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국립공원 설천봉 정상 부근의 무주리조트 관광용 곤돌라 정류장과 스키장 슬로프 주변에 옮겨심어졌다가 말라 죽은 채 서 있는 희귀목들. 위쪽 사진 두 장은 구상나무, 아래쪽 사진 두 장은 주목이다.
환경부 ‘이식을 통한 보존’ 대책 “면피성 면죄부” 전락
“사업지역에 있는 보호대상 식물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인근 지역으로 이식하는 등 별도의 보호대책을 수립해 시행할 것.”
표현은 매번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환경부가 환경 훼손이 뒤따르는 개발사업들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에서 거의 빼놓지 않고 제시하는 협의조건이다.
‘이식을 통한 보존’이라는 이 협의조건은 개발사업 지역에서 멸종위기종 식물과 같은 걸림돌이 발견됐을 때 이를 치워주는 ‘주문’이 돼 왔다. 이 주문의 신통력은 “희귀식물 훼손을 내세워 사업을 반대하다가도 ‘이식해 보존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늘 밀리게 된다”는 한 환경단체 관계자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주문을 외는 것은 또한 환경부에게는 생태계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에 손 놓고 있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주문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는 ‘이식’까지 였다. 이것은 ‘이식을 통한 보존’이 환경영향평가 협의조건으로 제시됐던 백두대간의 개발사업 현장 4곳에 대한 녹색연합의 조사에서 확인됐다. ‘보존’까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할 만한 곳은 한 곳도 없었던 것이다.
지난달 27일 녹색연합이 이 조사 결과를 담은 <백두대간 환경훼손 및 야생식물 서식실태 조사보고서>에서 ‘이식을 통한 보존’이 실패한 대표적 현장의 하나로 꼽은 덕유산 국립공원 구역안 설천봉을 찾았다. 주목과 구상나무 등을 이식하는 조건으로 무주리조트 스키장이 건설된 곳이었다. 주목과 구상나무는 고산지대에만 자생하는 희귀목이다. 특히 설천봉의 구상나무들은, 덕유산이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의 북방한계선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보호돼야 했다. 이렇게 해서 1994년과 1995년 사이 구상나무 113그루, 주목 253그루의 이식이 이뤄졌다.
‘주목’도 253그루중 111그루 말라죽어…
적상산 무주 양수 발전소, 점봉산 양양 양수발전소…
자병산 시멘트광산도… “사정은 마찬가지” 관광용 곤돌라에서 내려 돌아본 설천봉 주변은 주목과 구상나무들의 묘지가 돼 있었다. 해발 1480m까지 치고 올라온 스키장 슬로프와 부대시설이 들어설 터에 자라다 주변으로 옮겨진 나무들 대부분은 죽은 지 한참은 지난 듯 했다. 수령이 수 백년은 족히 됐을 법한 거목들이 연한 부분은 모두 썩어 떨어져 나가고 마치 뼈와 같이 단단한 부분만 남아 조형물처럼 곳곳에 서 있었다. 이식한 나무들 가운데 구상나무는 100%, 주목은 44%가 말라 죽은 상태였다. 이 참혹한 실패는 사실 10여년 전에 이미 예상됐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언론 보도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옮겨심으면 절반도 살리기 힘들다”며 이식에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개발업체인 ㈜쌍방울개발쪽은 “90%는 살려낼 수 있다”고 장담했고, 이 장담을 굳게 믿었던지 관계 기관들은 이식을 허용하고는 이식작업에 대한 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옮겨심은 구상나무 113그루 가운데 어떻게 단 한 그루도 살지 못했을까? 2002년에 ㈜대한전선으로 주인이 바뀐 무주리조트 관계자는 “이식작업이 절차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여러 해를 두고 조금씩 큰 뿌리를 잘라 잔뿌리가 나오기를 기다려가며 해야 하는데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일정에 쫓겨 단기간에 이식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해도 단 한 그루도 살아남지 못한 것은 야생 구상나무 자체가 이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상나무를 이식하기로 한 결정부터가 잘못됐음을 시사하는 셈이다.
덕유산국립공원 적상산 일대에 들어선 무주 양수발전소, 남한 최고의 원시림을 자랑하는 점봉산에 들어서고 있는 양양 양수발전소 현장, 동해 라파즈한라시멘트의 석회석광산 등 현장조사를 벌인 나머지 3곳에서의 이식도 실패이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 녹색연합쪽의 설명이다.
백두대간 주능선에 위치하는 자병산에서 석회석을 캐내는 라파즈한라시멘트는 1998년의 1차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2001년 솔나리 200뿌리와 산개나리 200뿌리 등을 이식하고, 2차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진 2003년에 다시 솔나리와 산개나리 각 50뿌리를 비롯해 모두 912뿌리의 야생식물을 별도로 마련한 300여평 가량의 이식장에 옮겨 심었다. 하지만 녹색연합의 현장조사 결과 멸종위기종인 솔나리의 경우 살아남은 개체가 5뿌리도 채 안되는 등 이식식물의 생존률이 극히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관계자는 “멧돼지들이 이식장을 파헤치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그것을 막지 못한 것까지 관리 소홀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식 식물의 사후관리가 제대로 안된 데는 관계 기관의 형식적 점검도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지적에 환경부 환경평가과 관계자는 “점검을 나갈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과거의 현장에 대한 사후관리 보다는 새로운 사업현장 위주로 점검을 나갈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정용미 녹색연합 백두대간보전팀장은 “야생식물 보호 관련 업무가 환경부 산림청 문화재청 등에 나눠져 있어 보호종 선정을 위한 통일된 기준조차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행 여부를 철저히 감독할 의지도 없이 ‘이식을 통한 보존’을 환경영향평가 협의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환경훼손에 면죄부를 주는 일일뿐”이라며 “환경부는 지켜지지도 않을 협의조건을 남발하지 말고 이식이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주/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적상산 무주 양수 발전소, 점봉산 양양 양수발전소…
자병산 시멘트광산도… “사정은 마찬가지” 관광용 곤돌라에서 내려 돌아본 설천봉 주변은 주목과 구상나무들의 묘지가 돼 있었다. 해발 1480m까지 치고 올라온 스키장 슬로프와 부대시설이 들어설 터에 자라다 주변으로 옮겨진 나무들 대부분은 죽은 지 한참은 지난 듯 했다. 수령이 수 백년은 족히 됐을 법한 거목들이 연한 부분은 모두 썩어 떨어져 나가고 마치 뼈와 같이 단단한 부분만 남아 조형물처럼 곳곳에 서 있었다. 이식한 나무들 가운데 구상나무는 100%, 주목은 44%가 말라 죽은 상태였다. 이 참혹한 실패는 사실 10여년 전에 이미 예상됐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언론 보도를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그 때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옮겨심으면 절반도 살리기 힘들다”며 이식에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개발업체인 ㈜쌍방울개발쪽은 “90%는 살려낼 수 있다”고 장담했고, 이 장담을 굳게 믿었던지 관계 기관들은 이식을 허용하고는 이식작업에 대한 감독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옮겨심은 구상나무 113그루 가운데 어떻게 단 한 그루도 살지 못했을까? 2002년에 ㈜대한전선으로 주인이 바뀐 무주리조트 관계자는 “이식작업이 절차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여러 해를 두고 조금씩 큰 뿌리를 잘라 잔뿌리가 나오기를 기다려가며 해야 하는데 199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일정에 쫓겨 단기간에 이식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해도 단 한 그루도 살아남지 못한 것은 야생 구상나무 자체가 이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상나무를 이식하기로 한 결정부터가 잘못됐음을 시사하는 셈이다.
백두대간 자병산 자락에 있는 라파즈한라시멘트의 멸종위기종 식물 솔나리 이식장. 2003년에 50뿌리를 이식했으나 살아 있는 것은 5뿌리도 안된다. 녹색연합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