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생명
지난해 11월27일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에서 수사자 ‘산다’가 한 암사자와 교미를 하고 있다. 산다는 지난해 7월 미국인 사냥꾼에 의해 죽은 사자 ‘세실’의 새끼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사자 ‘세실’ 무리의 새끼를 모니터링하며 <한겨레>에 소식을 전해온 브렌트 스타펠캄프.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영아살해의 위협 속에서도
고아가 된 새끼와 어미들은
안전하게 살고 있었다 ‘부베지’ 어슬렁거리며 노리지만
옛 동료 ‘제리코’ 있어 공격 못해
갑자기 나타난 ‘산다’ 가족 꾸렸고
올봄 세실의 손주를 기다린다 “잘 지낸다. 건강하다” -사자 세실이 죽은 뒤, 남겨진 그의 무리를 봤나? 안전하게 잘 크고 있나? “한 달에 한 번쯤 본다. 잘 지낸다. 건강하다. 지난번에는 무리 중 암사자 하나를 잡아 인공위성추적장치(GPS)가 달린 목걸이를 부착했다. ‘놉훌레’(Nobhuhle)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지피에스 목걸이 덕분에 실시간으로 세실 무리의 경로를 파악하게 되었고, 지금은 정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한다.” -세실 무리에 대해 설명해달라. 이름은 있나? “놉훌레가 우리가 이름을 붙인 유일한 사자다. 원래 세실 무리에는 어미 3마리와 새끼 7마리가 속해 있었다. 또한 제리코 프라이드와 연대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세실이 죽고 난 뒤, 세실 무리에서 새끼 한 마리가 사라졌다. 오래되지 않아 어미 한 마리가 또 사라졌고. 그들이 모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1월 그 어미 사자와 새끼가 돌아왔다! 너무 놀랐다. 바로 어제도 세실의 가족들 모두가 안전하게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사라지기도 하는가? 어디를 갔다 온 걸까? “무리에서 얼마간 사라지기도 하지만, 이처럼 오랫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것은 본 적이 없다. 우리도 놀랐다. 그동안 어디에 있었는지도 수수께끼다.” 모든 아프리카 동물이 그러하지만, 사자 무리는 특히 사냥에 취약하다. 사냥꾼들은 맨숭맨숭한 얼굴의 암컷보다 갈기를 휘날리며 카리스마를 뽐내는 수컷을 박제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게 수사자가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쓰러진다. 이웃 사자가 들어와 프라이드를 접수한다. 영아살해가 자행되고 이에 저항하는 어미가 다치거나 죽으면서 프라이드는 붕괴된다. 사실 지난해 7월 세실의 죽음 직후 두 사자의 ‘실종’도 이런 비극적 붕괴의 전조로 여겨졌다. 실제로 세실의 영토는 이웃 사자 부베지(Bubezi)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부베지는 세실 프라이드의 영토의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아빠를 잃은 새끼와 어미들은 행동반경을 좁혀야만 했다. 하지만 겁먹은 가족의 옆에는 옛 친구 ‘제리코’가 있었다. 세실이 살아 있을 적, 제리코는 세실의 연대 대상이었다. 각자 자신의 프라이드를 거느리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고 이 영토를 지배해왔다. -제리코가 다른 수컷의 침입을 막아준 건가? “그렇다. 제리코가 세실 무리를 보호했다고 보면 된다. 세실의 가족은 지금 제리코의 지배영역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놉훌레에게 인식표를 부착한 뒤에도 제리코는 항상 세실 가족에서 500m 이상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세실 프라이드의 암사자들은 새끼들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숙련된 엄마들이다. 아직도 공격당한 적이 없다.” 사자 사회에서는 인수합병과 합종연횡의 정치학이 작용한다. 그중에서도 세실은 산전수전을 겪은 ‘풍운아’였다. 원래 세실은 국립공원 동쪽 ‘백팬’(Backpan)에서 세력을 키웠으나, 다른 프라이드의 공격을 받아 변방으로 쫓겨났다. 세실은 거기서 다시 자신의 프라이드를 착실히 성장시켰다. 암사자와 새끼들이 한때 20마리에 이르렀으나, 다시 수컷 둘의 공격을 받아 쫓겨났다. 그때 만난 사자가 제리코였다. 세실과 제리코는 연대해 각각의 프라이드를 성장시켰다. 그러던 중 사냥꾼의 총탄에 세실이 숨졌고, 고아가 된 새끼와 암사자들 그리고 제리코 프라이드만 남은 것이었다. 사라졌다 돌아온 ‘산다’ -세실의 새끼 중 하나가 교미하는 장면이 포착됐다며? “‘산다’라고 불리는 다섯 살 수사자다. 지금의 세실 가족은 아니고, 세실이 백팬에 있었을 적 교미해 얻은 수컷이다. 산다는 세 살 때 백팬 프라이드에서 떨어져나갔고, 그 뒤로 우리 연구팀은 이 새끼사자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가 커서 돌아와 백팬 암컷 세 마리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종의 근친번식이다. 대부분 피하긴 하지만, 야생사자는 작은 수준의 근친번식 정도는 유전적 결함 없이 잘 버틴다.” -사자 모니터링은 어떻게 하나? “매일 아침 눈 뜨고 처음 하는 게 휴대전화에 뜨는 사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일이다. 많은 시간을 트럭에서 사자를 관찰하면서 지낸다. 어떤 걸 먹고,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하는지 지켜본다. 이런 행동은 모두 기록되어 장기 생태조사의 자료로 활용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지피에스 목걸이를 다는 일이다. 마취제를 사자 몸에 명중시켜야 달 수 있는데, 나는 운 좋게도 여기서만 88마리를 성공했다.” -사자가 인간을 공격하지 않나? “국립공원 경계 밖으로 나가면 긴장한다. 만약 소떼 등 가축이 있는 곳이면, 근처 직원에게 메시지를 띄우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소떼를 격리시키는 한편 때에 따라서는 사드럼과 부부젤라(아프리카 나팔)를 이용해 사자를 안전한 곳으로 유인한다. 다른 사자들의 문제도 없는지 확인한다. 이때 기회가 되면 사자에게 지피에스 목걸이를 부착한다. 나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실의 죽음 이후 짐바브웨는 무엇이 변했나? “크게 변하진 않았다. 다만 사냥산업을 어떻게든 교통정리 해야 한다는 자각이 확산된 건 분명하다. 사냥 가이드 시오 브롱코스트의 재판이 진행중이다.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세실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잘될 거다. 황게국립공원은 세 곳의 ‘카방고 잠베지(KAZA) 트랜스프런티어 야생보전구역’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사자와 함께한 역사가 있고 사자를 보전하는 문화가 있다. 국제사회가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니, 사자 사냥이 사라질 거라고 느낀다. 물론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현존하는 사자 서식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연간 13억달러가 필요하다. 사자 사냥에 의존하지 않고 야생을 보전하려면, 탄소상쇄 프로그램이나 사파리 관광 등 지속가능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아프리카 국가들은 사자사냥 쿼터를 판 돈으로 공원 관리와 지역개발에 투자한다.) 사자를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하자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사자는 생태·경제·문화적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종이다. 사자를 보전하는 것은 그들의 서식지와 사냥감, 즉 자연을 보전하는 것이다. 이 전략이야말로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경로 중 하나라고 믿는다.” 산다의 새끼가 태어난다면 세실의 손주가 되는 셈이다. 사자의 임신기간이 넉달이니 3월말께다. 세실의 죽음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웠고 그래서 미래가 과거보다 나아진다면 세실의 자손들은 평화롭게 번성할 것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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