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경기 성남시 분당 경동그룹사옥 옥상정원인 하늘동산에서 김철민 한국도시녹화 대표가 인공습지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도시녹화 대표 김철민씨
하늘숲사람들.지난 7월 이화여대가 운영하는 마포·서대문자활후견기관 소속 50대 후반의 자활대상자 가운데 5명으로 출범한 작은 회사의 이름이다.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생태터(비오톱) 개념이 도입된 옥상정원의 관리를 대행하는 것이 그들의 사업 영역이다.
나이가 많은데다 특별한 기술도 없어 자활후견기관의 도움까지 받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을까? “젊은 사람이 대단해요. 한 가지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열심히 안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없었으면 회사 설립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하늘숲사람들의 대표 양경석(63)씨의 말이다.
양씨가 말하는 ‘젊은 사람’은 옥상녹화 전문업체인 한국도시녹화 대표 김철민(43)씨다. 1999년에 처음 옥상녹화에 눈을 떴고, 회사를 설립한지는 겨우 4년째이지만, 그는 옥상녹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생태터 개념이 적용된 국내 최초의 옥상정원으로 꼽히는 경기도 분당 경동그룹 사옥의 하늘동산, 지난해 서울시 조경대상을 수상한 구로구 개봉동 목원유치원 옥상정원, 국내 최대의 옥상정원인 서울시 중구 버티공영주차장 옥상 등 중요한 옥상녹화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요즘 심혈을 쏟고 있는 일은 바로 하늘숲사람들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하늘숲사람들 참여자들은 지난 2003년말부터 옥상녹화관리 교육을 받아온 서울시내 자활후견기관 소속 자활대상자 35명 가운데 그가 전문업체 설립을 목표로 따로 심화교육을 시킨 사람들이다. 자활대상자들에 대한 안정적 일자리 제공과 건물의 생태성을 높이는 작업을 옥상에서 만나게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옥상녹화를 하고 싶어도 관리가 안될 것이 뻔해 안하겠다’는 건물주들이 많습니다. 하늘숲사람들과 같은 전문업체는 바로 그런 우려에 대한 대답인 셉입니다.”
하늘숲사람들은 현재 한국도시녹화에서 교육 외에 월 100만원 가량의 실비 지원을 받고, 한국도시녹화가 시공한 서울시내 옥상녹화 현장을 평일에 2곳씩 방문해 관리하는 일을 한다. 그들의 노력은 아직 그다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방문하는 옥상녹화 건물 가운데 건물주가 봉사의 댓가로 월 30만원 안팎의 관리비를 지불하는 곳은 아직 2곳 뿐이다. 하지만 김씨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더 높은데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숲사람들을 간단한 시공까지 할 수 있는 업체로 만든 다음, 구성원 5명이 각자 업체를 하나씩 이끌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렇게 하늘숲사람들을 점차 핵분열시켜 옥상에서 복지와 고용이 환경과 행복하게 만나는 모범사례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이처럼 늘 옥상 주변을 맴도는 김씨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은 옥상과는 반대편에 있는 땅 속이었다. 1987년 대학을 졸업하면서 강원도 삼척 경동탄광의 운탄계 계원으로 처음 지하 막장을 구경했다. 군대도 안 다녀온 새파란 나이였지만 자원공학을 전공한 덕분에 아버지뻘인 늙은 노동자를 포함한 광원 30여명의 감독자가 된 것이다.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곧잘 자신들이 “두 겹 하늘을 이고 산다”고 말한다. 지하 갱도의 천정은 그들에게 또 한 겹의 하늘이다. 툭하면 무너지곤 하는 무서운 하늘이다. 두 겹 하늘이라는 표현에는 그래서 바람이 불고 새들이 날아다니는 지상의 하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런 이유도 있었을까. 그는 땅 속을 벗어나면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옥상에 새 삶의 보따리를 풀었다.
탄광 생활 5년만에 그는 회사가 새로 꾸린 건설사업부로 발령을 받았다. “석탄산업합리화 조처에 따라 많은 광원들이 곧 회사를 그만둬야 될 처지였습니다. 그들에게 새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회사가 그들의 장기인 굴 뚫는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새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지요.” 노동자들이 몸이 아파서 일찍 퇴근하겠다는 말을 부담없이 꺼낼 수 있었고, 막 움트던 광산 민주노조운동의 자문역 비슷한 역할을 해온 덕에 빨갱이로 불리기도 했던 ‘특별했던’ 계원은 그렇게 탄광을 벗어났다.
13일 오후 그와 함께 경동그룹 사옥 옥상의 하늘동산을 찾았다. 1999년 말 완공된 150여평 넓이의 하늘동산은 그가 당시 사옥건설추진팀장을 맡지 않았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었던 만큼 그에겐 특별한 공간이다. 하늘동산으로 오르는 문은 뜻밖에 굳게 잠겨 있었다. 회사 쪽이 특별히 문을 열어 줘 하늘동산을 본 그는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방치되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경영진의 그런 닫힌 마음은 그가 회사를 떠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늘동산에는 여전히 생명이 넘치고 있었다. 가장자리의 배수구 뚜껑을 열자 연한 갈색 피부의 개구리 새끼 두 세마리가 튀어 달아났다. 배수로의 물기에 기대 살아가는 아무르산 개구리들이었다. 1999년말 완공 직후 들어와 5년 이상 옥상에서 대를 이어 온 놈들이었다. 콘크리트속에 갖힌 채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자연이었지만 자연의 생명력은 그렇게 질겼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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