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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동물원으로 날아온 두루미의 친구

등록 2016-01-22 19:21수정 2016-01-24 10:05

지난달 공개모집 방식으로 채용돼 임명된 이기섭 서울동물원장은 국내 철새 보전을 위해 활발하게 뛰어온 연구자다. 21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그는 “멸종위기종 보전의 허브 역할을 하는 동물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달 공개모집 방식으로 채용돼 임명된 이기섭 서울동물원장은 국내 철새 보전을 위해 활발하게 뛰어온 연구자다. 21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그는 “멸종위기종 보전의 허브 역할을 하는 동물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이기섭 서울동물원장 인터뷰
▶ “내게 두루미는 아름다운 고통이다. 두루미를 몰랐을 때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두루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고 나서부터 난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편안한 삶, 배부른 삶도 아니고 가족을 위하는 일도 아니다. 이들을 알고 나서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질수록 내겐 고통이 다가옴을 느낀다.”(이기섭, <두루미> 중에서)

두루미 연구자가 동물원장이 되었다. 보전운동에 몸담은 외부인사가 서울대공원 동물원(이하 서울동물원)의 수장이 된 건 처음이다. 동물원 내 수의사 출신 관료가 원장이 되는 관행에 비춰도 이례적이다.

이기섭(54) 신임 서울동물원장은 ‘두루미네트워크’와 ‘물새네트워크’ 등 단체를 이끌며 두루미와 저어새 등의 연구·보전 활동을 해왔다. 학계와 환경단체를 잇는 철새보전운동의 대표적 인사다. 지난달부터 서울동물원을 이끌고 있는 이 원장을 21일 오후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만났다.

-동물원은 낯선 분야일 텐데요.

“저로서는 영광이지만 동물원에서는 걱정할지 모르겠네요.(웃음) 두루미와 저어새 등 새를 대상으로 했지만, 저도 10년 이상 멸종위기종 보전활동을 해왔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탐험에 대한 꿈을 키웠고 동물원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대학 문 앞에서 수의학과 생물학을 고민하다가 생물학을 택했고요. 당시 저명한 동물학자인 원병오 교수님을 보고 경희대에 입학했고, 학부 때에는 윤무부 교수님을 따라 전국에 새를 찾아다녔습니다. 원병오 교수님 밑에서 석사를 했고, 박사는 유정칠 교수님한테 했습니다.”

-다들 국내의 대표적인 동물·조류학자들이네요.

“집안 사정이 안 좋아서 유학을 못 갔어요. 고등학교 생물교사로 일하면서 박사학위를 마쳤죠. 2002년에 한국자연정보연구원 노영대 대표가 ‘데이비드 애튼버러’를 이야기하면서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비비시>(BBC) 다큐의 해설자 데이비드 애튼버러! 나에게 꿈을 줬던 분이죠. 강원 철원군 용역으로 철원 지방 두루미를 조사하는 일이 저에게 맡겨졌고,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국에 두루미가 몇마리 오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2007년 중국 판진에서 이기섭 원장(오른쪽)과 북한의 생물학자 박우일 박사(왼쪽 둘째), 국제두루미재단의 짐 해리스(셋째)가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이기섭 제공
2007년 중국 판진에서 이기섭 원장(오른쪽)과 북한의 생물학자 박우일 박사(왼쪽 둘째), 국제두루미재단의 짐 해리스(셋째)가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이기섭 제공

2001년 고교 교사 홀연 그만두고
멸종위기 조류 쫓아다니며
연구·보전 참여한 특이한 이력
국내 대표 동물원장 되다

두루미·저어새 보전의 산증인
“젊었을 적 박제도 참 많이 했다
동물 덕택에 여태 살았으니
나머지 생애는 그들을 위할 것”

두루미 보려다 똥밭에 빠지기도

‘두루루’ 운다고 해서 두루미다. 17종 가운데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3종이 매년 겨울 중국 동북부, 시베리아를 출발해 우리나라에 도착한다. 몸빛이 순백색이고 머리 위에 붉은 점이 있는 ‘단정학’ 두루미, 회색빛 도는 몸빛과 빨간 뺨이 매혹적인 ‘회학’ 재두루미, 그리고 흑회색의 작은 몸집을 지닌 ‘흑학’ 흑두루미. 모두 ‘학’이라고 불리는 우아하고 고혹적인 새이다. 두루미는 한국에서 겨울을 나고, 재두루미와 흑두루미는 한국에서 겨울을 나거나, 한국에서 잠깐 쉬었다가 일본으로 넘어가 겨울을 보낸다.

“철원 지역 조사를 해보니, 그동안 알려졌던 것보다 많은 두루미들이 오는 겁니다. 경기 연천, 파주에도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요. 그래서 전국적인 센서스를 해보자고 했어요. 2007년 두루미네트워크를 만들어 철새 수를 기록했고 정보가 많아지자 어떻게 보전할지 워크숍도 열게 되었습니다. 이동경로를 파악해 먹이주기도 하고 사람 통제도 시작했지요. 1990년대 후반 순천만에서 흑두루미가 발견됐을 때 100마리도 안 됐어요. 지금은 10배가 늘어난 1000마리 이상이 발견됩니다.”

-왜 그렇게 늘어났나요?

“전봇대를 뽑았습니다. 두루미는 어두워질 때까지 농경지에서 먹이활동을 합니다. 저녁이 다 되어 잠자러 들어가는데, 잘 안 보이는 검은 전깃줄에 걸리면 목이나 다리가 부러집니다. 비행속도가 시속 50㎞이니까 치명적이지요. 당시 순천시장이 생태관광을 위해 두루미 보전 방안을 물었는데, 저희가 전봇대를 뽑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 보전조처가 취해졌고 흑두루미가 늘어났어요.”

-4대강사업으로 낙동강이 담수화되어 순천만으로 간 영향도 있을 텐데요.

“흑두루미는 낙동강 루트를 따라 월동지인 일본으로 갑니다. 해평습지, 달성습지 등 모래밭에서 며칠 쉬었다가 바로 바다를 건너죠. 낙동강 루트가 고속도로이고, 모래밭이 휴게소인 셈이죠. 근데 4대강사업으로 모래밭이 사라져 내려앉을 곳이 없으니까, 이동경로를 서해안으로 바꾼 걸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충남 서산 천수만의 개체 수가 늘었고, 과거에 거의 보이지 않던 전북 군산에도 오고, 순천만에도 늘어나게 된 거죠.”

-한반도 두루미의 일생은 사람 없는 곳을 찾아 헤매는 길찾기일 것 같습니다. 지난해 겨울 찾은 모래밭이 일년 만에 호수가 되어 있고, 농경지에는 아파트가 솟아 있고, 갯벌은 매립됐을 테니까요. 원장님께서 쓴 책을 보니, “내게 두루미는 아름다운 고통이다”(이종렬·이기섭 <두루미>)라는 말이 있더군요.

“두루미는 누가 봐도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방정맞게 날지 않아요. 1983년 인천 연희동에서 두루미를 처음 봤지요. 분뇨를 버리던 차들이 지나다녔는데, 가까이서 보려다가 똥밭에 빠졌어요. 그곳도 매립되어 육지가 됐습니다. 생각하면 아프고 슬픕니다. 보전 방안을 제시해도 ‘사람이 먼저지, 새가 먼저냐’라는 말을 들으면 힘이 쭉 빠집니다.”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중 누가 가장 심각한 상황에 처했습니까?

“두루미입니다. 몸무게가 10㎏으로 셋 중에 가장 몸집이 커요. 무거워서 쉬지 않고 먼 거리를 날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재두루미와 흑두루미는 일본에 넘어가서 월동하지만, 두루미가 바다를 건너지 않고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과거 진도, 완도에서도 발견됐지만 지금은 거기서 보이질 않아요. (개발이 되어서 두루미가 앉을 만한) ‘고속도로 휴게소’가 없으니까 거기까지 내려갈 수 없는 거죠.”

-동물원장에 지원한 계기가 있다면요?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요. 2013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방사했고, 지리산에서 잘 살고 있는 반달곰도 여기서 나갔지요. 지금까지는 새에 집중했지만, 동물원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동물의 종 보전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와서 보니까 그거 말고 할 일이 많더군요.”

-동물복지도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2020~2030년 서울대공원 비전’에서 동물 종과 개체 수를 줄이고 좀더 넓은 공간에 살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습니다. 좁은 사육사는 리모델링하면서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우선 가축부터 전시 대상에서 배제하고 토종이나 멸종위기종 중심으로 보전하면서 증식과 야생방사를 해야겠지요.”

-동물복지와 종 보전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경우도 잦아졌습니다. 지난해 서울대공원에서 매각된 사슴 수십마리가 식용 농장에 팔려가면서 동물보호단체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가축이나 호랑이나 생명의 가치는 똑같은데 말이죠.

“(동물보호단체와 협상을 통해) 지금은 교육용 농장과 대전동물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전시됐던 동물이 바로 도축되거나 먹는 쪽으로 가선 안 되겠죠. 앞으로 개체 수를 줄일 때에도 최선의 노력을 해서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도록 하려고 합니다.”

“동물로 밥 벌어 먹고 살았으니…”

서울동물원에 맨 처음 ‘동물복지’라는 낯선 과제가 주어진 것은 2004년 시민모임 ‘하호’의 ‘슬픈 동물원’이라는 관찰보고서에 의해서였다.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과 부분적인 동물사 리모델링 등으로 일부 개선됐지만, 소유주인 서울시의 무관심과 적은 예산은 여전히 높은 벽으로 자리잡고 있다. 4년마다 바뀌는 ‘정치인’ 서울시장에게 서울대공원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표밭인 서울이 아니라 경기 과천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규모 투자를 하기에는 임기 안에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2020~2030 비전 보고서는 장기적으로 서울동물원을 국립동물원으로 전환하거나 런던, 뉴욕 동물원처럼 재단법인 밑에 둘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운영의 독립성과 안정적 재정 확보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서울동물원은 단기적으로는 서울시와 내부 구성원, 시민단체 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장기적으로는 선진동물원으로서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2001년 고교 교사를 그만두고 보전운동에 뛰어들면서 그가 생각한 게 있다.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연구 목적으로 새도 많이 잡아 죽이고 박제도 많이 했습니다. 박물학적 기준이 강하던 시절이었지요. 동물 공부 해서 박사도 되고 밥 벌어 먹고 살았으니, 나머지 생애는 그들을 위해 노력하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서울동물원이 바뀌면 전국의 동물원이 바뀐다. 제돌이가 해냈듯 대중의 의식도 바뀐다. 그의 꿈이 더 큰 무대에서 시험받을 기회가 생겼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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