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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울루와 우탄은 형제…지금은 운명공동체

등록 2015-12-11 21:48수정 2015-12-12 20:02

보르네오섬 밀림에 산불을 지르고 팜 농장으로 만드는 불법 벌목과 이로 인한 대기환경 악화 때문에 오랑우탄과 인간은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구조된 오랑우탄이 야생방사된 세멩고 자연보호구역에 한 오랑우탄이 10월26일 찾아왔다.
보르네오섬 밀림에 산불을 지르고 팜 농장으로 만드는 불법 벌목과 이로 인한 대기환경 악화 때문에 오랑우탄과 인간은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구조된 오랑우탄이 야생방사된 세멩고 자연보호구역에 한 오랑우탄이 10월26일 찾아왔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 보르네오섬의 야생 오랑우탄
“목 칼칼하지 않아요?”

택시기사는 공항에서 내린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지난 10월26일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의 최대 도시 쿠칭.

“어제는 미세먼지가 장난 아니었어요. 이게 다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온 거예요. 말레이시아는 불법 벌목을 그나마 적발이라도 하는데, 인도네시아 쪽은 아니에요. 하루가 멀다 하고 이렇게 숲을 태우니, 원….”

그는 페이스북을 만지작거리더니 산불을 피해 도망가는 오랑우탄 사진을 보여주었다. 말레이시아인과 오랑우탄은 운명공동체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때 ‘띠링’ 휴대전화가 울렸다. 한국 외교부에서 온 메시지였다. “연무로 인한 대기오염 심화, 마스크 준비.” “사바주 동부 해안 여행 자제.”

  

오랑울루와 오랑우탄

보르네오는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열대의 섬이다. 섬 중앙부를 경계로 북쪽을 말레이시아가, 남쪽을 인도네시아가 차지하고 있다. 섬 중앙부에는 밀림이 펼쳐져 있다. 그들은 가끔씩 배를 타고 숲 밖으로 나왔다. 이방인의 머리를 사냥해 전통가옥인 롱하우스에 두개골을 걸어놓고 사는 숲 속의 사람들.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강 위에서 온 사람’(오랑-울루)이라고 대답했다. ‘오랑’은 보르네오 말로 ‘사람’을 뜻한다. 오랑울루는 강 위에 사는 소수 부족을 통칭한다. 그리고 오랑울루가 사는 밀림에는 그들과 97%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숲의 사람’(오랑-우탄)도 살았다.

오랑우탄에는 보르네오오랑우탄과 수마트라오랑우탄 등 두 개의 아종이 있다. 과거 보르네오의 거의 모든 숲에 살던 보르네오오랑우탄은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면서 섬 중앙부에 고립됐다. 이제 이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말레이시아 서부의 바탕 아이 국립공원, 동부의 세필록 지역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세코녜르 강 등 몇 곳밖에 없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을 보면, 2000~2003년 4만5000~6만9000마리가 남은 것으로 추정됐다.

오랑우탄은 인간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밀렵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랑우탄의 목에 쇠사슬을 묶고 애완동물로 키우는 게 이 섬 권력층의 호사 취미였다. 식민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였던 보르네오에 서구인들은 이 신기한 숲의 사람을 잡아다 유럽의 동물원에 보내고 정원에 키웠다. 어린 오랑우탄은 애완동물로 제격이었다. 귀엽고 똑똑했으며 인간과 잘 소통했다. 오랑우탄 사육 취미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독립하고 한참 뒤인 1970~80년대까지도 보르네오 권력층에게 이어내려왔다. 과거 서울 부유층의 표상이 연못과 정원의 공작새였듯, 이 섬의 권력의 표상은 오랑우탄과 그것을 가둔 케이지였다. 세계적인 야생 오랑우탄 연구자인 비루테 갈디카스가 보르네오에 와서 제일 처음 본 오랑우탄 ‘쳄파카’도 은퇴한 산림청 공무원 부부가 기르던 애완동물이었다. “그 오랑우탄은 밤이면 부인과 함께 모기장 속에서 잠을 자고, 오랫동안 아기처럼 안겨다녔으며, 주인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에덴의 벌거숭이들>) 그러나 이런 오랑우탄이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인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지금의 수많은 동물원의 동물 스타가 그렇듯, 어린 유인원은 덩치가 커지면서 버림받는다. 동물원으로 팔리고 죽임을 당한다.

쿠칭 남쪽 세멩고 자연보호구역은 밀렵이나 밀반출이 되려다 구조된 오랑우탄들과 이들이 낳은 자손이 새 터전을 삼은 곳이다. 구조된 오랑우탄은 재활센터에서 나무 오르기, 과일 따 먹기 등의 야생 적응 훈련을 마치고 세멩고 보호구역에 방사된다. 보호구역은 울타리가 없는 열대의 첩첩산중이다. 야생 속에 들어간 오랑우탄은 돌아오지 않기도 하고, 매일 두번 있는 먹이 주는 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 최고령자 세두쿠(44), 알파 수컷 리치(34)를 포함해 26마리가 산다.

숲은 성당처럼 고요하고 장엄했다. 숲의 한 지점에는 나무로 세워진 먹이 급여대가 있다. 오랑우탄이 타고 내려올 수 있도록 밧줄이 걸려 있다. “오오~” “아아~” “어어~” 보호구역 직원 무르탓자 오트만(57)의 오랑우탄 부르는 소리가 파이프오르간처럼 숲을 울린다. 10분이 흘렀을까. 오렌지색 털북숭이가 밀림의 차양부에서 하나둘 모습을 비쳤다.

낮잠에 빠진 사람의 머리를 베어가고 주저앉으면 다리가 머리보다 높아진다는 전설 속 밀림의 괴수 ‘우트우트’는 필경 오랑우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설과 달리 오랑울루는 대부분의 시간을 오랑우탄과 평화롭게 공존했다. 삶의 고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오랑울루는 밀림의 아래를 걸어다녔고, 오랑우탄은 밀림의 위를 그네 타듯 건너다녔다. 오랑우탄은 웬만해서는 땅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 고층생활자다. 밤에도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잠을 잔다. 비 올 때는 펑퍼짐한 나뭇잎으로 우산을 만들어 쓰고, 나뭇가지로 도구를 만들어 쓴다.

  

엄마에게 업힌 디지털구로

이날 오랑우탄은 인간이 놔둔 코코넛 열매에 관심 없는데 그냥 한번 내려와봤다는 듯 게으름을 피우며 먹이급여대에 도착했다. 수컷 에드윈(19)에 이어 암컷 애날리사(19)가 새끼 디지털구로(3)를 업고 나타났다.(서울시 구로구가 쿠칭 남구와 교류협력 사업을 전개하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무르탓자 오트만은 “숲의 열매가 풍성해지는 12월이 되면 오랑우탄의 방문이 더 뜸해진다”고 말했다.

세멩고 보호구역은 인간과 오랑우탄이 새로운 관계를 맺은 밀림이다. 원 서식지가 아닌 곳에 오랑우탄이 방사됐고(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제주 바다에 돌아갔듯, 현대 보전생물학에서 야생방사는 살던 곳에 돌려보내는 게 원칙이다), 그곳에서 다시 야생화된 오랑우탄이 새로운 무리를 이루어 산다. 세멩고 보호구역 관계자는 “원 서식지가 불분명한 개체들이 많고, 야생방사 뒤 서열 문제가 발생해 최근에는 이 지역에만 방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예나 국립생태원 전문위원은 “팜나무 농장들이 서식지를 파편화, 훼손하고 있어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 구조된 개체도 돌려보낼 곳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세멩고에서 오랑우탄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린다. 야생 오랑우탄이 그러하듯이 짝짓기 시기나 새끼들이 어울려 놀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어떤 오랑우탄은 먹이를 받으러 오고, 어떤 오랑우탄은 자급자족에 열심이다. 자신의 삶 속에서 자유의지를 갖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부자연스러운 무리를 이루고 자극이 없는 동물원에서와는 전혀 다른 삶이다.

쿠칭(말레이시아)/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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