에서 퍼스트독은 대통령의 관용적인 이미지를 전파하는 데 사용된다.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퍼스트독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동물을 ‘권력의 액세서리’로 보는지, ‘생명권을 누리는 주체’로 보는지 가늠할 수 있다. 동물은 어차피 인간 정치의 실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실세가 되기를 원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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