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환경

숯불 닭갈비? 북풍? ‘청정 춘천’ 나쁜 공기의 수수께끼

등록 2017-02-20 10:45수정 2017-02-20 10:59

[미래] 지구와 우주

벤조[a]피렌 등 다환방향족탄화수소
전국 32곳 중 춘천 4년 연속 1위

숯불구이·북한 유입 등 추정 속
정확한 원인은 ‘오리무중’
“배출원 확인 연구 필요하다”
청정 호반도시라는 춘천이 수도권과 거대 산업단지를 안고 있는 지역을 포함한 전국 유해대기물질 측정지역 가운데 4년째 발암성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농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전문가들도 모른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19세기 이전 유럽의 굴뚝 청소부들 가운데 유독 음낭암으로 말 못할 고통을 겪은 이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작업 중 늘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검댕 속에 다환방향족탄화수소(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PAHs)라는 발암성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었다. 탄 고기에 많이 함유돼 있다는 언론 보도로 유명해진, 국제암연구소(IARC) 지정 제1군 발암물질 벤조[a]피렌이 대표적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PAHs를 중금속, 다이옥신,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등과 함께 사람의 건강에 특히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특정대기유해물질’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립환경과학원은 한국환경공단과 함께 전국 32개 유해대기물질측정소에서 100종이 넘는 PAHs 가운데 발암성이 높다고 알려진 벤조[a]피렌, 벤조[a]안트라센, 크리센, 벤조[b]플루오란텐, 벤조[k]플루오란텐, 다이벤조[a,h]안트라센, 인데노[1,2,3-c,d]피렌 등 PAHs 물질 7종의 농도를 추적하고 있다.

제주를 뺀 전국 광역자치단체의 도심, 산업단지 주변 등에 고루 설치된 32개 측정소 가운데 가장 높은 PAHs 오염도를 나타내는 곳은 어디일까? 지난해 국립환경과학원이 펴낸 <대기환경연보 2015>를 보면 대기 중 PAHs 오염도 종합 1위 지역은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깨끗한 호반 도시로 알고 있는 강원도 춘천이다. 춘천시 석사동 춘천교육대학 옆 강원도개발공사 옥상에서 재는 춘천의 PAHs 농도는 2012년 측정을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 계속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춘천시 관계자들 “몰랐다”

2015년 춘천의 7가지 PAHs 연평균 농도 합계는 1㎥에 4.68ng(나노그램·10억분의 1g)으로 32개 지역 평균치(2.20ng/㎥)의 두 배, 가장 낮은 전북 임실 지역(0.78ng/㎥)의 여섯 배다. 특히 1군 발암물질인 벤조[a]피렌의 연평균 농도는 0.69ng/㎥로, 석탄화력발전소와 공장 굴뚝들이 높이 치솟아 있는 여수(0.17ng/㎥)보다 네 배,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서울역 앞 도로변(0.27ng/㎥)보다 2.6배 높다. 연평균 농도 0.69ng/㎥는 영국 환경기준치(0.25ng/㎥)의 두 배가 넘고, 유럽연합(EU) 환경기준치(1ng/㎥)의 70% 선까지 접근한 수준이다.

춘천시 석사동 강원도개발공사 옥상에 설치된 대기오염물질 포집 장치.  춘천/김정수 기자
춘천시 석사동 강원도개발공사 옥상에 설치된 대기오염물질 포집 장치. 춘천/김정수 기자
춘천이 전국 유해대기물질 측정지역 가운데 대기 중 발암성 PAHs 농도가 가장 높다는 사실은 춘천시청 환경과나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최승봉 강원도보건환경연구원 환경연구부장은 “도시대기측정망 자료에는 특이 사항이 없었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농도가 그렇게 높다는 것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춘천의 대기 중 PAHs 농도가 다른 지역보다 유독 높은 이유는 뭘까? PAHs 측정을 담당하는 한국환경공단과 측정 자료를 검토·확정해 <대기환경연보>를 펴내는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들은 이 질문에 아무런 답도 주지 못했다. 국립환경과학원 대기환경연구과 유해대기물질측정망 담당 이동원 연구관은 “춘천의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문제는 아직 조사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탄소와 수소로만 구성된 화합물인 PAHs는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주로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배기가스를 내뿜는 자동차, 화석연료를 태우는 발전소나 산업시설, 소각장, 농업 잔재물 소각 현장 등이 주요 배출원으로 꼽힌다.

이런 일반적인 PAHs 배출원으로는 춘천의 유독 높은 PAHs 농도가 설명이 안 된다. 춘천이 수도권 주민들의 나들이 코스로 인기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보다 차량 통행이 잦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유해대기물질측정소가 위치한 곳은 번잡한 도심에서 떨어져 아파트 단지, 대학교, 초등학교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까운 곳에 대규모 연소시설이나 화석연료를 많이 태우는 산업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시영 폐기물 소각시설은 직선거리로 약 8㎞, 시립 화장장은 10㎞ 이상 떨어져 있다. 측정 지점에서 약 1.5㎞ 남서쪽에 10만평의 퇴계농공단지가 있지만, 춘천시청 자료를 보면 현재 가동 중인 150여개 업체 대부분은 화석연료를 많이 태우는 굴뚝 업종과 거리가 멀다. 약 2.5㎞ 동쪽에 있는 9만평 규모의 거두리 농공단지도 마찬가지다.

춘천의 대기 질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을 춘천 지역 대학의 대기오염 연구자들도 분명한 답변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강원대학교 환경보건센터 연구팀은 미세먼지 PM2.5 입자에 함유된 벤조[a]피렌과 크리센 등 PAHs 12종을 분석해 춘천의 PAHs는 차량 배출보다 석탄 연소나 생체 소각 등에 의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그렇다면 이 석탄 연소와 생체 소각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이뤄진 것일까? 이 연구를 이끈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한영지 교수는 “정답은 정확히 모른다”며 “춘천과 같은 소도시 및 시골 지역의 경우 노천 소각, 농업 잔재물 소각 등이 많다. 또 춘천은 육류구이 식당이 매우 많아 여기에서 기인하는 피에이에이치가 많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PAHs는 장거리 이동한다”

지역에서 예민하게 여기는 문제여서 이름을 공개하지 말라고 부탁한 강원대 환경융합학부의 또 다른 교수는 춘천의 숯불구이 음식점들을 고농도 PAHs의 주요 배출원으로 지목했다. 이 교수는 “춘천에는 소·돼지고기뿐 아니라 얼마 전부터는 닭갈비도 숯불 닭갈비가 유행이다. 이렇게 춘천에서 자체 발생하는 것과 편서풍을 타고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이 분지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잘 퍼지지 않아 고농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공학계에서 PAHs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영남대 환경공학과 백성옥 교수는 “피에이에이치는 장거리 이동을 하는데, 인천 지역 등에서도 조사를 해보면 북한이 연료 사정이 나빠 나무를 많이 때는 겨울철에 북한에서 기류가 넘어올 때 특히 농도가 높게 나온다”며 북한 영향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 환경과학원의 2012~2015년 춘천의 PAHs 월별 자료를 보면, 겨울철인 1·2·12월 벤조[a]피렌 농도는 평균 2.26ng/㎥로 여름철인 6·7·8월 평균 0.06ng/㎥보다 37배가량 높게 유지되며 연평균 고농도 기록을 이끌었다. 최근 연도인 2015년만 보면 이 차이는 무려 82배에 이른다. 반면 같은 해 벤조[a]피렌 연평균 농도가 춘천 다음으로 높았던 경기 의왕시 고천동의 겨울-여름철 평균 농도차는 7.3배, 교통이 혼잡한 서울역 앞은 6.9배에 불과하다. 춘천의 고농도 PAHs에 연중 지속적인 자체 발생원보다는 계절적인 외부 유입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교수도 “북풍이나 북서풍이 불 때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있다. 북한의 석탄이나 바이오매스 소각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춘천의 피에이에이치 농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정확한 배출원의 종류와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은 모두 추정일 뿐인 것이다.

춘천/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지금 당장 기후 행동”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