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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99년 가뒀으면 충분해~ 동물 감옥을 폐지하라”

등록 2015-09-11 20:24수정 2015-09-12 09:46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의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에 사는 아프리카사자 ‘키부’는 ‘생태선진국’ 코스타리카 동물원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통한다. 2013년 정부는 소송 결과에 관계없이 동물원 폐지 조처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가시적인 조처는 취해지지 않았다. 최근 들어 동물원 쪽은 시설개량 공사에 들어가, 동물원의 실제 폐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사진 린지 펜트 프리랜서 기자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의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에 사는 아프리카사자 ‘키부’는 ‘생태선진국’ 코스타리카 동물원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통한다. 2013년 정부는 소송 결과에 관계없이 동물원 폐지 조처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가시적인 조처는 취해지지 않았다. 최근 들어 동물원 쪽은 시설개량 공사에 들어가, 동물원의 실제 폐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사진 린지 펜트 프리랜서 기자
[토요판] 뉴스분석 왜?
코스타리카 ‘동물원 폐지’ 20년 논란
코스타리카 동물원
수도 산호세에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과, 산타아나에 지역분점 격인 보전센터가 있다. 시설과 부지를 정부가 소유하고 있지만, 1994년부터 민간법인인 ‘푼다소’가 운영하고 있다.

▶ 최근 생태선진국으로 유명한 코스타리카에서 동물원이 사라질 거라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훈훈한 미담으로 에스엔에스(SNS)에 떠돌았지만, 오보에 가깝다고 하는군요. 코스타리카 동물원 폐지 논쟁에는 그보다 복잡하고 긴 역사가 있습니다. 코스타리카 영어매체 <티코 타임스>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가디언> <알자지라> 등에 기고하는 환경저널리스트 린지 펜트가 현지에서 실상을 전해왔습니다.

키부는 단 한번도 아프리카 사바나의 굳은 땅을 디뎌본 적이 없다. 사막의 높은 풀들을 헤치며 뛰어다닌 기억도 없다. 이 사자는 평생 동안 그래왔다. 어렸을 적 쿠바의 한 동물원에서 태어난 키부는 코스타리카의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으로 기증되어 옮겨졌다. 철제 울타리 안에 갇혀 16년을 살았다.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기에 좁은 공간이다. 키부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로 된 전시대 위에서 누워 보낸다. 관람객들이 둘러싸도 심드렁하다.

진보적인 환경정책으로 유명한 코스타리카에서 사자 키부는 동물권 주창자들에게 열악한 동물원 현실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어왔다. 일부 정치인들과 환경운동가들 그리고 시민들은 몇년째 수도 산호세에 있는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을 폐쇄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원 쪽이 참호를 파고 굳건히 버티면서, 이들의 동물원 폐쇄 주장은 성공하지 못했다. 정부는 동물원 폐쇄를 두번이나 시도했다. 동물운동가들은 최근 들어 더욱 강하게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생태선진국의 열악한 동물원

1994년 코스타리카 정부는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의 관리를 위해 비영리재단인 푼다소(Fundazoo)에 외주를 줬다. 동물원 부지와 동물원은 여전히 환경부 소유이지만, 푼다소는 정부 감독 없이 동물원을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키부 등 약 400마리의 동물이 시몬 볼리바르에 산다.

코스타리카 환경부가 국내에 유일한 이 동물원의 운영권을 민간에 양도할 당시 환경단체는 굳이 동물원을 계속 열어둘 필요가 있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코스타리카는 세계적인 생태여행 명소였다. 풍부한 생물종다양성과 친환경정책 덕분에 여행자들이 전세계에서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던 것이다. 많은 환경단체가 이미 그때 코스타리카가 동물원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가 나라가 가진 원시적 녹색 이미지를 퇴색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운영권을 획득한 푼다소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는 조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동물원들이 시설을 현대화하고 동물의 사생활까지 존중할 정도로 서식지 친화적인 리모델링을 할 때, 이 동물원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휑뎅그렁한 콘크리트 우리는 지금까지 이 동물원의 전형적인 풍경으로 내려오고 있다.

“마치 1970년대에나 볼 듯한 동물원입니다.” 환경단체인 ‘프리저브 플래닛’의 루이스 디에고 마린 대표가 지난해 코스타리카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동물들이 인간과 너무 많은 접촉을 하고 있어요. 지속적인 스트레스 상태에 있습니다.”

동물원 환경은 날로 열악해지는 가운데 환경부는 2003년 푼다소와 동물원 운영권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푼다소는 재계약이 취소될 거라는 적절한 공지를 받지 않았다면서 환경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몇년 동안의 법적 소송 끝에 코스타리카 법원은 원고인 푼다소의 주장이 법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판결했고, 동물원 운영권 계약은 10년 연장됐다.

그러나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져갔고, 2006년에는 사육사 한 명이 인수공통전염병인 렙토스피라균에 감염돼 장기간 입원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푼다소는 해당 사육사가 업무 중에 감염된 것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겼지만, 보건당국은 보건환경조사를 개시한다. 조사 결과는 동물원 전체가 “부적절한 위생환경”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조사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예르모 플로레스 보건부 국장은 “동물 우리를 포함해 동물원의 위생 불량이 발견됐다. 최고 상태의 청결함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불결한 위생 상태는 푼다소에 대한 비판 여론을 다시 일으켰고, 법원은 뒤이어 동물원 환경 개선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린다.

사육사 안의 재규어. 사진 린지 펜트 프리랜서 기자
사육사 안의 재규어. 사진 린지 펜트 프리랜서 기자

세계적 ‘생태선진국’ 코스타리카
산호세의 유일한 동물원에는
기력 잃은 사자 ‘키부’가 산다
여러 매체의 “동물원 폐지” 소식
그러나 키부의 미래 아직 모른다

“이 기회에 없애자”는 주장 불구
1994년 운영권을 민간에 이양
2013년 뒤늦게 ‘폐지’ 발표하지만
소송에 묶인 정부 의지 안 보이고
수백명이 동물원 앞 시위 벌여

정부의 공수표? 2024년 폐지?

2013년 7월, 코스타리카 정부는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에 다시 일격을 가한다. 레네 카스트로 환경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열어 푼다소의 운영권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동물원을 관리하는 다른 업체를 알아보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아예 동물원을 폐지하고 울타리가 없는 생태적인 식물원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카스트로 장관은 대형 포유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들이 야생방사될 것이며,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은 야생동물보호센터로 이송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말했다. “환경부는 점점 높아져가는 코스타리카인들의 환경의식에 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더이상 울타리에 갇힌 동물들을 보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동물원을 폐지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널리 퍼졌다. 세계적인 매체들이 환경부의 결정을 타전했고, 국제 환경단체들은 중앙아메리카 작은 나라의 용감한 전진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동물원 폐지 결정에 대해 모두가 흥분한 것은 아니었다. 지역 환경단체들은 푼다소를 퇴출하는 데는 찬성하면서도 동물들을 야생방사하는 계획의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를테면 정글살쾡이가 거론됐다. 코스타리카 정글살쾡이보호센터의 수석 수의사 마르타 코르데로는 야생방사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작은 살쾡이들은 먹이와 안전 면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살쾡이가 야생방사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일정 기간 동안 사람에게 관심을 끊도록 하는 게 필요해요.”

동물원 폐지 뒤 동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야생동물보호센터가 필요하다고 정부는 말한다. 역설적인 것은 야생에서 구조되어 야생동물보호센터로 이송된 바로 그 시점부터 동물들이 ‘사육’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동물원과 야생동물보호센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이렇게 제기되는 질문 앞에서 동물원 관계자들은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이 어떤 동물에게나 좋은 장소라며 현재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동물 대다수가 야생에서 다쳐 구조된 개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카스트로 장관의 기자회견 직후 에두아르도 볼라뇨스 푼다소 대변인은 일부 동물은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라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에겐 환경부 발표가 매우 혼란스럽다. 야생동물을 구조해 우리 동물원에 보낸 게 바로 정부 아닌가. 여러 측면을 봐도 우리 동물원이 바로 구조센터”라고 주장했다.

재계약(10년) 시점 직전에 푼다소는 다시 환경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정부로부터 재계약이 안 된다는 사전 고지를 받지 않았다는 게 푼다소의 주장이었다. 이에 환경부는 푼다소가 동물원 운영권을 계속 갖게 되더라도 동물들을 단계적으로 없애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맞섰다. 카스트로 장관이 밝혔다. “푼다소가 소송에서 이겨 동물원 운영권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푼다소는 동물을 계속 사육할 수 없을 겁니다. 자연사하거나 (구조되어) 야생방사된 동물 대신에 새로운 동물도 들여올 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2014년 3월 법원은 푼다소의 손을 들어주었다. 판결은 간략했다. 정부가 재계약 당일에야 운영권 만료를 통보했고, 푼다소는 하루 뒤에야 이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푼다소의 동물원 운영권은 2024년까지 재연장됐다.

지난해 5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환경부 장관도 바뀌었다. 새 장관 체제에서 환경부는 푼다소에 사육동물을 이전시키라는 어떤 압력도 행사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푼다소 간 2심 소송이 계속 진행중이지만,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몇년 동안 정부의 푼다소에 대한 조처는 취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코스타리카 동물원 폐지 논쟁 일지
코스타리카 동물원 폐지 논쟁 일지
동물들을 위한 행진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 운영권은 여전히 푼다소가 쥐고 있지만, 코스타리카의 여론은 점점 더 야생동물 감금·전시를 폐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동물단체는 최근 들어 3만명의 회원을 끌어모을 정도로 이 나라에서 주요한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온라인 서명이나 페이스북 모임을 통하여 동물원 폐지를 압박하는 등 지금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은 일상적인 반대집회에 포위된 형국이다.

불행하게도 코스타리카에서는 기술적인 법적 논리가 정부의 개혁 노력을 왕왕 지연시켰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환경부가 동물원을 폐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음은 명백하다. 동물 감금·전시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겠다고 한 국민들과의 약속을 코스타리카 정부는 지켜야 한다.

지난달 9일 수백명이 시몬 볼리바르 동물원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모였다. 이들은 사자 키부의 사진을 들고 동물원의 폐쇄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이 행진은 언론이나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됐지만, 동물원에 보여준 메시지는 간명했다. 가장 맨 앞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있던 건 간결한 구호가 쓰인 펼침막이었다. “99년이나 가뒀으면 충분해. 시몬 볼리바르 감옥을 폐쇄하라.”

산호세(코스타리카)/린지 펜트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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