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 기후변화 총회 결산
지난 1일부터 2주 동안 페루 리마에서 190여 나라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제20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0)가 열렸다. 당사국 총회 때마다 종료 시한을 넘겨 진행되는 마라톤협상은 올해도 반복됐다.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내려는 주최국의 노력으로 예정 시간을 이틀 넘긴 14일 새벽 마침내 총회 결정문에 합의했다.
‘기후 행동을 위한 리마 요청’이라는 제목의 결정문에서 참가국들은 2020년 이후의 기후변화 대응 체제를 짜는 협상이 내년 파리 당사국 총회에서 마무리될 수 있도록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가급적 내년 1분기까지 유엔에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포함한 ‘기여(INDCs) 계획’을 제출한다는 데 합의했다.
새 기후체제의 온실가스 감축 책임 분담 원칙은 개발도상국이 주장한 ‘공통의, 차별화된 책임과 각자의 책임’에 ‘상이한 국가 조건의 관점에서’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개도국에도 감축 책임 분담을 요구할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기여 계획은 기존의 감축 행동보다 진전된 내용이어야 한다는 ‘후퇴 금지 원칙’도 새롭게 합의됐다.
기여 계획을 어떤 기준 아래 작성할지는 각 나라의 판단에 맡겨졌다. 관련된 정보를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지도 마찬가지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각 나라가 제출한 계획을 누리집에 공개하고, 전체 계획들의 종합적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파리 회의 한 달 전인 2015년 11월1일까지 작성하게 된다.
이번 회의 결과를 두곤 환영과 실망의 목소리가 엇갈린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폐막 직후 “세계가 2015년 파리 총회에서 새로운 기후변화체제에 합의할 수 있는 경로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내놨다. 외신을 살펴보면 이번 회의 결과에 크게 불만인 나라는 없는 듯하다.
주요 국제 환경단체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지구의 벗 인터내셔널’은 “2020년 이전에 온실가스를 급격히 감축하지 않고는 우리는 더 높은 온도 상승과 기후 교란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며 “리마 회의는 기후 재앙을 멈추기 위해서 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세계자연기금(WWF)도 “각국 정부는 리마 회의에서 어설픈 계획을 선택해, 진전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정치적 편의주의가 과학적 긴박함을 이겼다”고 지적했다.
환경단체들의 비판은 리마 합의 수준이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섭씨 2도 이내에서 억제해야 하는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파리 협상의 타결에 초점을 맞춘 전문가들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시각이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토요일(13일)까지 리마 회의에서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국제 기후변화체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비관론까지 있었는데, 내년 파리 회의로 가는 길 자체는 확보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고 평가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재원 문제가 명확하지 않고 기후 피해에 대한 손실·보상도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등 지적할 점이 많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모두 감축에 동참하기로 합의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말했다.
1997년 교토의정서는 지구 전체 온실가스 감축량을 먼저 정한 뒤 선진국들에 분배했다. 반면 새 기후체제는 각 나라가 제출한 감축량을 종합해 구성된다. 이런 방식이 성공하려면 각 나라의 기여 계획이 명확한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작성돼, 너무 늦지 않게 제출돼야 한다. 그래야 각 나라가 짊어질 감축 부담이 얼마나 공평한지, 전체 계획이 기후변화 억제 목표에 부합하는지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 최종 결정문은 기여 계획의 작성 양식과 관련해선 이행 기간과 기준 연도, 범위, 목표 수립 절차, 방법론 등 포함돼야 할 정보의 종류만 나열했을 뿐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가 자국의 감축 계획을 검증할 수 없게 하려는 중국의 강력한 반대로 이런 정보공개마저 당사국들의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정리됐다. 각 나라가 제출하는 기여 계획을 비교 검증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안 소장은 “공식적 검토 절차가 배제된 상태에서 각국이 제시하는 감축 목표가 형평성과 2도 상승 억제라는 목표에 부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그 문제는 이후에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걸 전제로 타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리마 회의 결과는 우리나라에 더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 참석했던 유호 환경부 지구환경담당관은 “온실가스 감축 책임 분담 원칙에 ‘상이한 국가 조건의 관점에서’라는 문구가 포함돼, 앞으로 개도국 가운데 중국과 한국 등의 배출량과 경제력 등이 분담 논의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후퇴 금지 원칙은 지속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부담 완화를 요구해온 산업계가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모든 나라가 유엔에 새 기후체제를 위한 기여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해 바르샤바 총회에서 결정됐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은 대부분 내년 1분기 안에 계획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도 제출 시점은 미정이지만 내부 준비는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한국은 내년 9월까지 제출하겠다며 2020년 이후 감축 목표 설정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고 있다.
윤 교수는 “기여 계획 제출 목표를 9월 말로 잡는 것은 너무 늦다. 감축 목표 결정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사안인 만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와 전문가, 일반 시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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