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불법포획돼 수족관에 갇혀 살던 남방큰돌고래 태산이, 복순이가 6일 오후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인간은 ‘위대한 자유의 순간’을 보여주는 스펙터클을 연출하려고 했지만, 두 돌고래가 보여준 ‘마지막 공연’은 더이상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태산이(오른쪽), 복순이(왼쪽)가 5일 제주시 함덕리 앞바다 가두리에서 헤엄치고 있다. 김동식 제공
[토요판] 생명
태산이 복순이 바다 돌아간 날
태산이 복순이 바다 돌아간 날
▶ 2012년 초 ‘제돌이의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에서 제기한 ‘남방큰돌고래 야생방사’의 제1막이 내렸습니다. ‘제돌이의 운명’은 다른 네 돌고래의 운명도 바꾸었습니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의 제돌이는 물론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돌고래쇼를 벌이던 춘삼이, 삼팔이, 그리고 지난 6일엔 태산이, 복순이도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갔습니다. 많은 법·제도적 변화도 불러왔습니다. 태산아, 복순아, 잘 가라. 그물에 걸리지 말고 잘 살렴.
제돌이가 바다로 나간 날과 태산이, 복순이가 바다로 나간 날의 공통점이 있다. 인간이 허둥댔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거창한 마술쇼 같은 걸 기대하고 무대를 차려주었지만, 돌고래들은 고별공연을 내팽개치고 사라져버렸다. 아니 마술쇼가 있긴 했다. 돌고래가 공룡만큼 컸다면, 만리장성을 사라지게 한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쇼 정도는 됐을 것이다.
원래 이 공연은 돌고래가 인간이 풀어준 그물을 통과해 드넓은 야생 바다로 나아가는 순간에 클라이맥스를 이루어야 했다. 코미디언 사회자의 해학과 관중들의 진지한 국기에 대한 경례, 해양수산부 장관의 축사와 유공자 표창까지 그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 인간이 그물을 열어주면, 기다리던 돌고래가 나간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탈옥에 성공한 죄수가 두 손을 들고 자유의 비를 맞는 것처럼, 수년간의 수족관 생활을 청산한 돌고래가 힘차게 꼬리를 치며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은 기다렸다. 물론 자유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서사다. 그렇다면 동물의 자유란 무얼까. 자유의 서사는 동물도 위대하게 할까. 어떻게 이 공연은 실패에 이른 것일까.
태산이·복순이의 마지막 ‘공연’
‘남방큰돌고래(태산, 복순) 자연방류 기념행사’는 두 돌고래가 야생적응 훈련을 받고 있는 가두리가 보이는 제주시 함덕리 정주항 방파제에서 열렸다. 날짜가 두어번 바뀌고 마지막엔 시간도 한 시간 늦춰졌다. 지난 6일 오후 3시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차량에서 내리자, 기자 30여명이 에워싸고 물었다.
“고래 고시(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를 보면, 정부 허가하에 전시·공연용 포획을 할 수 있는데, 이 조항을 어떻게 할 건가요?”
“오늘 방류행사도 있고, 또 자연과의 교감을 위해서, 그 고시는 사문화된 조항으로 보셔도 되고요. 그대로 두면 안 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고시를 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돌고래였지만, 행사는 사람이 주인공인 전형적인 정부 행사의 식순으로 진행됐다. 200여명이 참석했다. 방명록이 준비됐고 초청 귀빈들이 맨 앞에 앉았다. 대형 전광판에 휘날리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서 충성을 다짐”한 뒤 시작된 행사는 내빈 소개와 경과 보고, 장관 축사와 야생방사 ‘유공자’ 표창으로 이어졌다. 다른 게 있다면 사회자가 한국방송 <6시 내고향>으로 유명한 코미디언 조문식(54)씨였다는 점이다. 그의 해학과 익살스런 입담 덕에 구경나온 함덕 주민들은 행사장을 떠나지 않았다.
방파제의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가두리로 향했다. 지난 5월14일 서울대공원에서 이송된 태산이와 복순이가 헤엄치고 있었다. 사회자가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마지막으로 장관님께서 사비를 털어서 만드신 특식, 돌돔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태산아, 복순아, 많이 무욱~어라.”
‘장도(壯途)의 오찬’(해양수산부 자료상 명칭)이었다. 장관을 필두로 귀빈 8명이 양동이를 들어 그 안에서 펄떡이는 돌돔 수십마리를 가두리 안으로 쏟아부었다. 행사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테이프 커팅’ 대신 그물을 열어주면 됐다. 태산이, 복순이가 그곳으로 나갈 터였다.
태산이, 복순이가 자유를 맞는
정부 기념행사는 성대했다
그물 풀어주는 위대한 자유의 순간
두 돌고래가 보여준 마지막 ‘공연’은
그러나 인간을 위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허둥대는 사이
그물 나와서 전속력으로 돌진
처음부터 인간을 따돌린 그들
전략적으로 움직인 걸까
야생방사 1막은 허무하게 끝났다 오후 3시50분. 장관과 귀빈이 그물의 매듭을 풀고 사회자가 카운트다운을 했다. “태산이 복순이가 고향으로 갑니다. 고향으로, 하나, 둘, 셋!” 그물 문이 열렸다. 3시54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산이, 복순이는 여전히 가두리 안에 있고 가끔씩 물 위로 튀어나올 뿐이었다. 돌고래가 나가지 않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반대쪽 사람들이 그물을 끄집어 올리면서 돌고래들을 ‘자유의 문’ 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10분이 흘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 그때 한 사람이 뒤쪽 수평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야생 돌고래다!” 실눈을 뜨고 수평선을 바라봤다. 북서쪽 약 1㎞ 떨어진 지점에서 돌고래가 솟구쳤다. “야생 돌고래가 또 마중을 나와주었구나.” 지난달에는 제돌이를 포함한 남방큰돌고래 30마리가 가두리 주변을 헤엄쳤고, 이날 아침에도 남방큰돌고래 떼가 지나간 터여서, 사람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제 태산이, 복순이는 나가서 감동적으로 재회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부산한 바깥과 달리 가두리 안은 바닷물만 넘실거릴 뿐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나간 거 아냐?” 잠수부들이 물 안에서 여기저기를 찾기 시작했다. “없어?” 한 잠수부가 솟구쳐 답했다. “없어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사람들이 모르는 어느 결정적인 순간, 자신들이 선택한 절정의 시기에 태산이, 복순이는 자유를 찾아 떠났다. 1㎞ 떨어진 지점에서 솟구친 야생 돌고래가 바로 태산이, 복순이였다. 두 돌고래는 그렇게 다시 ‘야생 돌고래’가 되어 있었다. 가두리를 둘러싼 배들이 퇴각했다. 사람들은 허탈해했다. 방파제로 돌아온 장관과 내빈은 태산이, 복순이 현판 제막식을 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활동가가 다가왔다. 어떤 진리가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다는 듯 그는 흥분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돌고래한테 잘된 거예요. 우리 모르게 나간 건, 돌고래한테 잘된 거예요.” 클라이맥스 없이 막이 내렸지만, 공연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고래연구소는 태산이, 복순이의 등지느러미에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았다. 아르고스 위성을 통해 두 돌고래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두 돌고래는 거주 이전의 자유는 얻었으되, 일종의 ‘전자발찌’를 차고 (동물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다면) 위치정보권을 침해받게 됐다. 야생동물은 전적으로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돌고래에 대한 지배는 수족관에서도 야생에서도 이뤄진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개념을 빌리자면, 집단의 인구를 조정하고 삶의 질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몸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동물 지배도 ‘생명정치’(biopolitics)에 가깝다. 멧돼지처럼 어떤 종은 ‘유해 야생조수’로 지정해 솎아내고(인구 관리), 본질적으로 열악한 농장환경에 사는 돼지에게 장난감을 주고(삶의 질 증진), 정기적으로 야생 돌고래 개체 수 모니터링을 벌인다(인구 센서스). 야생동물의 경우에는 ‘멸종위기종’인지 아닌지에 따라 ‘위계’가 결정되고 ‘운명’이 갈린다. 제주도의 노루 같은 경우 1980년대 야생방사가 이뤄지는 등 자연보호의 상징이 됐다가 최근에는 개체 수가 많아지면서 유해 야생조수로 지정돼 퇴치되기에 이른다. ‘마술쇼’의 전모 태산이와 복순이가 보여준 ‘마술쇼’의 전모는 지피에스 좌표와 드론 동영상을 통해 나중에 파악됐다. ‘자유의 문’이 열리고 얼마 뒤, 두 돌고래는 둥근 가두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문 양쪽에서 수중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김동식 감독 등의 눈에는 띄지 않았고, 두 마리는 어느 순간 가두리 그물의 문을 빠져나갔다. 가두리를 빠져나오자마자, 두 돌고래는 전속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고래연구소 연구원들이 탄 고무보트가 뒤늦게 발견하고 쫓아갔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서쪽 제주시 방향으로 헤엄치고 있었다.(사람들이 야생 돌고래가 나타난 것으로 착각한 지점이다.) 고무보트가 따라붙자 두 돌고래는 다시 시계 방향으로 선회해 가두리 동쪽인 김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속력으로 헤엄치는 돌고래를 따라잡기에 고무보트는 역부족이었다. 가두리 바깥쪽 해상으로 돌아온 돌고래를 서우봉 앞바다에서 놓쳤다. “처음부터 김녕 쪽으로 갈 생각 아니었나”(손호선 고래연구소 연구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돌고래는 인간을 의식하면서 전략적으로 행로를 바꾼 것처럼 보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위성위치추적장치는 9일까지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돌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1초 미만의 찰나에 위치정보가 위성에 전달돼야 하는데, 무언가 잘못됐을 수 있다.(제돌이 때도 위성위치추적장치는 무용지물이었다.) 고래연구소는 7~9일 해안가를 돌면서 목측을 시도했지만, 폭우와 안개 탓에 두 돌고래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내지 못했다. 태산이, 복순이는 국기에 대한 경례 없이 인간의 육지를 떠났다. 두 돌고래가 보여준 ‘마지막 공연’은 더이상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돌고래 야생방사의 제1막이 내렸다. 불법포획돼 수족관에서 공연을 벌이다 몰수 결정이 난 돌고래들 모두 다 바다로 돌아갔다. 동물을 이용한 이윤 추구, 과학 지식의 획득, 기관 대 기관의 쟁투, 스펙터클의 연출 등 이 모든 인간의 욕망이 돌고래의 몸에 투사됐다. 맨 처음 한 환경운동가의 일인시위로 촉발된 야생방사는 전국적인 이슈로 번지면서 국가의 사업으로 ‘재영토화’됐으며, 아울러 야생 남방큰돌고래의 삶의 영역도 전문가, 관료에 의해 관리받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돌고래의 삶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00여마리 남은 희귀한 존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방큰돌고래는 정부에 의해 ‘보호 대상 해양생물’(멸종위기종)로 지정됐다. 야생동물의 위계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정부 허가 아래 제한적으로 할 수 있었던 전시·공연용 포획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제주/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6일 오후 야생방사 직전 태산이, 복순이가 가두리에서 헤엄치고 있다. 제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정부 기념행사는 성대했다
그물 풀어주는 위대한 자유의 순간
두 돌고래가 보여준 마지막 ‘공연’은
그러나 인간을 위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허둥대는 사이
그물 나와서 전속력으로 돌진
처음부터 인간을 따돌린 그들
전략적으로 움직인 걸까
야생방사 1막은 허무하게 끝났다 오후 3시50분. 장관과 귀빈이 그물의 매듭을 풀고 사회자가 카운트다운을 했다. “태산이 복순이가 고향으로 갑니다. 고향으로, 하나, 둘, 셋!” 그물 문이 열렸다. 3시54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태산이, 복순이는 여전히 가두리 안에 있고 가끔씩 물 위로 튀어나올 뿐이었다. 돌고래가 나가지 않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반대쪽 사람들이 그물을 끄집어 올리면서 돌고래들을 ‘자유의 문’ 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10분이 흘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다. 그때 한 사람이 뒤쪽 수평선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야생 돌고래다!” 실눈을 뜨고 수평선을 바라봤다. 북서쪽 약 1㎞ 떨어진 지점에서 돌고래가 솟구쳤다. “야생 돌고래가 또 마중을 나와주었구나.” 지난달에는 제돌이를 포함한 남방큰돌고래 30마리가 가두리 주변을 헤엄쳤고, 이날 아침에도 남방큰돌고래 떼가 지나간 터여서, 사람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제 태산이, 복순이는 나가서 감동적으로 재회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부산한 바깥과 달리 가두리 안은 바닷물만 넘실거릴 뿐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나간 거 아냐?” 잠수부들이 물 안에서 여기저기를 찾기 시작했다. “없어?” 한 잠수부가 솟구쳐 답했다. “없어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사람들이 모르는 어느 결정적인 순간, 자신들이 선택한 절정의 시기에 태산이, 복순이는 자유를 찾아 떠났다. 1㎞ 떨어진 지점에서 솟구친 야생 돌고래가 바로 태산이, 복순이였다. 두 돌고래는 그렇게 다시 ‘야생 돌고래’가 되어 있었다. 가두리를 둘러싼 배들이 퇴각했다. 사람들은 허탈해했다. 방파제로 돌아온 장관과 내빈은 태산이, 복순이 현판 제막식을 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활동가가 다가왔다. 어떤 진리가 뒤통수를 치고 지나갔다는 듯 그는 흥분된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돌고래한테 잘된 거예요. 우리 모르게 나간 건, 돌고래한테 잘된 거예요.” 클라이맥스 없이 막이 내렸지만, 공연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고래연구소는 태산이, 복순이의 등지느러미에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았다. 아르고스 위성을 통해 두 돌고래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보고된다. 두 돌고래는 거주 이전의 자유는 얻었으되, 일종의 ‘전자발찌’를 차고 (동물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다면) 위치정보권을 침해받게 됐다. 야생동물은 전적으로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다. 인간의 돌고래에 대한 지배는 수족관에서도 야생에서도 이뤄진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개념을 빌리자면, 집단의 인구를 조정하고 삶의 질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몸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동물 지배도 ‘생명정치’(biopolitics)에 가깝다. 멧돼지처럼 어떤 종은 ‘유해 야생조수’로 지정해 솎아내고(인구 관리), 본질적으로 열악한 농장환경에 사는 돼지에게 장난감을 주고(삶의 질 증진), 정기적으로 야생 돌고래 개체 수 모니터링을 벌인다(인구 센서스). 야생동물의 경우에는 ‘멸종위기종’인지 아닌지에 따라 ‘위계’가 결정되고 ‘운명’이 갈린다. 제주도의 노루 같은 경우 1980년대 야생방사가 이뤄지는 등 자연보호의 상징이 됐다가 최근에는 개체 수가 많아지면서 유해 야생조수로 지정돼 퇴치되기에 이른다. ‘마술쇼’의 전모 태산이와 복순이가 보여준 ‘마술쇼’의 전모는 지피에스 좌표와 드론 동영상을 통해 나중에 파악됐다. ‘자유의 문’이 열리고 얼마 뒤, 두 돌고래는 둥근 가두리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문 양쪽에서 수중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김동식 감독 등의 눈에는 띄지 않았고, 두 마리는 어느 순간 가두리 그물의 문을 빠져나갔다. 가두리를 빠져나오자마자, 두 돌고래는 전속력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고래연구소 연구원들이 탄 고무보트가 뒤늦게 발견하고 쫓아갔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서쪽 제주시 방향으로 헤엄치고 있었다.(사람들이 야생 돌고래가 나타난 것으로 착각한 지점이다.) 고무보트가 따라붙자 두 돌고래는 다시 시계 방향으로 선회해 가두리 동쪽인 김녕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전속력으로 헤엄치는 돌고래를 따라잡기에 고무보트는 역부족이었다. 가두리 바깥쪽 해상으로 돌아온 돌고래를 서우봉 앞바다에서 놓쳤다. “처음부터 김녕 쪽으로 갈 생각 아니었나”(손호선 고래연구소 연구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돌고래는 인간을 의식하면서 전략적으로 행로를 바꾼 것처럼 보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위성위치추적장치는 9일까지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돌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1초 미만의 찰나에 위치정보가 위성에 전달돼야 하는데, 무언가 잘못됐을 수 있다.(제돌이 때도 위성위치추적장치는 무용지물이었다.) 고래연구소는 7~9일 해안가를 돌면서 목측을 시도했지만, 폭우와 안개 탓에 두 돌고래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내지 못했다. 태산이, 복순이는 국기에 대한 경례 없이 인간의 육지를 떠났다. 두 돌고래가 보여준 ‘마지막 공연’은 더이상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돌고래 야생방사의 제1막이 내렸다. 불법포획돼 수족관에서 공연을 벌이다 몰수 결정이 난 돌고래들 모두 다 바다로 돌아갔다. 동물을 이용한 이윤 추구, 과학 지식의 획득, 기관 대 기관의 쟁투, 스펙터클의 연출 등 이 모든 인간의 욕망이 돌고래의 몸에 투사됐다. 맨 처음 한 환경운동가의 일인시위로 촉발된 야생방사는 전국적인 이슈로 번지면서 국가의 사업으로 ‘재영토화’됐으며, 아울러 야생 남방큰돌고래의 삶의 영역도 전문가, 관료에 의해 관리받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돌고래의 삶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00여마리 남은 희귀한 존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방큰돌고래는 정부에 의해 ‘보호 대상 해양생물’(멸종위기종)로 지정됐다. 야생동물의 위계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정부 허가 아래 제한적으로 할 수 있었던 전시·공연용 포획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제주/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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