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27일 경북 구미공단에서 발생한 불화수소 누출 사고 피해지역 주민들이 사고 뒤 공단에 마련된 임시진료소 앞에 길게 줄을 서 건강검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구미/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알 권리 챙겨주는 ‘우리동네 위험 지도’
대기오염도는 동네별 서비스까지 하며
화학물질 공개는 시늉뿐인 정부 보란듯
시민단체들 성금 모아 위치 표시앱 제작
“기업눈치 그만 보고 공개 늘려라” 압박
인천시 전국 첫 ‘알권리 조례’ 제정 등
지역·주민 알권리 운동 성과도 조금씩
대기오염도는 동네별 서비스까지 하며
화학물질 공개는 시늉뿐인 정부 보란듯
시민단체들 성금 모아 위치 표시앱 제작
“기업눈치 그만 보고 공개 늘려라” 압박
인천시 전국 첫 ‘알권리 조례’ 제정 등
지역·주민 알권리 운동 성과도 조금씩
몇 해 전부터 사업장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잇따르면서 주변 공장들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었다. 사고로 대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지켜본 이들이 자기가 사는 곳이나 이사하려는 곳 근처에 누출사고 위험이 높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체가 없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민들이 이런 궁금증을 일부나마 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이 환경부의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시스템’ 누리집(ncis.nier.go.kr/tri/)이다. 대중에게 유해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중요한 취지로 하는 이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1996년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려고 오이시디의 권고에 따라 도입한 것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이 관리하는 이 웹사이트에서 자기 주변에 어떤 유해화학물질이 있는지 알아내려면 상당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우선 ‘배출·이동량 정보’ 메인 메뉴의 ‘통합검색’ 창을 열어 시·군·구 단위까지 지역을 설정하고 ‘검색’을 클릭한다. 그러면 해당 지역에 있는 업체들이 연간 일정량(물질별로 1t 또는 10t) 이상 취급하는 화학물질들의 이름과 이를 취급하는 업체 수가 표시된 창이 열린다. 창에서 업체 숫자를 선택하면 그 물질을 취급하는 업체의 이름과 주소가 나타난다. 자기 주변 일정 범위 안에서 취급되는 화학물질을 모두 알려면 물질별 취급 업체 숫자를 하나하나 눌러서 업체들의 주소를 확인하고, 인터넷 지도 사이트에서 위치를 찾아 자기 집과의 거리를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집 가까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화학물질의 특성이 궁금하면 웹사이트 첫 화면으로 돌아가 화학물질정보 검색창에 물질 고유번호(CAS)나 국·영문 이름을 정확히 입력해야 한다. 환경과학원의 화학물질 검색 전문 ‘화학물질정보 시스템’(ncis.nier.go.kr/ncis/Index)도 마찬가지다. 환경과학원이 운영하는 이들 웹사이트의 검색 기능은 비슷한 성격의 다른 웹사이트와 달리 이용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가령 ‘수산화 나트륨’을 ‘수산화나트륨’이라고 붙여서 입력하면 ‘검색 결과가 없다’는 메시지를 내놓는다.
주변에 가족의 안전에 위협이 될 위험이 있는지 알기 위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만 할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이 환경운동연합·환경정의·일과건강 등 2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의 대답이다.
이들이 지난 6일 공개한 ‘우리동네 위험지도’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무료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실행하면 바로 폰에서 반경 5㎞ 범위 안의 유해화학물질 취급 업체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열린다. 컴퓨터를 켜고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시스템’ 웹사이트에 접속한 뒤, 공장이 많은 지역일 경우 수십 분씩 씨름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앱을 열자마자 손바닥에 펼쳐지는 것이다. 500m·2㎞·5㎞ 반경에 따라 동심원의 색깔이 달라 자신이 있는 곳과의 대략적인 거리도 쉽게 알 수 있다. 위치 표시를 선택하면 화면 아래에 업체 이름과 취급하는 유해화학물질의 종류가 표시된다. 계속 따라가면 해당 물질의 위험 특성과 인체가 노출됐을 때의 증상은 물론 응급조처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동네별 유해화학물질 위치 정보 앱이 나오기는 국내에서 처음이다. 지난해 말부터 준비한 앱 제작에는 아름다운재단 지원금과 앱 제작 취지에 공감한 시민 2657명의 온라인 성금을 합쳐 100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모바일 앱을 통한 지역별 맞춤정보 제공에는 정부 부처를 포함한 공공기관들도 적극적이다. 환경부의 ‘우리동네 대기질’ 앱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앱을 실행하고 ‘실시간 대기정보’ 메뉴를 누르면 가장 가까운 측정소의 미세먼지 농도 최신 측정값은 물론 그 농도가 어떤 수준인지를 ‘좋음’에서 ‘매우 나쁨’까지 4단계로 구분된 아이콘을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게다가 과거 7시간 동안의 시간별 측정값 그래프까지 보여줘 농도 변화 추세까지 파악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처럼 친절하고 편리한 지역별 맞춤정보 제공 방식이 왜 화학물질 정보 제공에는 적용되지 않을까?
현재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환경부의 기업 눈치보기’를 이유로 들었다. 그는 “산업계는 법에 따라 이미 공개된 화학물질 정보도 주민들이 좀 더 알아보기 쉽게 가공하는 데 경계심을 갖고 있다”며 “환경부가 이런 산업계를 의식해 굳이 주민들이 쉽게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은 완전하지 않다. 지도에서 주변에 유해화학물질 취급 업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이 앱은 2012년 전국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의 20%도 안 되는 3268개 사업장과 이곳에서 취급한 유해화학물질 415종만을 다루고 있다. 누출사고가 발생하면 특히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되는 환경부 지정 ‘사고대비물질’ 69종 가운데서도 특히 치명적 유독가스인 사린·아르신·디보란 등 20여종은 빠져 있다. 게다가 자기 집 근처 업체에 유해화학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취급량도 알려주지 않는다.
위험지도 앱을 불완전하게 만든 원인제공자는 정부다. 이 앱은 환경부가 공개한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조사 결과를 기초로 했기 때문이다. 감시네트워트는 이런 한계를 적극 드러낸다. 앱을 실행하면 지도가 열리기 전 스쳐가는 화면에 “본 위험정보는 전체 사업장의 19.7%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다수 정보의 추가 공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뜬다. 환경부를 압박하는 ‘시위성’ 화면인 셈이다. 자기 집 앞에 빤히 보이는 유해화학물질 취급 업체가 앱의 위험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데 실망하고 정보공개 확대 필요성을 느낄 이용자들을 위해 ‘알권리법 청원’ 메뉴도 만들어 놓았다.
현 사무국장은 “최근 인천시에서 전국 최초로 주민의 화학물질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하는 조례가 제정되는 등 알권리 운동의 성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며 “위험지도 앱이 화학물질 정보 공개 문제를 공론화해 알권리 확대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옥상에서 ‘우리동네 위험지도’ 앱을 실행했을 때의 스마트폰 첫 화면. 반경 5㎞ 안의 주요 유해화학물질 취급 업체가 표시된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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