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는 “설악산 보전운동 22년에 케이블카 싸움을 15년 했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케이블카 반대 캠페인에서 박 대표가 산양 탈을 썼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설악산 ‘산양 지킴이’ 박그림 인터뷰
설악산 ‘산양 지킴이’ 박그림 인터뷰
▶ 설악산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설치 여부가 28일 결판날 전망입니다. 강원 양양군이 제출한 케이블카 계획이 두번 부결됐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이야기한 뒤부터입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조사자료를 보면, 설악산에는 산양이 251마리 삽니다. 케이블카 만들기 전에 산양에게 물어봤나요? 20여년 전부터 설악산중으로 들어가 ‘산양-되기’를 실천한 박그림씨에게 대신 물었습니다. 산양아, 너희 집에 케이블카 놔도 되겠니?
어렸을 적 집앞 화단에서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먹이를 바지런히 옮기는 개미를 나는 엄지손톱으로 막고 부러뜨려 죽였다. 할머니께서 한소리를 했다. 한낱 미물이라도 생명이 있는 법이라고.
한국에서 근본적인 생태주의 입장에서 사상을 설파하고 실천해온 사람을 꼽으라면 지율 스님과 박그림을 들겠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 터널공사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도롱뇽을 대표해 공사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박그림은 설악산에 들어가 ‘산양 똥’을 먹으면서 산양을 이해하려 했다. 어떤 사람은 이들을 대책없는 ‘혐인주의’(嫌人主義)로 비판하지만, <동물해방>을 쓴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라면 당신이야말로 ‘종 차별주의’에 사로잡혔다며 비판을 되돌려줄 것이다. 세상의 생각은 다양하다. 재밌는 것은 서구사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동물보호운동이 아닌 환경운동(생명운동)에서 먼저 종 차별주의를 배격해왔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국적 특수성과 관련이 깊다. 우리가 생명을 이해하는 방식은 서구의 근대가 이해한 것과 다르다. 생명은 부분이자 전체다. 산양 한 마리는 설악산의 부분이자 전체다. 산양이 위협받는 것은 설악산이 위협받는 것이다. 생명의 연결성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감지해왔다.
세번째 녹색 치마를 꺼내 입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둘러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28일 찬성론자들은 ‘친환경 케이블카 심포지엄’을 열어 세를 과시했고, 반대론자들은 설악산 오체투지에 이어 21일 밤 서울 광화문에서 비박에 들어갔다. 찬성은 양양군과 강원도, 여기에 지역구를 둔 대다수 국회의원들이고 반대는 환경단체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는 양양군이 제출한 신청서와 민간위원회 검토보고서를 심의해 28일 최종 결정을 내린다.
18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만난 박그림(67) 설악녹색연합 대표는 녹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녹색 치마는 그에게 분노와 저항의 표시다.
-녹색 치마를 전에도 입은 적이 있나?
“과거 케이블카가 추진됐을 때 두 번 입었는데, (사업이 반려되면서) 벗을 수 있었다. 이번에 다시 이겨서 28일 벗을 수 있겠지. 녹색 치마를 입으면 어떤 행동이든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설악산에 빠져든 계기는?
“1966년 처음 갔는데, 설악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그 뒤부터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산양을 처음 본 건 언제인가?
“1970년대초 내설악에서 우연히 바위를 돌아가는 산양을 봤다. 내가 산양을 바라봤고 산양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한 생명과 마주쳤다.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야생동물과의 조우가 주는 어떤 강력한 힘?
“어느 겨울이었다. 눈 위에 산양 발자국이 바위를 향해 찍혀 있었다. 그 뒤로 햇빛이 비치고 있었고, 바위 뒤로 가면 틀림없이 산양이 있을 거 같았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두 마리가 튀어나와 멈추더니 날 바라보는 거야. 아주 오랫동안 서로 바라봤다. 존재 대 존재, 생명 대 생명이 마주한 순간이다. 산양이 내 속에 들어와 내 삶을 바꾸었다.”
박그림 대표는 1992년 서울 생활을 접고 설악산으로 들어가 이듬해 설악녹색연합을 창립했다. 혼자 설악산중에 들어가 산양을 쫓아다녔다. 산양은 쉽게 보이는 동물이 아니었다. 몸을 웅크려 산양의 높이에서 바라봐 보고, 산양이 뿔질한 나무를 만져 보고, 산양 똥을 씹어 먹었다.
“오래된 똥과 새 똥은 무슨 맛일까 호기심이 있었다. 오래된 똥은 퍽퍽하고 아무 맛이 없고, 새 똥은 질퍽하면서 쓰다. 자료도 전문가도 없었다. 아주 우연히 산양을 봐도 나이는커녕 수놈인지 암놈이지도 몰랐다. 포유류 하는 교수한테 물어보니까 수컷은 서서 오줌을 누고 암놈은 앉아서 눈다고 하는 게 전부였다. 산양 마주치기도 힘든데, 어떻게 오줌 누는 것을 보겠나?”
산양의 흔적을 쫓아다니는 생활이 계속됐다. 몇날 며칠을 산속에서 지내다 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산양 똥을 먹는 박그림 대표의 ‘기행’은 2000년 그의 책 <산양 똥을 먹는 사람>에 소개됐다. 기존의 환경운동은 인간이 자연과 환경에 대한 ‘선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그림 대표는 관리자가 아니라 설악산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산양-되기’로 설악산을 보전하자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가 백퍼센트 산양의 입장에 설 수 없지 않나. 어차피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것 아닌가?
“그런 주장엔 함정이 있다. 사실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건 자연이다. (광화문 네거리를 가리키며) 문명이 발달했지만 큰비가 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대란이 일어나지. (2010년 9월21일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광화문이 침수돼 도시가 마비됐다.)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우리 문명은 극히 미약하다. 이제 겨우 우주선이 태양계를 벗어났을 정도다.”
-설악산 케이블카 얘기를 해보자. 찬성론자들은 산양이 별 영향을 받지 않을 거라고 얘기한다.
“(부은 입술을 보여주며) 어제 벌에 쏘였다. 근데 온몸이 아파서 응급실에 갔다. 발에 가시가 하나 박혀도 온몸이 아프다. 설악산에 빨랫줄 하나 건다고 무슨 대수냐고 하는데, 그 사람 집 앞에 고압선 하나 지나가면 난리를 칠걸? 동물들도 권리가 있다. 존재 가치를 가지지 않은 생명은 없다. 인드라망 안에서 생태적인 고리를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고리 하나가 빠졌다면, 그건 부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의 문제다.”
-고리 하나가 떨어져나가면 우리도 영향을 받는다?
“똑같이 당한다. 산양이 우리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고? 욕심이다. 인간이 그들보다 지능이 뛰어나서 이용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가 필요하다.”
설악산 ‘오색~끝청봉’ 케이블카
국립공원위원회에서 28일 결정
대통령 “조기 설치” 지시한 뒤
산양의 운명은 위험에 처했다 ‘산양-되기’ 하며 살아온 박그림
“새끼 관찰된 산양 번식지이고
연계탐방 금지한 가이드라인 위반”
당신들은 ‘선한 관리자’도 못된다 “대통령 입장에 끼워맞추려고…” ‘인드라’라는 한없이 넓은 그물이 있다.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영롱하게 비춘다. 박그림에게 설악산 케이블카는 인드라망을 찢는 날카로운 칼이다. 강원 양양군 오색리에서 끝청봉 1480m 지점까지 3.5㎞ 구간에 설치된다. 지주 6개가 땅에 박히고 케이블카가 시간당 825명을 실어나른다. 개발행위가 엄격히 제한되는 국립공원에서 케이블카는 1990년대 덕유산 무주리조트를 끝으로 20년 넘게 허가된 적이 없다. 지자체의 케이블카 설치 민원이 빗발치자, 환경부는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 허가 조건을 만들었다. 2011년 ‘자연공원 삭도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보면, 케이블카는 △멸종위기종 등 법적보호종의 주요 서식처를 피하고 △기존 탐방로와 연계를 피함으로써 방문객의 몰림을 방지해야 한다. 28일 열리는 국립공원위원회도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계획을 심의해야 한다. -케이블카 노선에 산양이 사는가? “지난 1월부터 무인카메라를 9대 걸어놨는데, 모두 산양의 모습이 찍혔다. 오체투지를 마치고 11일 내려오면서 5번 지주 주변에서 산양이 찍혔다. 어미 산양이 올봄에 태어난 어린 새끼를 데리고 지나갔다.” 양양군도 산양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설치 지역이 산양의 ‘이동통로’이지 ‘번식지’는 아니기 때문에 영향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건 산양의 생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산양의 행동권역은 기껏해야 가로세로 몇백미터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10~11년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분석한 결과, 설악산 산양의 행동권역은 0.88㎢에 지나지 않았다. 산양에겐 ‘이동통로’란 없다. 산양이 보이면 그곳이 서식지이자 번식지다. 단지 숲과 암릉으로 포개진 지형에 산양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2012년과 2013년 양양군이 신청했을 때도 국립공원위원회는 안건을 부결했다. 이렇게 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줄곧 부정적이던 환경부의 입장이 최근에 바뀐 거 같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까 어떻게든 끼워맞추려고, 아이고 참.(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평창올림픽에 맞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조기에 추진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에 비춰봐도 양양군의 3차 신청 자체가 반려됐어야 했다. 사업계획서를 보면 하산객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왕복 이용을 전제로 기존 탐방로와 연계를 피하도록 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이유는 산양 때문인가? “산양만 중요하냐고 하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다음엔 중청봉에 호텔이 들어가고 산악자전거 코스가 닦일 거다. 케이블카 설치 지역은 국립공원 자연보전지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 다섯 겹의 보전지역이다. 설악산에 케이블카 놓으면 전국에 못 놓을 데가 없다. 지자체가 신청하면 환경부는 허가 안 해줄 도리가 없다.” 돌이켜보면 지율 스님이 도롱뇽 소송을 벌인 것도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때문이었다. 스스로 산양이 되고자 하는 박그림 대표도 정작 정부가 스스로 만든 ‘삭도 가이드라인’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나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라는 것은 근본주의적인 생태주의자의 요구가 아니다. 2001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주변 지자체들이 관광수익 창출을 위해 설치를 요구하며 시작된 ‘케이블카 논쟁’은 28일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나섰고 환경부의 의지는 사그라졌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의 과반수는 정부 쪽 인사이거나 환경부가 추천한 인사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국립공원위원회에서 28일 결정
대통령 “조기 설치” 지시한 뒤
산양의 운명은 위험에 처했다 ‘산양-되기’ 하며 살아온 박그림
“새끼 관찰된 산양 번식지이고
연계탐방 금지한 가이드라인 위반”
당신들은 ‘선한 관리자’도 못된다 “대통령 입장에 끼워맞추려고…” ‘인드라’라는 한없이 넓은 그물이 있다. 그물의 이음새마다 구슬이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영롱하게 비춘다. 박그림에게 설악산 케이블카는 인드라망을 찢는 날카로운 칼이다. 강원 양양군 오색리에서 끝청봉 1480m 지점까지 3.5㎞ 구간에 설치된다. 지주 6개가 땅에 박히고 케이블카가 시간당 825명을 실어나른다. 개발행위가 엄격히 제한되는 국립공원에서 케이블카는 1990년대 덕유산 무주리조트를 끝으로 20년 넘게 허가된 적이 없다. 지자체의 케이블카 설치 민원이 빗발치자, 환경부는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 허가 조건을 만들었다. 2011년 ‘자연공원 삭도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보면, 케이블카는 △멸종위기종 등 법적보호종의 주요 서식처를 피하고 △기존 탐방로와 연계를 피함으로써 방문객의 몰림을 방지해야 한다. 28일 열리는 국립공원위원회도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계획을 심의해야 한다. -케이블카 노선에 산양이 사는가? “지난 1월부터 무인카메라를 9대 걸어놨는데, 모두 산양의 모습이 찍혔다. 오체투지를 마치고 11일 내려오면서 5번 지주 주변에서 산양이 찍혔다. 어미 산양이 올봄에 태어난 어린 새끼를 데리고 지나갔다.” 양양군도 산양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설치 지역이 산양의 ‘이동통로’이지 ‘번식지’는 아니기 때문에 영향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건 산양의 생태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산양의 행동권역은 기껏해야 가로세로 몇백미터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2010~11년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아 분석한 결과, 설악산 산양의 행동권역은 0.88㎢에 지나지 않았다. 산양에겐 ‘이동통로’란 없다. 산양이 보이면 그곳이 서식지이자 번식지다. 단지 숲과 암릉으로 포개진 지형에 산양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2012년과 2013년 양양군이 신청했을 때도 국립공원위원회는 안건을 부결했다. 이렇게 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줄곧 부정적이던 환경부의 입장이 최근에 바뀐 거 같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니까 어떻게든 끼워맞추려고, 아이고 참.(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평창올림픽에 맞춰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조기에 추진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에 비춰봐도 양양군의 3차 신청 자체가 반려됐어야 했다. 사업계획서를 보면 하산객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왕복 이용을 전제로 기존 탐방로와 연계를 피하도록 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이유는 산양 때문인가? “산양만 중요하냐고 하는데 그뿐만이 아니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다음엔 중청봉에 호텔이 들어가고 산악자전거 코스가 닦일 거다. 케이블카 설치 지역은 국립공원 자연보전지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 다섯 겹의 보전지역이다. 설악산에 케이블카 놓으면 전국에 못 놓을 데가 없다. 지자체가 신청하면 환경부는 허가 안 해줄 도리가 없다.” 돌이켜보면 지율 스님이 도롱뇽 소송을 벌인 것도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때문이었다. 스스로 산양이 되고자 하는 박그림 대표도 정작 정부가 스스로 만든 ‘삭도 가이드라인’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었다. 환경영향평가나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지키라는 것은 근본주의적인 생태주의자의 요구가 아니다. 2001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주변 지자체들이 관광수익 창출을 위해 설치를 요구하며 시작된 ‘케이블카 논쟁’은 28일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하나의 중요한 변곡점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나섰고 환경부의 의지는 사그라졌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의 과반수는 정부 쪽 인사이거나 환경부가 추천한 인사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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