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생명
찬텍, 어느 오랑우탄 이야기
찬텍, 어느 오랑우탄 이야기
▶ 찬텍. 생일: 1977년 12월17일. 성별: 수컷. 고향: 여키스 영장류센터. 수마트라·보르네오 오랑우탄 잡종. 새끼 때 수화를 배운 찬텍은 약 150개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영어로 들리는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합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편이라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경우는 적지만, 예민한 성격의 찬텍은 자주 당신이 말하는 대부분을 듣고 있어요. 찬텍은 그림 그리기, 구슬 꿰기, 만들기를 즐겨 한답니다.(미국 애틀랜타의 애틀랜타동물원 누리집)
28년 전 영장류 실험실에서 갓 태어난 오랑우탄이 미국의 한 대학으로 보내졌다. 어린 오랑우탄은 수화를 배우고 쇼핑을 다니며 ‘사람처럼’ 살았다. 연구자는 오랑우탄을 자식처럼 대했고 오랑우탄은 그녀를 엄마라고 불렀다. 8년 뒤 오랑우탄은 다시 영장류 실험실에 소환됐다. 그리고 지금 ‘인간과 대화하는’ 오랑우탄은 동물원에 갇혀 있다. 연구자는 동물원을 방문해 울타리 너머로 오랑우탄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오랑우탄의 이름은 찬텍. 연구자는 린 마일스다.
지난달 11일부터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진행하고 있는 <한겨레>는 린 마일스(71) ‘찬텍 재단’ 대표(미국 채터누가 테네시대학 인류학과 교수)와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터뷰했다. 침팬지가 제인 구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듯이, 오랑우탄 찬텍도 그녀에게 그런 존재였다. 주류 과학과 다른 시선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꿈꾸는 그녀는 좀더 평화로운 공간에서 찬텍을 재회하길 원한다.
오랑우탄과 뛰놀던 평화의 캠퍼스
린 마일스가 찬텍을 만난 건 1978년이었다. 30대 중반의 전도촉망한 인류학자였던 마일스는 미국 채터누가의 테네시대학에서 유인원의 수화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의 영장류 실험시설인 여키스 영장류센터에서 태어난 지 아홉달밖에 되지 않은 오랑우탄 찬텍이 실험 대상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마일스의 실험은 여느 동물실험과 달랐다. 그는 대학 내 사택에서 찬텍과 함께 살았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화장실 습관을 들이고 유치원에 보내고 수화를 가르쳤다.(영화 <혹성탈출> 시리즈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당시 학계에서는 유인원의 능력에 관심을 기울이던 때였다. 최초로 수화를 구사한 침팬지 ‘워쇼’를 비롯해 고릴라, 보노보가 수화를 습득했다. 대형 영장류 가운데 오랑우탄만 남아 있었다. 과학자들은 대부분 오랑우탄의 언어 능력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야생의 침팬지나 고릴라는 집단생활을 하지만 오랑우탄은 숲의 상층부를 유목하는 단독자에 가까웠다. 불과 이주일 만에 회의론자들의 생각이 옳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찬텍이 가장 처음 배운 단어는 ‘먹다’(eat)였다. 인간 어린이와 같은 방식으로 ‘마시다’(drink), ‘음식’(food) 등을 배웠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용되는 미국수화(ASL·American Sign Language)가 인간과 소통하는 도구였다.
-<한겨레>는 지난달부터 서울대공원에서 오랑우탄 보라, 보석, 보람을 대상으로 거울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찬텍이 거울 앞에 서던 장면이 기억나나요?
“찬텍은 인간 문화에서 길러진 오랑우탄입니다. 미국수화에 기반한 ‘오랑우탄 수화’(오랑우탄 손가락이 길어 약간 변형함)로 의사소통하고 인간 환경에서 컸어요. 거울을 보고 자신을 인식한 건 찬텍이 18개월쯤이었어요. 두살 때에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거울 뒤에 가보기도 했고(인간 어린이한테 나타나는 행동이죠), 찬텍이 자고 있을 때 몰래 이마에 표시를 해놓은 거울실험에서는 깨어나서 이마를 만지작거렸어요. 몇년 뒤 찬텍은 거울을 보면서 부은 눈을 만지기도 하고, 입을 여닫으면서 놀기도 하고, 입술을 만지고 깨물고,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얼굴에 칠해진 페인트를 닦았지요.”
-찬텍이 거울실험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 것과 언어 능력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재밌는 점은 이런 자의식의 증거가 찬텍의 언어 발달과 조응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찬텍은 자신을 ‘나’(me)로 부르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이해하면서 ‘너’(you)라고 불렀지요. 행동발달단계에서 이를 ‘주관적 표상’(subjective representation)이라고 해요. 또한 찬텍의 다른 행동 발달과도 일치했어요. 찬텍은 자신을 자연스럽게 가리켰고, 주목을 끌기 위해 다른 물체를 가리키기도 했어요. 이러한 사실들은 찬텍이 지닌 자아개념(self concept)과 자의식(self awareness)을 보여준 강력한 증거였죠.”
찬텍은 실험실에 갇힌 ‘자극-반응 기계’가 아니었다. ‘피실험자’인 찬텍은 ‘실험자’인 마일스와 감정을 교류했으며, ‘예수 가라사대’ 놀이를 했고, 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청소를 도와준다거나 좋은 일을 하면 찬텍은 보상으로 ‘가짜 동전’을 받았다. 찬텍은 자동차를 타고 나가 아이들처럼 데어리퀸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것을 좋아했다. ‘오렌지’라고 말하고 가짜 동전을 냈고, 점원으로부터 오렌지맛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커가면서 언어 능력도 늘어났다. 테네시대학의 대학신문 <유니버시티 에코>는 실험이 시작된 이듬해인 1979년 11월30일 오랑우탄 찬텍을 만날 수 있는 ‘오픈하우스’가 열린다면서 그가 12개 단어를 습득했다고 전했다. 1980년대 중반 찬텍이 구사하는 단어는 150개에 이르렀다. 가르쳐주지 않은 단어는 스스로 조합해 썼다. 케첩을 ‘토마토-치약’(tooth-paste)이라고 칭했고, 햄버거를 ‘치즈-고기-빵’(cheese-meat-bread)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논휴먼라이츠’ 등 단체가 생겨나는 등 비인간인격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찬텍은 비인간인격체였나요?
“의심할 여지 없이요. 사실 내가 ‘네가 누구냐’고 물어보자, 찬텍은 ‘오랑우탄 사람’(Orangutan Person)이라고 말했어요. 찬텍은 수백가지 수화를 했고, 감정을 표현했으며, 좋아하는 색깔을 선택했고, 조약돌로 비트를 맞췄고(나는 록 음악이라고 했죠), 내가 아는 한 액세서리를 만드는 유일한 동물이었어요. 문제를 해결하고, 자물쇠를 따고, 햄버거를 달라고 했어요. 오랑우탄과 대형 영장류에 대한 연구는 그들에게 복잡한 문화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일부 동물권운동의 전략과는 좀 다를 수도 있지만, 나는 영장류에 대한 생화학 실험 폐지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종에 대한 최소한의 동물실험에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감금 상태에 있는 유인원의 경우 단순히 전화번호부를 찢게 하고 건초 더미에서 건포도를 찾게 하는 동물행동 풍부화뿐만 아니라 문화적 기반의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지능이 매우 높고 그들의 형제보다 대우받을 가치가 있어요!”
실험실서 태어난 오랑우탄 ‘찬텍’
1978년 수화 연구 투입되어
연구자와 ‘사람처럼’ 살았다
비현실적 평화의 마스코트는
8년 만에 케이지로 돌아가 “감정을 표현하고 비트를 맞추는
찬텍은 비인간인격체”
우리의 윤리와 도덕의 모순에
질문을 던지는 찬텍을 보러
그녀는 오늘도 동물원에 간다 ‘습격자’가 된 털북숭이 찬텍은 유명할 것이라고는 없는 시골 대학도시에서 마스코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찬텍은 캠퍼스의 문화를 바꾸었다. ‘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비현실적 평화가 이 작은 도시에 깃든 듯했다. 찬텍이 여덟살 때 그러나 평화는 깨지고 만다. 몸집이 커지면서 그는 이미 골칫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고, 우람한 털북숭이가 활보하는 것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1986년 2월15일, 대학 도서관 계단에서 한 여학생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사흘 뒤 <유니버시티 에코>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대학 소식통에 따르면, 찬텍은 트레일러를 빠져나와 놀이공간을 둘러싼 전기담장을 넘어 23구역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한 여학생을 부지불식간에 덮쳤다. 보안요원들이 찬텍을 돌려보냈고 학생 등의 부상은 보고되지 않았다.” 타 생명체에 대한 환대가 공포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뒤 존 트림피 인문사회대 학장은 ‘찬텍 프로젝트’의 종결을 선언한다. 그는 이 결정이 습격 사건과 관련이 없다면서도 “찬텍의 몸집이 너무 커지고 빨라져, 증축하려고 하는 시설 또한 적당하지 않을 것 같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밝혔다. 미국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이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였다. 마일스는 반대했지만 결정권이 없었다. -이후 학계에서는 유인원에 대한 수화 연구도 시들해졌습니다. 당시 연구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의 주류 과학자들은 수화 연구가 동물을 인간화시킨다는 점에서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유인원 수화 연구는 굉장히 많은 비용과 노동이 필요합니다. 1930년대 시작돼 1960년대 2세대 연구가 꽃피었고 내 연구는 3세대쯤이었습니다. 유인원이 상징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나타난 조악한 비판론도 있었지만, 방법론에 대한 접근과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는 영장류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슈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는 찬텍과 어디에 머물지를 두고 어려움을 겪었어요. 몸집이 커지면서 대학 캠퍼스에서는 함께 살 수 없었고, 여키스 영장류센터로 되돌려 보내자니 인간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문화적인 의미의 ‘종간 하이브리드’를 위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결국 찬텍은 동물원에 가게 된 것이에요. 동물을 인간화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 견해를 오해한 것이고 어떤 의미에선 반진화론자들입니다. 유인원의 유전자는 99% 인간과 같고 심지어 혈액형도 비슷해요. 야생에 사는 대형 유인원은 문화가 있고 복잡한 사회적 소통을 합니다. 우리는 유인원과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어요. 우리의 문화와 유산을 공유하는 게 그들을 인간화하는 것일까요?” 동물원 동료를 인정하지 않다 찬텍은 마일스와 8년을 살았다. 이 사건 뒤 여키스 영장류센터로 소환된 찬텍은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혔다. 마일스가 찬텍을 보러 갔을 때, 찬텍은 미동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찬텍이 수화로 말했다. “엄마 린, 차에 가자, 집에 가자.”(Mother Lyn, get the car, go home) 그녀는 찬텍에게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찬텍은 “아프다”(hurt)고 대답했다. “어디가 아프니?” 찬텍은 “마음”(feelings)이라고 답했다. 찬텍의 거취 문제는 우리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모순을 예리하게 가르는 칼이었다. 여키스 영장류센터의 좁은 케이지는 찬텍에게 불편했지만, 인간의 감정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타협책은 동물원이었다. 찬텍은 1997년 애틀랜타 동물원의 오랑우탄사로 이송됐다. 찬텍은 동물원 동료를 자기와 같은 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찬텍은 “오렌지색 개”(orange dog)라고 대답했다. -요즈음에도 찬텍을 자주 보나요? “불행히도 동물원은 더이상 찬텍이 수화를 쓰도록 독려하지도 않고 연구자인 내가 일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아요. 저도 일반 관람객처럼 멀리서 찬텍을 볼 수밖에 없죠. 심지어 유인원을 ‘인간화’하는 걸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인간화된 동물이 이미 거기 있다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부정하는 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나는 찬텍을 위한 문화 기반의 공간을 동물원과 함께 만들고 싶어요.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인 사람들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찬텍 재단이 만들려고 하는 ‘동물 문화 센터’는 무엇인가요? “내 평생의 비전이에요. 저는 ‘동물 국가’(Animal Nation)라고 부르죠. 동물들이 전시 대상으로 타자화되는 동물원과 달리 동물 스스로 행위주체(agency)가 되어 선택을 하며 살 수 있는 곳이에요. 찬텍이 인간사회에 나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찬텍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동차를 타고, 그림을 그리고, 도구를 만들고, 어떻게 야생 오랑우탄이 막대기를 사용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인터넷으로 아이들과 체스를 둘 수 있게는 할 수 있죠. 제인 구달은 ‘오랑우탄이 목걸이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이런 찬텍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야생 환경을 보전하고 그들과 의미있는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통찰을 얻기를 희망해요.”
마일스는 지금도 주기적으로 찬텍을 보러 동물원에 간다. 2013년 다큐멘터리 <대학에 간 유인원>에서 그녀는 철제 울타리 너머의 찬텍에게 말을 건다. 손짓만 오가는 침묵의 끝. 동물원 밖으로 앰뷸런스가 지나간다. 그녀의 물음에 찬텍이 대답한다. “자동차.” … “물, 자동차, 마시다.”
찬텍은 지금도 애틀랜타 동물원에 산다. 올해 서른여덟살이다. 인간과 대화하는 유일한 오랑우탄이다. 찬텍은 한 과학자의 일생을 바꾸었고, 일흔이 넘은 마일스는 이제 찬텍과 공존하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한겨레 오랑우탄 거울실험 프로젝트
<한겨레> 토요판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펀딩21’과 함께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진행하고 단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후원하신 분들에게 다큐멘터리에 이름을 실어드리고 상영회 초대권, 동영상 파일 등을 제공합니다.
● 후원: 펀딩21 funding21.com
● 실험 진행 과정: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 facebook.com/nonhumanperson
후원자 (12월4일 오전 현재)
이지연 이철호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윤지은 최주연 수박장수 최재연 최경화 박하재홍 백수빈 고복순 임해님
김은임 임차돌 박진주 이홍희 이원우 이경철 나연주 이응제 김주희 이은혜 승운이엄마 선영이
인류학자 린 마일스는 수화 연구를 위해 오랑우탄 찬텍과 8년 넘게 함께 살았다. 마일스가 찬텍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채터누가 테네시대학 제공
1986년 한 여학생이 위협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찬텍은 여키스 영장류센터로 보내진다. 당시 대학신문의 기사. <유니버시티 에코> 갈무리
1978년 수화 연구 투입되어
연구자와 ‘사람처럼’ 살았다
비현실적 평화의 마스코트는
8년 만에 케이지로 돌아가 “감정을 표현하고 비트를 맞추는
찬텍은 비인간인격체”
우리의 윤리와 도덕의 모순에
질문을 던지는 찬텍을 보러
그녀는 오늘도 동물원에 간다 ‘습격자’가 된 털북숭이 찬텍은 유명할 것이라고는 없는 시골 대학도시에서 마스코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찬텍은 캠퍼스의 문화를 바꾸었다. ‘사자와 어린 양이 뛰노는’,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비현실적 평화가 이 작은 도시에 깃든 듯했다. 찬텍이 여덟살 때 그러나 평화는 깨지고 만다. 몸집이 커지면서 그는 이미 골칫덩어리가 되어가고 있었고, 우람한 털북숭이가 활보하는 것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1986년 2월15일, 대학 도서관 계단에서 한 여학생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사흘 뒤 <유니버시티 에코>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대학 소식통에 따르면, 찬텍은 트레일러를 빠져나와 놀이공간을 둘러싼 전기담장을 넘어 23구역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한 여학생을 부지불식간에 덮쳤다. 보안요원들이 찬텍을 돌려보냈고 학생 등의 부상은 보고되지 않았다.” 타 생명체에 대한 환대가 공포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마 뒤 존 트림피 인문사회대 학장은 ‘찬텍 프로젝트’의 종결을 선언한다. 그는 이 결정이 습격 사건과 관련이 없다면서도 “찬텍의 몸집이 너무 커지고 빨라져, 증축하려고 하는 시설 또한 적당하지 않을 것 같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밝혔다. 미국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이 지원하는 연구 프로젝트였다. 마일스는 반대했지만 결정권이 없었다. -이후 학계에서는 유인원에 대한 수화 연구도 시들해졌습니다. 당시 연구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금의 주류 과학자들은 수화 연구가 동물을 인간화시킨다는 점에서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유인원 수화 연구는 굉장히 많은 비용과 노동이 필요합니다. 1930년대 시작돼 1960년대 2세대 연구가 꽃피었고 내 연구는 3세대쯤이었습니다. 유인원이 상징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나타난 조악한 비판론도 있었지만, 방법론에 대한 접근과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는 영장류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이슈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는 찬텍과 어디에 머물지를 두고 어려움을 겪었어요. 몸집이 커지면서 대학 캠퍼스에서는 함께 살 수 없었고, 여키스 영장류센터로 되돌려 보내자니 인간 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문화적인 의미의 ‘종간 하이브리드’를 위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결국 찬텍은 동물원에 가게 된 것이에요. 동물을 인간화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내 견해를 오해한 것이고 어떤 의미에선 반진화론자들입니다. 유인원의 유전자는 99% 인간과 같고 심지어 혈액형도 비슷해요. 야생에 사는 대형 유인원은 문화가 있고 복잡한 사회적 소통을 합니다. 우리는 유인원과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어요. 우리의 문화와 유산을 공유하는 게 그들을 인간화하는 것일까요?” 동물원 동료를 인정하지 않다 찬텍은 마일스와 8년을 살았다. 이 사건 뒤 여키스 영장류센터로 소환된 찬텍은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혔다. 마일스가 찬텍을 보러 갔을 때, 찬텍은 미동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찬텍이 수화로 말했다. “엄마 린, 차에 가자, 집에 가자.”(Mother Lyn, get the car, go home) 그녀는 찬텍에게 아프냐고 물어보았다. 찬텍은 “아프다”(hurt)고 대답했다. “어디가 아프니?” 찬텍은 “마음”(feelings)이라고 답했다. 찬텍의 거취 문제는 우리 인간의 윤리와 도덕의 모순을 예리하게 가르는 칼이었다. 여키스 영장류센터의 좁은 케이지는 찬텍에게 불편했지만, 인간의 감정도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타협책은 동물원이었다. 찬텍은 1997년 애틀랜타 동물원의 오랑우탄사로 이송됐다. 찬텍은 동물원 동료를 자기와 같은 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찬텍은 “오렌지색 개”(orange dog)라고 대답했다. -요즈음에도 찬텍을 자주 보나요? “불행히도 동물원은 더이상 찬텍이 수화를 쓰도록 독려하지도 않고 연구자인 내가 일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아요. 저도 일반 관람객처럼 멀리서 찬텍을 볼 수밖에 없죠. 심지어 유인원을 ‘인간화’하는 걸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인간화된 동물이 이미 거기 있다면,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부정하는 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나는 찬텍을 위한 문화 기반의 공간을 동물원과 함께 만들고 싶어요.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인 사람들과 후원이 필요합니다.” -찬텍 재단이 만들려고 하는 ‘동물 문화 센터’는 무엇인가요? “내 평생의 비전이에요. 저는 ‘동물 국가’(Animal Nation)라고 부르죠. 동물들이 전시 대상으로 타자화되는 동물원과 달리 동물 스스로 행위주체(agency)가 되어 선택을 하며 살 수 있는 곳이에요. 찬텍이 인간사회에 나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는 찬텍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동차를 타고, 그림을 그리고, 도구를 만들고, 어떻게 야생 오랑우탄이 막대기를 사용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인터넷으로 아이들과 체스를 둘 수 있게는 할 수 있죠. 제인 구달은 ‘오랑우탄이 목걸이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환경을 보전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이런 찬텍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야생 환경을 보전하고 그들과 의미있는 방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통찰을 얻기를 희망해요.”
마일스와 헤어져 애틀랜타 동물원에서 살고 있는 찬텍의 모습. <대학에 간 유인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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