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앞줄 셋째)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쪽에 보이는 제품은 한 위원이 가져다놓은 여러 회사의 가습기살균제 제품이다. 왼쪽부터 이창재 법무부 차관,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 고 차관, 이영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유공(현 에스케이케미칼)이 1994년 개발, 시판한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가 탄생한 지 22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지난 15일 현재 4261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853명이다. 정부가 공식 인정한 중증 폐손상 질환자(1단계와 2단계)만 따져도 258명이며 이 중 1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기업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이 낳은 대참사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등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일부 제조사만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했다.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와 그 원료 물질을 개발한 에스케이케미칼과 그 과정에서 인허가 업무를 맡은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등은 검찰의 칼날을 피해가는 모양새다.
검찰은 법적으로 정부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태도를 고수하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7월 초 예정했던 수사 결과 발표를 미루고 “가습기 살균제 제조부터 최근 피해 원인 규명까지 정부의 역할을 규명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여전히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선을 긋는다. 검찰 관계자는 “처벌보다는 유해화학물질 관리 실태와 법과 제도상 허점을 파악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29~30일과 9월2일 국회 가습기 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회 가습기 특위)에서 열리는 청문회에서도 정부의 과실과 책임이 더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는 가습기 살균제의 탄생부터 소멸까지, 그 발자취를 되짚어 옥시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과 송기호 변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22년의 기록>(월간 함께사는길, 2016),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 사건 백서>(질병관리본부, 2014) 등의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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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가습기 살균제의 탄생
<매일경제>는 1994년 11월16일치에 “가습기용 살균제 선봬, 유공 18억 들여 개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는다. 기사 내용을 보면, “살균력을 실험한 결과 하루가 지났을 때는 100%의 살균력을 나타냈다. 독성 실험 결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돼 있다.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의 탄생이다.
지금껏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됐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독성 화학물질은 크게 세 종류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라 불리는 구아니딘계 중합체와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으로 불리는 이소티아졸리논계 화학물질이다. 가습기메이트에는 미국에서 개발된 CMIT와 MIT가 포함돼 있었다. 미국 환경청 농약으로 등록된 물질이었지만 에스케이케미칼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인체 무해”라고 주장했다. 반면 CMIT와 MIT를 최초 개발한 미국 롬앤하스사는 “흡입하면 치명적일 수 있으니 증기를 절대 들이마시지 마시오”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1998년 미국 환경청은 이 물질을 농약으로 분류하고 2등급 흡입독성물질(휘발성과 부식성, 실내에서 흡연 우려)로 지정했다.
■ 환경부, 유해성 심사 면제 그러나 환경부는 CMIT와 MIT가 1991년 제정된 유해화학물 관리법 시행 이전에 제조·유통되었기 때문에 이 두 물질을 기존화학물질로 분류하고 유해성 심사를 미뤘다. 유해성이란 화학물질의 독성이 건강이나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고유의 특성을 말한다.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기존화학물질(3만6000여종)은 업체가 아니라 정부가 유해성을 심사해 규제하도록 하고 있었다. CMIT와 MIT는 정부의 심사 우선순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2011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사회적 주목을 받을 때까지 아무런 심사도 규제도 없었다. 마침내 환경부가 CMIT와 MIT를 유독물로 지정·고시한 것은 2012년 9월이다. 2014년 현재 기존화학물질 가운데 정부가 유해성을 심사한 비율은 19%에 그친다.
가습기메이트는 겉포장에 “가정용 미생물 번식 억제제로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습니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 물에 직접 넣어 섞어 주십시오”라고 적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에스케이케미칼은 “서울대 수의과학연구소에 의뢰해 94년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가습기 살균제 흡입 독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던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개발 이후 20년 이상 시간이 지나 최종 보고서 등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실험을 한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 산업부 17년간 안전 점검 없어 가습기 살균제의 살균 독성물질은 분자량이 커서 대부분 고체 상태로 있지만 물에 잘 녹는다. 이 물질을 물에 섞어 가습기로 분무시키면, 물방울은 증발하지만 같이 녹아 있던 살균제는 응결하면서 아주 미세한 입자(분진)가 된다. 이 작은 분진은 사람이 숨을 쉴 때 폐 속 깊숙한 부위까지 빨려들어간다. 기관지가 끝나고 폐포가 시작되는 부위까지 들어와 침착하며 기관지 세포와 폐 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독성 탓에 주위 세포가 손상되고 심각한 염증이 생기다가 기관지가 막히고 폐가 굳어져 호흡이 곤란해진다.
가습기 살균제는 ‘새로운 공산품’인데다 위험을 내재하고 있어 안전 기준이 필요했다. 당시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을 보면, 유해물질 함유 화학제품은 ‘사후안전검사 대상 공산품’으로 지정해 안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부는 “가습기 살균제 대상으로 안전모니터를 하거나 안전성을 조사한 바가 없다”고 밝혔다. 국립공업기술원(현 산업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가습기 살균제는 관리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안전 점검도 없이 17년 동안 시장에 유통되도록 방치한 것이다. 2011년 11월11일에야 보건복지부가 동물실험 결과,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서 독성이 확인됐다며 사용·판매 중단을 권고했다.
17년간 가습기메이트 겉포장에서는, 정부의 안전관리 기준에 따라 만들어진 제품인 것처럼 ‘품공법에 의한 제품 표시’라고 명시돼 있었다.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허위광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소시효 만료(8월 말)가 다가오는데도 심의를 미루고 있다.
■ 질병관리본부, 추가 연구 안 해 에스케이케미칼이 작성한 2011년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보면, CMIT와 MIT는 흡입독성이 있는 유독물로 나와 있다. 그런데도 에스케이케미칼은 이 유독물로 가습기메이트를 계속 제조하고 애경과 이마트를 통해 판매했다. 중증 폐손상 질환으로 인정받은 피해자 가운데 가습기메이트 사용자가 옥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상황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에스케이케미칼과 애경, 이마트를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 빌미는 질병관리본부가 제공했다. 2011년에 수행한 ‘원인미상 폐손상 위험요인에 대한 흡입시험’에서 CMIT와 MIT를 실험한 쥐는 폐섬유화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13주차까지 살아남았다. 당시 연구팀은 역학조사할 시간이 촉박해 “CMIT와 MIT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결론내렸다. 연구를 수행한 안전성평가연구원 흡입독성연구센터장인 이규형 박사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22년의 기록>에서 “당시 실험조건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러 농도에서, 여러 장기에의 영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연구 결과를) CMIT와 MIT 성분 제품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추가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은 CMIT와 MIT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가 없다며 가습기메이트를 수사하지 않는다.
■ 1996년 가습기 유독물의 탄생
1996년 12월30일 에스케이케미칼은 ‘화학물질 제조 신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당시 법은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하려면 환경부의 유해성 심사를 받아야 했다. 에스케이케미칼이 신고한 상품(GUS-07)은 PHMG가 95% 이상, 염화나트륨이 4% 이하인 신규화학물질이었다. 사용 용도는 “항균카펫 등에 첨가하는 항균제”라고 밝혔다. “사용시 주의사항: 작업자에게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분히 환기할 것, 취급시 주의사항: 작업장 내에서 음식물을 먹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사고시 응급조치 사항: 흡연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 증상이 계속되면 의사의 진료를 받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 환경부, 자료 없이 “유독물 아님” 판정 신규화학물질을 신고할 때는 ‘독성 자료’를 첨부하도록 돼 있었지만, 에스케이케미칼은 잘 휘발하지 않는 고분자 화합물이라며 제출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난 1997년 2월 환경부는 유해성 심사 결과, 유독물이 아니라고 에스케이케미칼에 통보했다. 3월15일 관보에는 “유독물에 해당 안 됨”이라고 공고했다.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유독물’은 물론, 유해성이 우려되는 ‘관찰물질’도 아니라는 판단이다. 환경부가 ‘독성 자료’도 없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2003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1983년 유럽 기업이 농업용 살균제로 개발한 PGH를 환경부는 유독물이 아니라고 고시했다. 당시 수입업자가 제출한 신규물질 수입 신청서에는 배출 경로로 “제품에 첨가(스프레이 또는 에어로졸 제품 등/항균효과)”라고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흡입독성 시험 결과를 요청하지도 않고 유해성이 없다고 결론냈다.
오아무개씨가 대표로 있었던 1인 제조사는 2009년 PGH를 원료로 ‘세퓨가습기살균제’를 제조해 판매했다. PGH는 PHMG보다 독성이 높아 40분의 1 농도로 사용해야 하는데 오씨는 PGH를 4배 농도로 사용했다. 독성이 160배나 높은 탓에 세퓨는 가습기 살균제 제품 중 사망률이 가장 높다.
■ 고용부, 엉뚱한 독성 공표 신규화학물질을 제조하려면 고용부에도 유해성 조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화학물질에 의한 근로자의 건강장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에스케이케미칼은 1997년 2월 보고서를 제출했고 고용부는 PHMG가 경구 독성과 눈 자극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고용부는 PHMG가 아니라 “YSB-WT”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6월 관보에 공표했다. 고용부는 “에스케이케미칼이 정보보호를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보보호 신청서는 보존기한이 초과돼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에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정보보호 제도가 없었다. 고용부가 임의로 만든 고시에 정보보호가 있지만 그 기간은 3년이었다. 그럼에도 고용부는 영구적으로 PHMG 독성 정보를 보호한 것이다.
그사이 PHMG의 독성 실험은 계속됐다. 1997년 8월 영국 헌팅턴 라이프 사이언스는 물벼룩의 절반이 1.0㎎/ℓ 농도(PHMG 95%)에서 48시간 안에 독성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2002년엔 한국화학연구원이 0.23㎎/ℓ 농도(PHMG 95.5%)로 96시간 노출하면 어류 절반이 죽는다는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시행령이 정한 ‘유독물’에 해당하는 수치였지만 PHMG는 국내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유통됐다.
■ 환경부, 용도 변경 재심사 없어 2001년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인 ‘옥시싹싹’의 원료물질을 ‘프리벤톨-R80’에서 PHMG로 바꿨다. 기존 제품을 사용하면 이물질이 남는다는 소비자 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PHMG로 가습기 세균제의 원료물질을 변경하면서 옥시는 흡입독성 실험을 하지 않았다. 환경부가 유독물이 아니라고 고시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는 PHMG를 “항균카펫 등에 첨가하는 항균제”로 “유독물이 아니다”라고 인정했을 뿐이다. 실내에서 흡입할 수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경부는 화학물질의 용도를 변경할 때 유해성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며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옥시에 이어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코스트코도 PHMG를 원료로 한 가습기 살균제를 잇따라 내놓았다. 2011년 판매가 중단될 때까지 10년간 400만개가 넘는 제품이 판매됐다.
반면 오스트레일리아 보건부 국립화학물질 평가국(NICNAS)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산업화학물질신고평가법에 따라, 2003년 3월 에스케이글로벌이 신청한 PHMG 유해성 심사 결과를 인터넷에 공고했다. PHMG는 “눈에 심각한 피해를 주며 흡입독성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데다 입자가 작아 흡입하면 위험하다”는 내용이었다. 일본도 2005년 3월 PHMG를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는 화학물질인 ‘지정화학물질’로 지정했다.
■ 산업부, 안전마크 남발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위해성을 경고하기는커녕 안전마크를 남발했다. 산업부가 지정한 안전검사 기관인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은 2007년 8월 PHMG를 원료로 생산된 코스트코의 ‘가습기클린업’에 국가통합인증(KC)마크를 붙여줬다. 세정제 안전기준을 적용해 제품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도 내용물이 새지 않는지, 염산·황산 등 6종을 포함했는지만 확인했다. PHMG에 대한 유해성 검사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소비자는 안전마크 탓에 가습기 살균제가 국가의 안전을 확인받은 제품으로 오해했다.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마크는 모두 7차례 부여됐는데, 질병관리본부가 폐 손상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이던 2011년 6~8월에도 2개나 붙여졌다. PHMG가 비로소 유독물로 지정된 것은 2012년 9월이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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