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23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2100년까지 2도 상승 억제라는 인류 공동의 목표를 이루려면, 모든 나라가 자국의 역량과 여건에 부응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연합뉴스
“성장 저해” 주장 목표완화 요구
신산업 통한 성장 가능성 눈감아
알지만 못 나서는 기업 내부 시스템
산업정책이 이끌지 못하는 게 문제
신산업 통한 성장 가능성 눈감아
알지만 못 나서는 기업 내부 시스템
산업정책이 이끌지 못하는 게 문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중심으로 한 산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4가지 감축안 가운데 가장 느슨한 1안(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14.7% 감축)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목표를 더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16일 나온 ‘포스트-2020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경제계 의견 발표문’을 보면 산업계는 감축 목표를 하향 조정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로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을 든다. “국가 경제 영향을 최소화했다는 제1안조차 2030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을 0.22%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디피 감소율을 도출한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와 새로운 산업 창출 효과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들이 성장하면서 지디피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가령 지금같이 싼 전력요금 구조에서는 스마트그리드나 전력과 정보기술이 결합된 산업은 자라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2020년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에서는 녹색기술 연구개발 투자와 친환경산업 성장 등을 고려할 때 2030년에 지디피가 1.66%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제시했다.
산업계는 “과도한 목표 달성을 위한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가 생산기지 해외 이전, 투자 지연, 신기술 개발 지연 등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산업 공동화’ 현상을 부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는 오히려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2003년부터 정부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휘발유와 경유의 황 함량 등 품질기준을 강화하려 할 때도 산업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추가 시설 투자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지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약화시키기 위해 동원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논리가 동원됐다. 하지만 정부가 맑은 공기를 바라는 여론을 바탕으로 강행한 결과는 정유업계에 보약이 됐다. 강화된 기준에 맞추기 위한 투자가 이뤄지고 기술 개발이 촉진돼, 우리나라 석유제품은 2000년대 후반 해외 수출 1위 품목에까지 올랐다. 2000년대 들어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선진국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린 것도 마찬가지다. 반대하는 자동차업계를 설득해 기준을 높여간 것이 한국이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에 진입하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설정한 원전 비중 확대와 온실가스 포집·저장(CCS) 기술의 활용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주장에는 환경단체 쪽에서도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서 추가로 온실가스를 감축할 여력이 없다는 주장에는 고개를 젓는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기후환경팀 처장은 “정부가 에너지를 덜 쓰도록 하거나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일 생각은 않고 에너지 사용은 그대로 둔 채 원전과 시시에스를 감축수단으로 내는 것부터가 부끄러운 일”이라며 “감축 잠재력이 없다고 하는데, 전기요금 구조 개편을 통해 산업계의 전기·열 소비만 줄여도 감축 효과는 굉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실가스 감축이 당장은 힘들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장기적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기후정상회의 연설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회로 인식하고 에너지 신산업에 적극 투자하면,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역설하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측면을 강조해왔다.
그런데도 산업계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부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이유로 환경 쪽 전문가들은 단기실적에 매달리는 산업계 분위기를 꼽았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립을 위한 민관합동반에서 산업계 쪽과 함께 일했던 윤순진 교수는 “기업 쪽에서는 한참 뒤인 2030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2020년 배출전망치를 키워 올해부터 시행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에 따른 배출권 할당량을 늘리는 것이 기업 쪽 사람들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배출권 할당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온실가스를 덜 줄여도 된다.
기업을 상대로 환경 관련 규제를 집행하는 공무원들도 한결같이 비슷한 문제의식을 토로한다. 환경부의 한 간부급 공무원은 “기업 쪽 사람들도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 다 잘 안다. 알지만 단기실적에 의해 보상이 이뤄지는 기업 시스템 때문에 자기 있을 때는 안 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산업정책을 통해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한데 그 부분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양이원영 처장은 “10년, 20년을 내다보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기업에서 단기실적만 따지다 보니 근시안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당장의 이익만 보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 매달려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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