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경기도 성남시 시흥동의 비닐하우스 재배단지 사이의 향나무 숲에서 벌목이 이뤄지면서, 이곳에서 번식하던 백로 약 100마리가 둥지를 잃었다. 지난 6일 오후 날지 못하는 새끼 백로들이 쓰러진 나무 위에서 먹이를 가져다줄 어미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남종영 기자
[토요판] 생명
성남 시흥동 백로 참사
성남 시흥동 백로 참사
▶ 야생동물이 애물단지로 변해갑니다. 전국 산간의 멧돼지와 고라니, 그리고 제주도의 노루가 유해조수로 지정됐습니다. 고색창연한 품새를 지닌 백로도 뒤를 따르는 걸까요? 2010년 경기 고양에 이어 성남에서 ‘백로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인간을 늘 경계하지만 자신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걸 야생동물은 압니다. 그러나 비닐하우스 단지 사이 향나무 숲에서 새끼를 키우던 백로가 갑자기 자신의 둥지가 쓰러지는 걸 예상할 수는 없었습니다.
서울 한강으로 흘러드는 탄천은 다양한 물새와 탐조가들이 찾는 곳이다. 몇 년 사이 백로과의 새가 부쩍 늘었는데, 이 새들이 어디서 번식하는지 탐조가들에게 수수께끼였다. 수수께끼는 의외의 비극에서 풀렸다. 지난 2일 탄천에서 1㎞ 떨어진 시흥동 비닐하우스 재배단지에서 ‘백로 참사’가 벌어졌다.
이날 오후 성남시 시민자연환경모니터링 모임의 김동철(68) 회장은 비닐하우스 단지 사이 아파트 서너 채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의 작은 숲에서 백로들이 벌떼처럼 모여든 것을 보았다. 아비규환이었다. 향나무 수십 그루가 베어지자 백로 둥지가 연달아 떨어져 무너졌고, 새끼들은 땅에서 꽥꽥 울고, 안절부절못한 어미들은 하늘을 뱅뱅 돌았다.
“하늘이 하얬습니다. 어미, 새끼 족히 100마리는 넘어 보였죠. 우리가 탄천 주변만 볼 생각을 했지, 사람 사는 비닐하우스 재배단지에 번식지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신고를 접수한 성남시 환경정책과 직원들이 나와 벌목 작업을 중단시켰다. 철퍽 깨진 푸른 알이 나뒹굴고 있었다. 사람이 무서워 도로로 뒤뚱뒤뚱 도망가는 새끼를 잡아 쓰러진 숲으로 되돌려 보냈다. 폐사한 새는 9일 현재 백로 17마리와 해오라기 1마리 등 모두 18마리다.
지난해 이 땅을 넘겨받은 소유주는 텃밭으로 쓰려고 향나무를 베어냈다고 했다. 성남시는 소유주에게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는 한달 뒤까지만 작업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소유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2010년 고양시에서 실행된 매뉴얼을 토대로 새끼 백로들을 살리기 위한 조처가 시작됐다. 물웅덩이 두 곳을 파 미꾸라지를 넣었다. 벌목지 주변을 그물로 에워싸 들짐승의 침입을 막았다. 비와 땡볕을 피할 수 있도록 그늘막도 쳤다.
알려지지 않은 백로의 번식지
성남 비닐하우스단지에서 벌어진
제2의 ‘백로 참사 사건’
땅 소유주가 향나무 베어내자
날지 못하는 새끼들 고립됐다 백로는 점점 ‘애물단지’ 되어간다
배설물 때문에 민원 들끓고
대전과 군산서 ‘백로 분쟁’까지
현행법은 서식지 파괴 못 막아
공존할 수 있는 법 개정 필요 뒤뚱뒤뚱 걷는 백로들 나흘 뒤인 6일 오후 현장을 가보니, 새끼 백로 70여마리가 꽥꽥거리며 어미들을 기다렸다. 이제 이들의 삶터는 하늘로 열린 나무 위 둥지가 아니라 나무가 쓰러진 지상세계다. 대부분 쇠백로, 중대백로들이었다. 고색창연한 품새를 지닌 새들은, 그러나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어다녔다. 엎어지고 미끄러지며 허둥댔다. 이제 막 비행을 익힌 새끼는 퍼덕퍼덕 날갯짓을 해 근처 비닐하우스 꼭대기에 올라갔다. 배드민턴 공이 땅에 박힌 것처럼 사체가 보였고 파리가 꼬였다. “거기 가까이 다가가시면 안 돼요. 어미가 먹이를 못 줘요.” 동네 통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손짓을 했다. 사람이 멀찍이 물러서자 어미 새들이 하나둘 나타나 착지했다. 어미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백로 유치원’에서 자기 새끼를 찾아야만 했다. 탄천에서 사냥한 벌레를 토해내 새끼를 먹였다. 한쪽에서 새끼에게 먹이고 껑충 5m를 날아 다른 새끼를 찾아 다가갔다. 가족끼리 모여 살던 공중의 삶터는 지상의 누추한 집단난민촌으로 전락했지만, 어미는 자신에게 짊어진 짐을 묵묵히 지고 아침저녁으로 탄천을 오갔다. 이날까지 구조된 백로는 네마리였다. 벌목 당일인 2일 두마리(356번, 357번)와 5일과 6일 각각 한마리(381번, 396번)가 평택의 경기도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이송됐다.(야생동물구조센터는 그해 구조돼 이송된 순서대로 개체 번호를 붙인다.) 사흘 뒤인 9일 오전 다시 현장에 가보았는데, 새끼 백로들은 조금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성남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시민자연환경모니터링 회원들이 두명씩 조를 짜 현장을 지켰다. 김동철 회장이 미꾸라지를 물웅덩이에 넣어주었다. 새끼들이 다가와 하나둘 쪼아먹었다. 이소(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것)하려면 잘 먹고 잘 커야 한다. 어미가 찾지 않는 ‘고아’가 있을 수 있으니, 이렇게 인간이 먹이를 준다. 김 회장이 말했다. “한달 뒤면 새끼 백로들이 날 수 있을 때예요. 한달만 벌목을 참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백로는 여름철새다.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찾아와 번식한다. 쇠백로, 중대백로, 중백로, 황로 등을 일반적으로 백로로 통칭하는데, 생김새가 다른 백로과 새인 왜가리, 해오라기 등도 백로류라고 부른다. 백로는 덩치가 크고 논이나 개울에서 먹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유난히 사람 눈에 잘 띈다. 비율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상당수는 눌러앉아 텃새가 됐다.
그래서인지 백로는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새다. 국립환경과학원이 2011~2012년 3~7월 조사한 결과, 국내에 174곳의 백로류 번식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이 가운데 148개 번식지를 따로 조사했는데, 3만5512개의 둥지를 확인했다. 암수 한쌍이 둥지를 하나 만든다고 가정하면, 최소 7만여마리가 사는 셈이다. 이소를 끝낸 백로들까지 합치면 10만마리 이상의 백로가 우리나라에 산다.
우리는 종종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고 말하지만, 과장된 수사에 가깝다. 인간과 동물, 야생동물과 비야생동물, 멸종위기종과 비멸종위기종 사이에는 생명의 위계가 존재한다. 백로는 지금 생명의 위계로 이뤄진 계단에서 밀려나고 있다.
백로는 야생동물이지만 멸종위기종은 아니다. 야생생물보호법은 야생동물 개체에 대한 학대 행위(포획, 감금, 내장 채취,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하게 죽이는 행위 등)를 금지하지만, 이들이 사는 서식지 파괴를 처벌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어떤 땅의 소유주가 백로가 사는 숲을 벌목한다고 해도 직접적으로 백로를 해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본다. 이를테면 백로 한마리를 잡으면 불법이지만, 백로가 사는 숲을 훼손해 열마리가 죽으면 불법이 아니다. 백로가 멸종위기종이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멸종위기종의 경우 법에 따라 “환경부 장관이 서식지 등에 대한 보호조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로 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7월 경기 고양시 사리현동에서 땅 소유자의 벌목으로 번식중인 백로 약 1000마리 가운데 300마리가 폐사했다. 인간과 백로의 갈등이 시작됐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지난해 7월 대전 탄방동 남선공원에서는 백로의 배설물과 깃털로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자, 대전 서구가 벌목 작업을 추진했다. 고양시 백로 참사를 소재로 생태동화 <백로 마을이 사라졌어>를 쓴 권오준 작가가 10일 말했다. “남선공원 벌목작업 직전까지 구청에서 고민을 거듭했어요. 제가 실국장 회의에 가서 지자체가 백로 서식지를 파괴하는 첫 사례가 되어선 안 된다고 했지요. 작업팀이 벌목 지시를 기다리는 가운데 극적으로 연기됐지요.”
한달 뒤 새끼 백로들은 무사히 이소를 했고 백로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최근에는 전북 군산시 조촌동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민원이 들끓어 시가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문화방송 경남창원본부에서 환경정화 작업 도중 백로 번식지인 대나무 숲을 훼손해 환경단체의 반발을 샀다.
용케 살아남은 356, 381번
9일 오후 성남 시흥동 백로 번식지에서 구조된 새끼 백로 네마리를 보러 평택의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찾아갔다. 357번은 아사 상태에서 도착하자마자 폐사됐다고 김희원 수의사가 말했다. 날개가 부러져 들어온 396번은 생존 가능성이 적어 안락사됐다. 356번과 381번은 살아남았다. 체중을 재니 각각 158g, 86g이었다. 김희원 수의사가 핀셋으로 산 올챙이를 집어주자 부리를 쪼아대며 달려들었다.
“(활달한 356번을 가리키며) 얘는 입질을 잘해서 살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빼빼 마른 381번을 가리키며) 얘는 좀 지켜봐야 할 거 같고요. 저희가 수시로 먹이를 주긴 하는데, 인간의 노력이 어미의 보호능력을 못 따라가요.”
356번과 381번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김희원 수의사는 한달 뒤 야외의 물새재활장에서 재활훈련에 돌입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두마리는 비행 연습과 물고기 사냥을 익힌 뒤 7~8월께 야생방사될 예정이다.
2010년 고양시 백로 참사의 매뉴얼 덕분에 성남 시흥동의 백로들의 피해는 최소화될 수 있었다. 한번 상처난 생태계는 치료가 쉽지 않다. 당시 고양시는 새끼 백로 48마리를 구조해 비행능력을 갖출 때까지 보호했다가 발가락지를 끼워 야생에 돌려보냈지만, 아직까지 발가락지를 낀 백로는 한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고양시는 그해 9월 야생동물 서식지 훼손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환경부에 야생생물보호법 개정을 건의했다. 법 개정이 이뤄졌더라면 백로 참사는 재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남·평택/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성남 비닐하우스단지에서 벌어진
제2의 ‘백로 참사 사건’
땅 소유주가 향나무 베어내자
날지 못하는 새끼들 고립됐다 백로는 점점 ‘애물단지’ 되어간다
배설물 때문에 민원 들끓고
대전과 군산서 ‘백로 분쟁’까지
현행법은 서식지 파괴 못 막아
공존할 수 있는 법 개정 필요 뒤뚱뒤뚱 걷는 백로들 나흘 뒤인 6일 오후 현장을 가보니, 새끼 백로 70여마리가 꽥꽥거리며 어미들을 기다렸다. 이제 이들의 삶터는 하늘로 열린 나무 위 둥지가 아니라 나무가 쓰러진 지상세계다. 대부분 쇠백로, 중대백로들이었다. 고색창연한 품새를 지닌 새들은, 그러나 오리처럼 뒤뚱뒤뚱 걸어다녔다. 엎어지고 미끄러지며 허둥댔다. 이제 막 비행을 익힌 새끼는 퍼덕퍼덕 날갯짓을 해 근처 비닐하우스 꼭대기에 올라갔다. 배드민턴 공이 땅에 박힌 것처럼 사체가 보였고 파리가 꼬였다. “거기 가까이 다가가시면 안 돼요. 어미가 먹이를 못 줘요.” 동네 통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며 손짓을 했다. 사람이 멀찍이 물러서자 어미 새들이 하나둘 나타나 착지했다. 어미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백로 유치원’에서 자기 새끼를 찾아야만 했다. 탄천에서 사냥한 벌레를 토해내 새끼를 먹였다. 한쪽에서 새끼에게 먹이고 껑충 5m를 날아 다른 새끼를 찾아 다가갔다. 가족끼리 모여 살던 공중의 삶터는 지상의 누추한 집단난민촌으로 전락했지만, 어미는 자신에게 짊어진 짐을 묵묵히 지고 아침저녁으로 탄천을 오갔다. 이날까지 구조된 백로는 네마리였다. 벌목 당일인 2일 두마리(356번, 357번)와 5일과 6일 각각 한마리(381번, 396번)가 평택의 경기도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이송됐다.(야생동물구조센터는 그해 구조돼 이송된 순서대로 개체 번호를 붙인다.) 사흘 뒤인 9일 오전 다시 현장에 가보았는데, 새끼 백로들은 조금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성남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해 시민자연환경모니터링 회원들이 두명씩 조를 짜 현장을 지켰다. 김동철 회장이 미꾸라지를 물웅덩이에 넣어주었다. 새끼들이 다가와 하나둘 쪼아먹었다. 이소(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것)하려면 잘 먹고 잘 커야 한다. 어미가 찾지 않는 ‘고아’가 있을 수 있으니, 이렇게 인간이 먹이를 준다. 김 회장이 말했다. “한달 뒤면 새끼 백로들이 날 수 있을 때예요. 한달만 벌목을 참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백로는 여름철새다.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찾아와 번식한다. 쇠백로, 중대백로, 중백로, 황로 등을 일반적으로 백로로 통칭하는데, 생김새가 다른 백로과 새인 왜가리, 해오라기 등도 백로류라고 부른다. 백로는 덩치가 크고 논이나 개울에서 먹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유난히 사람 눈에 잘 띈다. 비율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상당수는 눌러앉아 텃새가 됐다.
왼쪽 날개를 다쳐 경기도 평택의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이송된 399번 백로는 목숨을 잃었다. 냉동 보관된 399번 백로의 모습. 사진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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