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꼬불이 중학교’의 작은 기적

등록 2005-11-08 18:36수정 2005-11-09 13:55

부흥중학교의 한 교실 뒤에 놓여 있는 지렁이 화분들. 화초가 심어진 화분 밑단의 큰 화분이 지렁이들의 집이자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작업장이다.
부흥중학교의 한 교실 뒤에 놓여 있는 지렁이 화분들. 화초가 심어진 화분 밑단의 큰 화분이 지렁이들의 집이자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작업장이다.
지렁이가 나를 바꿨어요
인천 부평 부흥중 3학년 반마다 지렁이 화분 3개씩…
점심반찬 남기기 줄고 환경감수성 쑤~욱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에는 사료화, 퇴비화, 소각 등 여러 방법이 있다. 이 방법들 가운데 특히 지렁이를 활용한 퇴비화는 정부의 별다른 정책적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불교수행공동체인 정토회와 YWCA 등 민간단체의 보급 노력만으로 힘들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렁이로 처리하는 음식물 쓰레기량 자체는 아직 통계로 잡기도 어려울 정도로 미미하다. 하지만 지렁이 기르기의 진짜 가치는 다른 데 있다. 그저 꿈틀대기만 할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미물의 미덕이 종의 벽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다. 지렁이 기르기는 사람들에게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도록 만들고, 자연스럽게 지구 환경문제를 생각하도록 이끈다. 교육현장에서 지렁이 기르기를 환경교육에 연계시키는 것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오후 인천 부평에 있는 부흥중학교 도서실에서는 ‘꼬불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환경교실 발표회’라는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지렁이를 활용한 환경교육에 앞장서 ‘꼬불이 학교’로 불리는 이 학교의 성과를 외부에 소개하기 위한 자리였다.

부흥중에서 지렁이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봄부터다. 환경과 권영미 선생님이 YWCA의 후원을 받아 자신이 가르치는 3학년 10개 학급 교실에 3단짜리 지렁이 화분 3조씩을 들여놓은 것이다. 이렇게 30조로 출발한 지렁이 화분은 현재는 1·2학년을 포함한 전학급 34개 교실과 교무실, 양호실까지 들어가 110여조로 늘었다. 지렁이 화분 1조는 화분을 2~3단으로 쌓아 올려 아래쪽 화분들에는 일주일에 한 두번 음식물 쓰레기를 적당히 넣어 지렁이를 기르고, 지렁이 화분의 덮개 역할을 하는 맨 위 화분에는 화초를 키우는 형태로 구성된다.

권 교사가 지렁이 화분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일부 선생님들의 반대는 의외로 완강했다. 교실에 지렁이를 들여놓으면 사표를 내겠다는 교사도 있었다. 하지만 권 교사의 끈질긴 설득과 이 학교 김병섭 교감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지렁이 화분은 어렵사리 교실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발표회 참석자들이 부흥중 권영미 교사(맨왼쪽)로부터 지렁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발표회 참석자들이 부흥중 권영미 교사(맨왼쪽)로부터 지렁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온실형으로 꾸며진 지렁이 사육장인 ‘꼬불이 퇴비장’을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온실형으로 꾸며진 지렁이 사육장인 ‘꼬불이 퇴비장’을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지렁이 화분을 직접 관리하는 학생들은 환경실천반 학생 20여명과 학급별로 1~2명씩 지정된 전담 학생들이다. 하지만 교실에서 지렁이에게 먹이를 주고, 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학생들에게서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급식을 남기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렁이를 기르게 한지 보름쯤 뒤부터 학급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량이 서서히 줄기 시작하더니 최대 15%까지 감소한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 값진 변화는 학생들의 의식의 변화였다. 김 교감은 “지렁이 기르기는 음식물 쓰레기의 양도 줄였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의 환경 감수성에 의미있는 변화를 보였다”며 지렁이 퇴비화 프로그램의 환경교육 활용도를 높이 평가했다.

부흥중 학생들의 지렁이 기르기 체험사례 발표를 듣고 있는 발표회 참석자와 학생들.
부흥중 학생들의 지렁이 기르기 체험사례 발표를 듣고 있는 발표회 참석자와 학생들.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감수성은 지렁이처럼 하찮아 보이는 생명도 함부로 하지 않는 마음과 더불어 자라났다. 이 학교 2학년3반 임용운군은 강화도 갯벌에 다녀온 소감문에서 “갯벌생물들의 멸종상태도 알았으니 좀더 적극 실천을 해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것 보다 갯벌에 사는 것이 많아 이제 갯벌에 갈 때는 조심해야겠다”고 적었다.

부흥중 교사와 학생들의 이날 사례 발표는 지렁이 화분을 들여놓기를 고민하던 참석자들에게 자신감을 준 듯 했다. 참석자들에게 분양하기 위해 준비한 지렁이 화분 20조는 금세 모두 주인을 만났다. “지렁이 화분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지렁이를 기르는 것은 엄두도 못냈다”는 총신대 유아교육과 졸업반 정호경씨도 “발표를 듣고 용기를 냈다”며 한 조를 챙겨갔다.

행사를 주관한 서울YWCA 허수진 간사는 “음식물 쓰레기를 받아 먹고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지렁이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우리가 삶 속에 지렁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속도로 우리의 삶을 바꿔간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나도 징글… 지렁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모든 사람들이 지렁이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 동물인지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나도 징글…지렁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체험발표 한정희양
“처음엔 나도 징글…지렁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데요” 체험발표 한정희양

이날 외부에서 온 손님들과 친구들 앞에서 ‘지렁이는 나의 소중한 친구’라는 제목으로 지렁이 키우기 체험 발표를 한 부흥중학교 환경실천반 한정희(14·2학년5반)양은 지렁이를 징그럽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한양은 자신의 학급에서 지렁이 화분 관리를 맡고 있다. 친구들이 먹다 남긴 밥이나 과일 껍질 등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 지렁이 화분 속에 넣어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지금은 즐겁게 하는 일이 됐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얼마동안은 그도 지렁이들이 징그러워서 지렁이 화분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을 때 화분 속을 잘 들여다 보지도 못했다. 대충 손으로 화분을 헤집어 음식물 쓰레기를 넣은 뒤 얼른 흙으로 덮고는 화초가 심어져 있는 화분을 올려놓기가 바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또 지렁이들이 자신이 넣어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면서 징그러운 느낌은 점차 사라지고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이 지렁이를 혐오스럽게 여겼던 적이 언제 있었냐는 듯 “지렁이에게 먹이를 줄 때 몇몇 친구들이 얼굴 표정을 찡그리면서 신기한 듯 바라볼 때는 이해가 잘 안된다”고 하는 한양의 말에는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에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이 묻어난다.

지렁이 키우기는 또 다른 변화도 가져왔다. 가장 큰 변화는 전에는 꺼리낌없이 남겼던 밥과 반찬을 절대 남기지 않도록 노력하게 됐다는 점이다. 또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한양은 “환경을 더 깨끗하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더 더럽히지는 않도록 모두 노력했으면 좋겠다”며 말을 맺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부평/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