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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설악산 지킴이 23년째 ‘케이블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등록 2016-01-11 20:42

박그림씨
박그림씨
[짬]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그림씨
한국환경기자클럽은 해마다 연말 투표를 통해 그해 환경 분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이나 단체를 ‘올해의 환경인’으로 뽑아 격려한다. 지난해에는 설악산 지킴이로 유명한 박그림(68) 녹색연합 공동대표가 이유진 녹색당 공동 운영위원장과 함께 선정됐다. 설악산에 들어가 환경운동을 펼쳐온 23년 가운데 15년 동안 케이블카 사업을 막기 위한 싸움을 벌여왔다는 그는 지금 설악산을 케이블카로부터 지키기 위해 두 달이 넘도록 한뎃잠을 자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지구와 끝청봉을 잇는 케이블카 사업은 지난해 8월28일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19일부터 춘천의 강원도청 앞에 천막을 치고 해를 넘겨 노숙 농성을 이어오고 있는 박 대표를 지난 5일 만났다.

2015 환경기자클럽 ‘올해의 환경인’
1992년 산양 쫓아 설악산 사나이로
“세살 손자에게 ‘자연’ 물려주고파”

지난해 조건부 승인 이후 석달째 농성
최문순 강원도지사 면담 요청중
“최 지사가 ‘안하겠다’ 결재해지해야”

박 대표는 등산용 셔츠 아래 녹색 치마를 두른 특이한 차림으로 기자를 맞았다. “녹색은 생명과 평화와 저항의 상징입니다. 2013년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만들어 입었어요. 남자가 치마를 입고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내려다보면 흐트러지는 마음이 단단하게 다져집니다.” 녹색 치마는 그에게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들이 머리에 질끈 동여매는 붉은 머리띠 같은 것인 셈이다.

그는 매일 아침 공무원들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도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최문순 강원지사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강원도뿐 아니라 양양군·환경부·청와대 등 여러 기관의 긴밀한 공조로 추진되고 있다. 그럼에도 도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는 까닭은 최 지사가 해법을 쥐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최 지사가 발 벗고 뛰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도 최 지사가 ‘케이블카 안 하겠다’고 하면 끝입니다. 결자해지하라는 것이죠.”

이런 그의 외침에 강원도를 비롯한 관련 기관들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강원도와 양양군은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과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진행하는 등 케이블카 공사를 위한 절차를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조바심을 느낄 법도 한 상황이건만 그는 백전노장 같은 태연한 표정이다. “제가 92년 서울을 떠나 설악산으로 들어갔는데 그때도 이미 케이블카 얘기가 있었어요. 구체화되기 시작한 지도 15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세워질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이번에는 조건부 승인까지 됐지만 앞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반드시 막아낼 겁니다.”

그가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이처럼 반대해온 것은 케이블카가 산양을 비롯해 설악산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과 생태계 핵심 지역의 보전에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60년대 말과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청봉 정상에는 식물들이 일부 남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점차 사라져 맨땅으로 황폐화됐습니다. 95년 중청대피소가 지어져 사람들을 정상으로 계속 끌어올린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어요. 여기에 케이블카로 1년에 60만명 정도를 실어 올린다면 환경 훼손은 뻔한 일”이라는 얘기다.

그는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이 설악산의 훼손뿐 아니라 전국 산지의 난개발 빗장을 열게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가장 엄격하게 관리돼온 설악산에 케이블카 건설이 허용된다면 전국 어디에서든 막을 명분이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국립공원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산에는 가능한 한 인공시설물을 설치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불편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위험과 불편함을 견디고 넘어서면서 스스로 대견해지기 위해 산에 가는 게 아닌가요? 그것이 싫으면 체육관에 가야지요. 그런데도 국립공원에 어울리지 않게 고객 만족이라는 구호 아래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계속 시설을 해서 사람들을 위로 올려보내다 보니 유원지에 가야 할 사람이 대청봉까지 올라가는 상황이 되면서 엄청난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노숙하는 두세평 남짓한 천막 안 작은 탁자 위에는 짐승 뼈와 검은색 콩알 같은 것이 가득 든 동그란 플라스틱 통이 놓여 있다. 설악산에서 발견한 산양의 앞다리뼈와 산양의 똥이다. 그는 “항상 같이 있고 싶어서요. 이것만 갖다 놔도 같이 있는 듯하고 (산양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거든요”라며 산양똥이 든 플라스틱 통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그는 산양 똥을 지니고 다닐 뿐 아니라 먹기까지 한 기행으로 유명하다. 2000년 쓴 <산양똥을 먹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다. 아무리 산양이 좋다고 똥까지 먹어야 했을까? “92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설악산에 내려와 산양을 쫓아다니면서 산양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어요. 똥도 그중에 하나였죠. 그러다가 여러 번 맛도 봤어요. 산양을 내 속에 담고 싶은 그런 생각도 있었죠. 하지만 삼키지는 않았어요”라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녹색연합 공동대표로 추대돼 활동하고 있다. 국내 양대 환경단체의 지도자로 환경운동 판을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그가 가장 안타깝게 느낀 것은 환경단체와 활동가들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문제는 결국 돈이었다. “많은 기업들로부터 후원을 받는 환경재단과 같은 곳에서 다른 환경단체들을 지원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어요. 문제는 기업들이 환경재단에 후원하면 더 이상 여력이 없다고 하는 거죠. 최근 농성장을 방문한 활동가가 전하길, 환경재단 쪽에 어떤 단체고 많은 후원금을 어디다 쓰느냐고 질의를 했더니, ‘우리는 환경단체가 아니다. 후원금은 국외 활동 하는 데 지원하고 있다’는 정도의 답변이 왔대요. 실망했어요.”

그는 “30개월쯤 된 손자가 있어요. 그 아이가 청년으로 자랐을 때도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고, 산양 똥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랍니다. 그것이 앞으로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춘천/글·사진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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