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생명
프리오랑 프로젝트
프리오랑 프로젝트
▶ 미국에서 동물원, 실험실 등에 감금된 유인원의 해방운동을 벌이는 비영리단체 ‘논휴먼라이츠’는 1772년 영국 법원의 노예금지 판결을 자주 예로 듭니다. 당시 법률은 백인들에게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법적 인격체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듯 권리 주체가 항상 인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국내에서 비인간인격체인 오랑우탄 ‘오랑이’에 대한 해방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우탄 한국방송 <주주클럽> 등 텔레비전 동물 프로그램에 주가를 높이던 왕년의 동물스타였다. 수도권의 작은 동물원인 테마동물원 쥬쥬는 여세를 몰아 한해 수십만명이 방문하는 동물원으로 컸다. 어렸을 때는 귀여웠지만 덩치가 커질수록 곤란해졌다. 몸무게는 80㎏에 이르렀다. 오랑우탄 수컷의 딜레마. 테마동물원 쥬쥬의 최실경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 녀석을 힘으로 당하지 못해요. 며칠 전 그 녀석에게 케이오 당했어요.” 직원들은 “우탄이가 원장님을 집어던”진 사건이라고 표현했다.(<조선일보> 2009년 7월11일) 2012년 5월 우탄이는 동물쇼를 거부하고 있었다. <한겨레> 토요판은 커버스토리로 이 소식을 다루며 우탄이의 이름을 처음 알렸다. 보도 이후 동물원 쪽이 우탄이의 인대를 끊는 수술을 했다는 전직 직원의 제보를 받았다. 추가 취재를 서두르려는 찰나 2012년 6월 ‘악성림프육종’으로 우탄이가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랑 우탄이가 동물쇼를 거부하며 철창에 갇혀 있는 동안 오랑이는 손님들을 맞았다. 전매특허인 ‘퀵보드’를 타고 키스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최근에는 한국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에도 출연해 이휘재의 아이들과 과자를 나눠 먹었다. 지난 27일 오후 관람객으로 테마동물원 쥬쥬를 방문했다. 비닐하우스로 외풍을 차단한 공연장에 관람객은 모두 5명이었다. 사육사의 손을 잡고 들어온 오랑이가 자전거를 집어들었다. “체인이 빠져 있네.” 사육사가 말했다. 오랑이는 두리번거렸다. “오랑이가 오늘은 하고 싶지 않나 보네요. 우리는 일부러 시키지 않습니다. 쇼가 아니거든요.” 주말 관람객이 붐빌 때는 오랑이는 하루 네차례 ‘톡 & 스토리’라는 공연에서 퀵보드와 자전거를 타고 사진 촬영을 한다. 오랑이는 그렇게 작은 동물원을 이끌고 있다.
복돌 우탄이가 떠나고 넉달 뒤, 테마동물원 쥬쥬는 복돌이를 6천만원을 주고 부산의 ‘더 파크’에서 사들였다. 복돌이 역시 수컷. 오랑이처럼 공연에서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는다. 그의 임무는 오랑이와 합사를 통해 2세를 보는 것이다. 그는 고시원 크기 정도의 방에서 산다. 28일 그는 웅크린 채 자신의 토사물로 보이는 누런 액체와 시멘트 바닥을 햝고 있었다.
국내 최초의 ‘유인원 방사’ 목소리
여기까지가 오랑우탄 ‘오랑이’와 ‘우탄이’ 그리고 ‘복돌이’의 얘기다. 우탄이는 저세상으로 갔고 오랑이에게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지난 28일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오랑이에 대한 동물쇼를 중단시키고 생태적인 공간으로 이동시켜 보호하자는 ‘프리오랑 프로젝트’를 선언한 것이다. 영장류의 전시·공연 금지 운동이 미국 등에서 펼쳐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카라는 또한 오랑우탄의 ‘비인간인격체’로서의 권리 또한 주장하고 있다.
프리오랑 프로젝트는 오랑이의 동물쇼를 중단시키고 그를 생태에 적합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게 목적이다. 말레이어로 ‘숲의 사람’이라는 뜻처럼 울창한 숲속에서 하루에 수킬로미터 나무를 타고 이동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게 오랑우탄의 습성이다. 하지만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오랑이는 사람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두 발로 걸어다녔다. 오랑우탄은 두 발로 서기도 하지만 보통 두 손을 땅에 디디며 걷는다. 발바닥이 매우 길어서 운동화를 신기에 적합하지 않다. 사육사 시설도 동물원의 평균적 수준을 한참 밑돌았다.
오랑이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전진경 카라 상임이사는 27일 “일단 국내의 다른 동물원에서 중간 계류해서 행동 조정을 하고, 2단계에서 어디로 보낼지 고민해야 한다. 외국의 오랑우탄 전문보호시설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말레이시아 세필록 등에는 고아가 되거나 불법포획된 오랑우탄을 재활시키는 전문시설이 있다. 재활이 성공적인 오랑우탄은 야생방사된다.
프리오랑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카라와 테마동물원 쥬쥬가 맞서고 있는 탓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등재된 국제적 멸종위기종은 정부의 허가를 받고 수입할 수 있다. 카라는 오랑이가 정부 허가 없이 한국으로 밀수됐다며 오랑이를 정부가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테마동물원 쥬쥬는 이미 법적 결론이 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최실경 대표는 28일 전화 인터뷰에서 “건강이 안 좋은 오랑이를 우리 수의사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두고 가서 돌려주려 했는데, 기증하고 싶다고 해서 동물원으로 왔다. 밀수 부분에 대해선 과거 관세법 위반으로 벌금도 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해 6월 카라가 최 대표 등을 고발한 사건 중 야생생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서 기소유예 처분했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검찰이 밝힌 정상참작 사유는 다섯가지다. △2009년 동물 수입 신고의 전산화가 되기 전에는 오랑우탄 밀수가 다수 발생했다는 점 △이런 오랑우탄들이 다수 동물원에 기증됐다는 점 △자진신고할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점 △오랑이를 몰수할 경우 처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 △최 대표가 오랑이를 안전하게 사육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들었다.
카라는 이런 검찰 결정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며 수사기관에 재고발하는 등 법률적 대응을 벌일 방침이다. 카라를 자문하고 있는 서국화 변호사는 “검찰의 논리를 요약하자면 당시 오랑우탄을 다른 데서도 많이 밀수했고, 오랑이를 몰수했을 때 처분 방법이 딱히 없으니, 기소유예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환경부의 태도도 소극적이다. 이성철 한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장은 28일 “사법적인 결론이 난 상태이기 때문에 몰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쥬쥬동물원 쪽 “그래 봤자 갈 데 없다”
사법기관의 태도는 2013년 야생 방사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사건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 제돌이와 함께 불법 포획된 돌고래 다섯마리에 대해 검찰은 몰수형을 구형했고 재판을 거쳐 건강 상태가 좋은 춘삼이, 삼팔이가 바다로 돌아갔다. 애초 돌고래 야생방사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외국의 야생방사 사례가 소개됐고, 몰수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
오랑이의 경우도 제돌이처럼 원래 살던 곳으로 직접 야생방사하는 방법 말고도 불법 포획된 동물을 관리하는 복수의 대안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 등에는 이른바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s)로 불리는 침팬지, 코끼리 등 지능이 높은 동물들을 관리하는 비영리단체의 보호시설(생크추어리)이 생겨나고 있다. 동물의 건강 상태나 방사 비용 등의 문제로 야생방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대한 스트레스가 덜한 자연환경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해주자는 차선책이다. 학대 사건에서 구조된 동물이나 동물쇼, 동물실험 등에서 은퇴한 동물들이 보호시설에 들어간다. ‘영장류 인포넷’에 따르면, 이런 형태의 영장류 보호시설은 전세계 50여곳에 이른다. 국내에 이런 시설이 없지만 유인원사가 양호한 서울동물원이나 외국의 보호시설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카라와 테마동물원 쥬쥬는 오랑이에 대해 내부 협상을 벌여왔다. 오랑이가 나오는 공연을 생태설명회 등으로 바꾸는 방안 등이 거론됐지만, 궁극적인 지향점이 달라 합의에 이르진 못한 상태다. 전진경 이사는 “동물들이 오랑우탄으로서 삶을 살고 생태동물원으로 거듭난다면 도울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실경 대표는 “동물단체와 상생하길 원하지만, 불쌍한 동물은 몰수해도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한쪽은 오랑이를 내보내기를 원했고, 한쪽은 오랑이를 계속 두고 싶어했다.
현재 국내 동물원에는 오랑우탄 13마리가 산다. 서울대공원 7마리, 에버랜드 4마리 그리고 테마동물원 쥬쥬의 오랑이와 복돌이 2마리다. 에버랜드는 올해부터 ‘내 사랑 타잔’이라는 오랑우탄이 나오는 쇼를 폐지했다.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토머스 화이트 교수 인터뷰 “자의식 가지고 있는 유인원은 비인간인격체”
프리오랑 프로젝트를 계기로 ‘비인간인격체’가 대중적인 담론이 될 수 있을까.
비인간인격체(nonhuman persons)는 동물이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다르지만(nonhuman), 그동안 인간에게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진 자의식과 성격, 태도 등 인격성(personhood)을 지녔다는 주장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환경철학자 토머스 화이트, 해양포유류학자 로리 마리노, 인지심리학자 다이애나 리스 등 학계에서 제기된 이후 사회운동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특히 동물원 동물들의 전시·공연 금지와 야생방사 운동은 대부분 비인간인격체에 이론적 근거를 둔다. 1980년대부터 시작돼 가장 오래된 야생방사 역사를 지닌 돌고래를 비롯해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 유인원 그리고 높은 지능을 지닌 코끼리 등 운동의 대상이 비인간인격체다. 돌고래에 비해 유인원과 코끼리는 서식지의 파괴 등으로 야생방사가 쉽지 않아, 구조 뒤 비교적 넓고 생태적인 보호시설로 옮겨지는 비율이 더 많다.
프리오랑 프로젝트도 오랑우탄을 비인간인격체로 규정하고 ‘오랑이’의 기본 권리를 주장한다. 검찰이 불법 포획 업체를 기소해 야생방사로 이어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사건과는 달리 민간운동에서 비인간인격체의 권리를 주장하며 야생방사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법률적으로는 비인간인격체의 기본 권리를 내세우진 않고, 오랑이가 외국에서 불법 반입됐으므로 몰수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29일 비인간인격체 주창자의 한 사람인 토머스 화이트 교수(로욜라 메리마운트대 윤리학 전공·사진)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왜 우리는 오랑우탄이나 돌고래 등을 비인간인격체로 불러야 하나?
“복잡한 지적 능력과 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역사적으로 인간에게 고유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적어도 몇 종은 가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따라서 이들을 또 하나의 인격체로 특정하게 대해야 한다.”
-돌고래에게 비인간인격체 권리를 부여하자는 ‘헬싱키크룹’의 일원이다. 인도에서는 돌고래를 비인간인격체로 규정하고 돌고래 전시·공연을 금지했는데, 다른 동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인도 정부의 결정은 훌륭한 진전이다. 과학이 어떻게 법과 정책에 영향을 이끌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헬싱키그룹은 고래와 돌고래만 다뤘지만, 적어도 유인원과 코끼리는 비인간인격체로 볼 수 있다. 이를 판별할 수 있는 여러 기준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동물이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다.”
-인간을 정점으로 동물들에게 위계를 부여하는 인간중심주의라는 비판도 있다.
“다른 비인간동물에게도 인격성을 적용할 수 있다. 마사 누스바움(시카고대 법철학 교수)이 이야기한 ‘번성’(flourishing)이라는 개념도 주목하면 좋겠다. 기본 전제는 각각 다른 종마다 번성하기 위해서 다른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각 동물은 신체·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장하고 자신의 잠재성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돌고래나 오랑우탄이 동물원에서 잘 관리가 된다 하더라도, 번성할 수 있을 만큼 잠재적 본성이 발현하지 못한다.”
번성은 상위의 동물이 위계서열에 따라 하위 동물을 지배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엮여 있는 지구상의 생물종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해 살아가는 환경을 전제한다. 각 생물종은 서로 돕고 해치지만 큰 틀에서는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공존한다. 번성은 도나 해러웨이 등 에코페미니스트에게도 동물을 바라보는 개념으로 이용된다. 번성의 시각에서 비인간인격체를 보면, 동물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맺기의 장이 열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인간인격체 운동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비인간인격체가 사적 소유물에서 벗어나 번성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게 목표다. 동물원 등에서의 감금과 번식을 금지시키는 것이다. 또한 보호시설을 개발·설치함으로써 돌고래 등이 남은 여생을 콘크리트 물탱크보다 나은 환경에서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남종영 기자
우탄 _ 악성림프육종으로 2012년 사망
오랑 _ 쥬쥬동물원 공연중
복돌 _ 오랑이와 합사를 위해 사육
토머스 화이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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