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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5백년 마을 한복판에 고속도로 나들목?

등록 2005-10-25 18:42수정 2005-10-26 17:46

아신리 권혁인 이장(오른쪽)과 임영환 고속도로대책위원장이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로 분단될 처지에 놓인 마을 일부를 가리키고 있다. 고속도로는 사진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대각선 방향으로 지나가도록 계획돼 있어, 공사가 끝나면 대각선을 중심으로 왼쪽에 사는 주민들과 오른쪽에 사는 주민들은 소통이 어렵게 된다.
아신리 권혁인 이장(오른쪽)과 임영환 고속도로대책위원장이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로 분단될 처지에 놓인 마을 일부를 가리키고 있다. 고속도로는 사진의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대각선 방향으로 지나가도록 계획돼 있어, 공사가 끝나면 대각선을 중심으로 왼쪽에 사는 주민들과 오른쪽에 사는 주민들은 소통이 어렵게 된다.
180가구 가운데 집40여채가 헐리고
마을이 넷으로 쫘~악 쪼개질 예정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빛 들녘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절로 마음이 여유로와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추수를 기다리는 마을 한가운데 논들을 바라보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180여 가구 주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작은 골짜기 양 옆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마을을 네 쪽으로 갈라놓는 공사가 지난달 막 시작됐기 때문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양평간 제3공구 공사계획을 보면 아신리 마을 한 가운데에는 나들목이 설치될 예정이다. 도로 본선과 그것에 연결되는 진출입 도로는 현재 땅바닥 보다 20m 가량 성토한 지반 위에 깔리게 된다. 이는 마을 집 40여채가 헐리고, 논밭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는 앞 동네 뒷 동네가 거대한 장벽으로 갈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농사짓던 농토가 도로에 수용되는 일부 주민들은 설사 주택이 철거되지 않는다고 해도 몇 푼 보상비를 들고 다른 일을 찾아 떠날 수 밖에 없게 된다. “500년 이상 대대로 정을 나누며 살아온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게 됐다”는 주민들의 말이 큰 과장이 아닌 셈이다.

주민들 “대신 터널 뚫자”

신작로의 역사가 한 세기를 넘어서고, 고속도로가 처음 놓인지 30여년을 지나오는 동안 도로 건설로 갈라지거나 사라진 마을은 한 둘이 아니다. 그런 마을 주민들은 결국 ‘나라에서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운명을 받아들였다. 아신리 주민들은 지금 그런 운명을 거부하는 싸움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제는 경제성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 주민의 삶도 배려하는 도로를 지어야할 때가 됐고, 그런 일이 아신리에서 이뤄져서 안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주민들이 무턱대고 도로공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을 조각내는 대신 마을 앞 산 밑으로 터널을 뚫고 지나가라는 것이다. 이런 요구는 마을의 밭고랑이나 논두렁에서 나온 설익은 생각에 바탕한 것이 아니다. 3년전 마을이 도로로 토막날 처지가 됐다는 것을 처음 알고 당황한 주민들은 도로들 앞산 너머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요구를 내놨다. 그것은 산너머 다른 마을 사람들의 또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조차 그런 주장에 대해서는 손을 내저었다. 자신들의 주장에 좀더 설득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주민들은 돈을 모아 서울대 공학연구소에 용역을 맡겼다. 터널화는 그렇게 다듬어진 대안이었다.

5백년 마을 한복판에 고속도로 나들목?
5백년 마을 한복판에 고속도로 나들목?

대안은 마을 앞을 지나가는 도로 본선 가운데 530m 가량과 그것에 연결되는 진출입로 일부를 터널화해서 마을을 살리자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렇게 하면 도로가 지상으로 지나가는데 따른 건물 철거와 토지 수용 등에 따르는 보상비가 안들어가고, 노선의 길이도 단축돼 공사비도 60억원이나 절감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아신리 주민들의 요구에 건설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는 지난달 마을 입구에서 기존 계획대로 공사를 착공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도로공사 건설계획처 관계자는 “진출입로가 지하에 들어가면 접속 부분에서 운전자들이 시계가 확보되지 않아 사고위험이 높아 국내에서 나들목의 지하화는 아직 적용된 사례가 없다”면서 “공사비도 보상비가 일부 절감되는 것을 감안해도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사업을 하다가 보면 일부 사적인 피해는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아신리 주민들의 민원은 반복민원으로 분류해 종결했다”고 밝혀 주민들의 민원제기에 개의치 않고 공사를 계획대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서울대 “터널화 어려운일 아냐”

건교부 도로국 관계자도 “주민들이 터널화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 도로에서 나는 소음을 줄이겠다는 것이 주목적인데, 소음방지는 진출입로의 지하화에 따른 위험을 무릅써야 할 정도로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면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영환 아신리 고속도로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이 애초에 모두 터널화를 요구했던 주장을 일부 양보해, 진출입로 일부를 지상에 설치함으로써 시공상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공사비도 절감하는 새로운 대안을 제출했으나, 도로공사와 건교부가 이전의 요구와 동일한 반복민원으로 분류해 검토조차 하지 않고 과거의 답변만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 위원장은 특히 건교부와 도로공사쪽의 터널화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진출입로의 터널화는 외국에서 오래 전부터 안전하게 적용돼 왔고, 우리나라의 도로 설계와 시공 수준을 볼 때 기술적으로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서울대 공학연구소의 결론이었다”며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건교부나 도로공사가 먼저 나서서 적극 도입했어야 할 공법인데도 관료주의적 관행을 벗어나지 못해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공 “사고위험 높아” 퇴짜

주민들은 공사구간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해준 환경부에 대해서도 원망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인접한 2공구 공사구간에서는 수변구역을 보호하기 위해 730억원이나 공사비가 증액되는데도 노선을 변경하게 하고는 아신리 주민들의 정주권 보호는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 환경평가과 관계자는 “2002년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해주던 당시에는 아신리에서 고속도로 공사와 관련해 별다른 민원이 제기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임 위원장은 “사업설명회를 마을 이장도 모르게 했으니 주민들이 공사 내용을 알 수가 있었겠느냐”며 “사업 추진이 적법한 주민의견 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이뤄지는 등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만큼 공사중지 가처분신청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마을을 지키자는 것이 주민들의 각오”라고 말했다. ?6양평/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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