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서울시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 시사회 및 토크콘서트에서 참석자들이 동물원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성호 감독,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 김예나 국립생태원 전문위원, 남종영 <한겨레> 기자.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토요판] 생명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 토크콘서트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 토크콘서트
▶ 오랑우탄, 침팬지, 고릴라, 돌고래, 코끼리, 유럽까치…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다르지만(비인간), 인간처럼 자의식, 감정, 성격 등의 특성(인격체)을 지닌 ‘비인간인격체’로 여겨지는 동물들이다. 동물의 자의식을 탐구하기 위해 서울대공원에서 벌어진 ‘오랑우탄 거울실험’을 기록한 단편 다큐멘터리가 완성됐다. 시사회에서 작품을 본 참석자들은 인간-동물의 관계와 동물원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지난해 11~12월 <한겨레>와 국립생태원, 서울대공원이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진행한 ‘오랑우탄 거울실험’에 대한 영상물이 완성됐다. <한겨레>는 지난달 25일 저녁 7시 서울시 양화로 미디어카페 후에서 후원자 등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를 열고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는 제작팀과 연구원, 사육사 등이 오랑우탄 보라, 보석, 보람 등 세 오랑우탄에 거울실험을 하는 과정을 비추며 인간과 동물이 맺는 관계를 성찰하는 17분짜리 단편 다큐멘터리다. 제작팀은 오랑우탄들이 자꾸 거울을 찢고 훼손하는 바람에 동물들과 두뇌싸움을 벌여야 했다. 이러한 소동 끝에 결국 보람이 거울 앞에서 자신의 생식기와 항문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모자를 만들어 쓰는 자아인식 행동을 관찰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과학적으로 설계된 거울실험을 통해 동물의 자의식을 확인했다.
◇관련기사
▶보람, 패션쇼를 하다
▶울루와 우탄은 형제…지금은 운명공동체 시사회 직후 열린 토크콘서트에서는 거울실험의 설계·분석을 담당한 국립생태원의 김예나 전문위원, 모니터링을 담당한 동물자유연대의 조희경 대표, 다큐 제작을 진두지휘한 박성호 감독이 나와 남종영 기자의 사회로 실험 과정의 뒷얘기를 나누고 동물원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의 질문이 이어지면서 행사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두 시간가량 진행됐다. 이날 토크콘서트에 나온 이야기를 간추렸다.
사회 보라, 보석, 보람이 협조를 하지 않아서, 거울실험을 진행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웃음) 가장 골칫덩어리가 누구였나요?
박성호 원래 보라가 가장 영리하다면서 거울에 가장 빠른 반응을 나타낼 거라고 사육사들이 귀띔했어요. 하지만 보라는 거울(반사필름 재질)을 붙이자마자 계속 떼어낸, 가장 우리를 괴롭힌 오랑우탄이었지요. 그래서 아예 못 떼도록 아주 꼼꼼히 붙였었어요. 그러니까 이번에 보라가 거울에 관심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죠. 자아인식 행동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안 뗐으니 성공이다’ 생각하고 밖에 갔다 왔는데, 아뿔싸, 거울이 찢겨 없어졌어요.(웃음) 농락당했죠.
사회 오랑우탄은 우리가 무언가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협조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었죠. 영장류 행동학자인 김예나 전문위원은 그간 실험을 통해 많은 경험을 했을 텐데,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거나 동물에게 농락당한 적은 없었어요?
김예나 가끔씩 ‘얘네들이 나를 이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실험을 할 땐 욕심을 버려야 해요. 오랑우탄이 사람을 잘 기억하기도 하고요. 보라가 특히 침을 자주 뱉는데, 저도 엄청 맞았어요. 새로운 사람이 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뱉곤 하는데, 한참 지난 뒤 저와 통하는 느낌이 들고 그때부터는 안 뱉더군요. 처음 본 사람한테는 여전히 뱉어요. 오랑우탄이 새로운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고 (인간의) 서열 관계도 잘 안다는 걸 차차 느낄 수 있었죠.
사회 이번 실험에서 10살인 보람과 달리 이제 막 어른이 되어가는 13살 보라, 보석에게서는 자아인식 행동이 뚜렷하게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김예나 오랑우탄은 클수록 호기심이나 놀이행동 빈도가 확 떨어져요. (오랑우탄은 어렸을 적 어미와 함께 있다가 독립해서는 거의 홀로 다니는 숲의 단독자다.) 사회적으로 만나는 다른 개체에도 관심이 떨어지게 되는데, 이런 성향이 (보람에 비해 나이가 많은) 거울 속 이미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보라, 보석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어요. 또한 둘이 항상 머무르는 내부 환경에는 유리벽이 있어서 자기 모습이 어렴풋이나마 비치거든요. 거울 이미지가 이미 익숙했던 나머지 새로 부착한 거울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수 있고요.
“얘네들이 날 이용하고 있네”
계속되는 오랑우탄의 거울 훼손
제작진·연구원은 암초를 넘어
‘비인간인격체 프로젝트’ 완성 동물도 자의식을 가지며
고통 벗어나려는 욕구 있어
야생 포획·동물원 번식 제한해야
동물원의 미래가 보인다 인공포육의 악순환 사회 최근 세계 최대의 돌고래 전시공연 업체인 미국 시월드가 범고래 번식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서도 2013년 제돌이를 시작으로 5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고향에 돌아갔는데요. 그러면 왜 사자와 호랑이는 안 돌려보내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희경 다 풀어주고 싶죠.(웃음) 다만 멧돼지 한 마리가 동네 내려와도 총으로 쏴죽이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감당할까요? 동물원에 사는 상당수가 토종 동물이 아니고, 토종 동물이라 해도 풀어줄 야생도 없습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인공포육(사람 손에 어린 동물을 기르는 것) 개체는 야생 적응도 힘들고요. 정말 동물을 위한다면 제돌이처럼 야생에서 잡혀온 동물은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그다음엔 동물원에서 동물이 인위적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야 하고, 동물원은 (멸종위기에 처한) 극소수의 동물에 대해서만 종 보전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청중 질문 동물원 동물도 본능이 있어서 자연에서 살 수 있을 텐데, 야생방사가 완전히 불가능할까요? 김예나 동물원의 오랑우탄은 자식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해요. 그래서 인공포육을 하게 되고, 그렇게 커서 어미가 된 동물은 다시 자식을 낳기만 하고 기르는 방법을 모르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본능적으로 성에 대한 욕구는 있는데, 어떻게 암컷에 접근해서 교미를 하고 자식을 기르는지 알지 못하는 거예요. 다른 개체들로부터 학습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런 동물들을 무작정 야생방사 한다고 성공할까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오랑우탄 재활센터가 많이 있지만, 많은 경우 야생방사에 실패해요. 우선 어떤 개체를 야생으로 보낼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야생에서 어떤 개체도 잡아오면 안 된다는 거죠. 사회 김예나 연구원은 어렸을 적 동물원 사육사가 꿈이었다면서요? 김예나 대학을 동물생산환경학과로 갔지요. 동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인 줄 알았는데, 이거 웬걸, 어떻게 하면 최적의 마블링을 만드는지를 가르치더라고요. 서울대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우연히 코끼리 행동을 관찰해보라고 해서 그 뒤로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동물의 환경을 바꿔주기 위해서는 더 잘 알아야 하니까요. 동물 차별 근거 되어선 안된다 사회 미국에서는 실험실 침팬지의 인신구속을 중단하라는 소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인간인격체로서 신체의 자유가 있다는 건데요. 동물도 법적 인격체가 될 수 있을까요? 조희경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표현합니다. 비인간인격체라고 굳이 부르지 않더라도, 인간도 그러하다면(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면) 동물도 동일하게 대우를 해야겠지요. 동물을 이용하는 습관이 뼛속 깊이 있기 때문에 갈 길이 멀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지요. 청중 질문 거울실험이 마치 똑똑한 동물에게만 인격체를 부여하는 느낌을 받아요. 동물 지능에 따라 차별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김예나 저도 그런 우려를 갖고 있어요. 무엇보다 ‘동물이 무엇이다’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간이 인간이 사는 환경에 맞게 적응, 진화한 것처럼, 동물도 숲이나 사막에 가장 알맞게 적응, 진화한 겁니다. 인간이 가진 지능을 잣대 삼아 ‘거울실험 통과했으니 동물원에서 풀어줘도 돼’ 이렇게만 귀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실험과 연구가 늘어나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침팬지에 대한 침습적 연구(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실험)가 금지되는 추세예요. 사회 다른 분들에 비해 박성호 감독님은 동물 관련 분야에서 일하시지 않았는데, 이번 실험을 통해 바뀐 게 있다면? 박성호 처음에는 오랑우탄을 무시했는데 나중에는 제가 농락당했다고 느꼈지요. 보라가 거울을 다 찢어놓았을 때, ‘나에게 이런 짓 하지 마’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사실 자아인식을 하느냐 마느냐는 우리가 정해놓은 틀에 동물들을 맞추는 거잖아요. 동물은 그들 나름대로 우리와 다른 사회를 살고 있잖아요. 우리 틀에 맞출 게 아니라 우리 틀을 열고 다가가야 됩니다. 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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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우탄 보라.
계속되는 오랑우탄의 거울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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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벗어나려는 욕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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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미래가 보인다 인공포육의 악순환 사회 최근 세계 최대의 돌고래 전시공연 업체인 미국 시월드가 범고래 번식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국내에서도 2013년 제돌이를 시작으로 5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고향에 돌아갔는데요. 그러면 왜 사자와 호랑이는 안 돌려보내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희경 다 풀어주고 싶죠.(웃음) 다만 멧돼지 한 마리가 동네 내려와도 총으로 쏴죽이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감당할까요? 동물원에 사는 상당수가 토종 동물이 아니고, 토종 동물이라 해도 풀어줄 야생도 없습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인공포육(사람 손에 어린 동물을 기르는 것) 개체는 야생 적응도 힘들고요. 정말 동물을 위한다면 제돌이처럼 야생에서 잡혀온 동물은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그다음엔 동물원에서 동물이 인위적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야 하고, 동물원은 (멸종위기에 처한) 극소수의 동물에 대해서만 종 보전 역할을 해야 합니다. 청중 질문 동물원 동물도 본능이 있어서 자연에서 살 수 있을 텐데, 야생방사가 완전히 불가능할까요? 김예나 동물원의 오랑우탄은 자식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해요. 그래서 인공포육을 하게 되고, 그렇게 커서 어미가 된 동물은 다시 자식을 낳기만 하고 기르는 방법을 모르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이를테면 본능적으로 성에 대한 욕구는 있는데, 어떻게 암컷에 접근해서 교미를 하고 자식을 기르는지 알지 못하는 거예요. 다른 개체들로부터 학습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런 동물들을 무작정 야생방사 한다고 성공할까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오랑우탄 재활센터가 많이 있지만, 많은 경우 야생방사에 실패해요. 우선 어떤 개체를 야생으로 보낼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야생에서 어떤 개체도 잡아오면 안 된다는 거죠. 사회 김예나 연구원은 어렸을 적 동물원 사육사가 꿈이었다면서요? 김예나 대학을 동물생산환경학과로 갔지요. 동물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인 줄 알았는데, 이거 웬걸, 어떻게 하면 최적의 마블링을 만드는지를 가르치더라고요. 서울대공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우연히 코끼리 행동을 관찰해보라고 해서 그 뒤로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동물의 환경을 바꿔주기 위해서는 더 잘 알아야 하니까요. 동물 차별 근거 되어선 안된다 사회 미국에서는 실험실 침팬지의 인신구속을 중단하라는 소송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인간인격체로서 신체의 자유가 있다는 건데요. 동물도 법적 인격체가 될 수 있을까요? 조희경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고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표현합니다. 비인간인격체라고 굳이 부르지 않더라도, 인간도 그러하다면(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다면) 동물도 동일하게 대우를 해야겠지요. 동물을 이용하는 습관이 뼛속 깊이 있기 때문에 갈 길이 멀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지요. 청중 질문 거울실험이 마치 똑똑한 동물에게만 인격체를 부여하는 느낌을 받아요. 동물 지능에 따라 차별을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김예나 저도 그런 우려를 갖고 있어요. 무엇보다 ‘동물이 무엇이다’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간이 인간이 사는 환경에 맞게 적응, 진화한 것처럼, 동물도 숲이나 사막에 가장 알맞게 적응, 진화한 겁니다. 인간이 가진 지능을 잣대 삼아 ‘거울실험 통과했으니 동물원에서 풀어줘도 돼’ 이렇게만 귀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실험과 연구가 늘어나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침팬지에 대한 침습적 연구(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실험)가 금지되는 추세예요. 사회 다른 분들에 비해 박성호 감독님은 동물 관련 분야에서 일하시지 않았는데, 이번 실험을 통해 바뀐 게 있다면? 박성호 처음에는 오랑우탄을 무시했는데 나중에는 제가 농락당했다고 느꼈지요. 보라가 거울을 다 찢어놓았을 때, ‘나에게 이런 짓 하지 마’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사실 자아인식을 하느냐 마느냐는 우리가 정해놓은 틀에 동물들을 맞추는 거잖아요. 동물은 그들 나름대로 우리와 다른 사회를 살고 있잖아요. 우리 틀에 맞출 게 아니라 우리 틀을 열고 다가가야 됩니다. 정리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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