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김경하 회장(맨 왼쪽)과 회원들이 지난해 12월28일 경북 울진군 북면 상당리 구수곡휴양림에 설치된 산양먹이 급여대에 먹이용 볏짚을 채워넣고 있다.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녹색연합 제공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녹색연합 제공
울진주민들 산양 보호 앞장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산양들
설악산 쪽과 견줘 보호 사각지대
주민들 성금 보태 무인카메라 구입
환경단체와 함께 산양 모니터링
산양 위급할 땐 가장 먼저 현장 출동
“서식지역 인근에 치료센터 절실”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산양들
설악산 쪽과 견줘 보호 사각지대
주민들 성금 보태 무인카메라 구입
환경단체와 함께 산양 모니터링
산양 위급할 땐 가장 먼저 현장 출동
“서식지역 인근에 치료센터 절실”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우리 지역에 많이 살아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지요. 울진의 자연이 그만큼 좋다는 상징이기도 하니 어떻게든 멸종되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합니다.”
양의 해 설을 나흘 앞둔 15일 경북 울진 지역에 서식하는 산양을 보호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김경하(56) 지회장(울진 기성초등학교 행정실 근무)은 “다른 지역에 거의 없고 우리 지역에 많이 서식하는 귀한 산양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산양 서식지 인근 마을 주민 대부분이 마찬가지”라며 이렇게 말했다.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과 인접한 경북 울진군 북면 일대는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주변, 국립공원 설악산과 함께 국내에 700마리 안팎 남아 있으리라 추정되는 산양의 대표적인 서식지로 꼽힌다. 산양들이 선호하는 높고 험준한 산악 지역으로 이뤄진데다 오지여서 개발 바람에 덜 휩쓸린 게 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이 됐다.
비무장지대 주변은 일반인 접근이 차단돼 있다. 설악산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집중 관리하고 있어 멸종 위기의 산양들이 그나마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 두 지역과 비교하면 울진·삼척 경계 지역은 산양 보호와 관리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이 사각지대를 메워온 것이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의 산양 보호 활동이다.
2010년 겨울은 울진·삼척 산양들한테 어느 해보다 잔인했다. 70년 만이라는 엄청난 폭설에 갇히거나 눈에 덮여 사라진 먹이를 찾다 탈진해 죽는 산양이 속출했다. 이 지역이 주요 산양 서식지임을 처음 세상에 알리고 보호 캠페인을 펼쳐온 녹색연합이 집계한 산양 폐사만 25건에 이른다.
폭설 때 희생당하는 산양들을 구하려면 이들의 서식 실태를 좀더 자세히 알아야 했다. 근무시간 외에 틈틈이 생태교육 활동을 벌이던 김 지회장은 뜻을 함께하는 주민들과 십시일반 돈을 모아 녹색연합과 함께 산양 모니터링용 무인카메라 5대를 샀다. 이렇게 설치되기 시작한 무인카메라는 녹색연합 회원과 누리꾼의 모금, 기업의 사회공헌기금 후원 등에 힘입어 현재 50대로 늘어나 울진·삼척 산양 서식지 곳곳에서 산양들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다.
녹색연합의 산양 보호 활동을 이끌어온 서재철 활동가는 “울진 지역 산양 서식지 일대를 손금 보듯 꿰고 있는 현장 전문가인 김 지회장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았다면 울진 지역의 산양 보호는 물론 서식 실태 확인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을 비롯한 교사, 자영업자, 농민 등 울진 지역 주민 30여명은 2013년 3월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를 정식 발족했다. 좀더 조직적이고 체계를 갖춘 산양 보호 활동의 필요성을 느껴서다.
울진지회 회원들은 그 뒤 울진 지역 서식 산양들한테는 119구급대원과 같은 존재가 됐다. 구조가 필요한 산양이 있는 곳이면 바로 달려가 구조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이들이 일이다. 북쪽의 두 산양 집단서식지와 달리 울진·삼척 지역에는 산양을 집중 치료하고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 가까이에 없다. 탈진하거나 다쳐 구조된 산양들은 자동차로 3~4시간 걸리는 설악산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북부센터나 양구에 있는 산양보호협회 치료센터까지 가야 한다. 이들의 신속한 현장 출동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폭설이 내려 탈진하는 산양들이 발생할 위험이 높을 때, 신속한 구조를 위해 산양 폐사체가 많이 발견된 곳들을 순찰하는 것은 서식지 인근에 사는 이들이 아니고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활동이다.
이들의 활동에는 탈진 산양이 많이 발견되는 울진군 북면 두천리와 상당리, 덕구리 등 산양 서식지 인근 마을 주민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되고 있다. 방과후학교 생태교사로 일하는 울진지회 김상미(41) 사무국장은 “지난해 여름 집 근처에 나타난 산양을 한달가량 유심히 관찰하다가 구조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신고를 하는가 하면 어미 잃은 어린 산양을 발견하고 먹이를 주며 보호하려다 이상을 확인해 구조 요청을 해오는 등 서식지 인근 주민 대부분이 산양에 큰 관심을 가지고 보호하는 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지회는 설립 이후 2년간 폐사한 산양 9마리의 사체를 수거하고, 다치거나 탈진한 3마리를 구조했다. 이 가운데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산양은 한 마리다. 나머지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양구의 치료센터로 이송하던 중 죽고, 한 마리는 치료센터 도착 사흘 만에 폐사했다. 울진지회를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노력에 비춰보면 구조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은 셈이다.
김상미 사무국장은 “산양을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 멀기 때문”이라며 “치료시설만 가까이에 있으면 살았을 산양들이 구조된 곳에서 치료시설까지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과정의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폐사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활동가는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나서 울진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펼치는 주민참여형 산양 보호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산양을 구조·치료할 보호센터를 설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가 녹색연합과 함께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찍힌 산양의 모습.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녹색연합 제공
산양 먹이주기 활동에 참가한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회원들. 왼쪽부터 북면 상당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형동 회원, 김경하 지회장, 왕피천 환경해설사 김순란 회원, 김상미 지회사무국장. 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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